아이 친구의 선생님이 된다는 것
아마도 글을 쓰지 않은 지 6개월은 지난 듯하다. 지난해 책을 내고 싶다고 그 난리를 쳤건만, 결국 얻어진 소득은 없었고 실패감만 차올랐다. 어쩌면 '실패'만 얻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타인을 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다시 길을 잃었다.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은, 다시 아이에게 투영되었고 나는 글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와 친구 둘셋을 한 팀으로 논술 수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길고 긴 겨울방학에 지쳐 아이들과 책이나 읽자고 자리를 마련한 일이 커져버렸다. 한때 논술 강사로 일했던 짬이 있어서, 매주 교안을 짜고 아이들과 지지고 볶는 시간을 보냈다.
여자가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도 있다지만, 저학년 남자아이 셋이 뿜어내는 에너지는 건물이 휘청~하고 흔들리는 착각을 일으켰다. 하교 후에 우리 집으로 아이 셋이 들어오는 순간은 무척이나 아찔하다. '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하고, 아이 친구 엄마가 아닌 '선생님'으로 모드 전환을 제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네 집에 가는 기분을 어찌 학습 분위기로 바꿔야 하나, 머리 굴리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니기에...
아이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수업에 돌입하면 그때부터는 내가 만든 질문 하나하나에 마음이 쓰인다. 그들의 표정을 살피고, 서로 장난치더라도 과하지 않도록 경계를 구분 짓는 일. 어쩌면 책의 내용을 꼼꼼히 따져가는 것보다 그 과정이 더 녹록지 않은지 모르겠다. 때로는, 분위기를 깨뜨리는 과한 장난질의 주인공이 내 자식이 될 때면 가슴 깊숙한 곳에서 차오르 분노를 삭여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친절한 선생님'이 갑자기 '이웃집 헐크 아줌마'가 되지 않도록, 나의 끓어오르는 자아를 꾹꾹 눌러야 하니까.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이들은 마무리 독후 활동 단계에 접어든다. '휴우~'
어깨에 잔뜩 업고 있던 긴장감이 조금씩 등줄기를 타고 바닥으로 내려가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작고 도톰한 손가락에 연필과 색연필을 번갈아 쥐며,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 한켠이 뿌듯해진다. 일주일, 어쩌면 더 오랜 시간을 고민해서 책을 고르고 도서관에서 대출하고, 아이들 가방에 챙겨 넣어주는 일. 그리고 수업시간 1시간 반을 꽉 채우는 것까지. 8개월가량을 그렇게 달려왔다.
난 아이 친구 엄마와 선생님의 역할을 구분 짓지 않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매주 화요일이면 아이들은 자연스레 가방을 주방 앞에 툭, 던져놓고 간식을 바라던 표정이 눈에 선하니까. 그러나, 나는 그 수업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분명 더 오래 이어간다면 우리 아이에게도, 아이 친구들에게도 난 정성을 다해 가르치겠지만... 점차 마음에 차오르는 부담감의 크기가 내가 감당하고 싶지 않을 만큼 커졌다고 할까.
집에서 수업을 하다 보니, 내가 제일 못하는 살림에 큰 에너지를 써야 한다. 화장실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까, 바닥이 더럽거나 집안이 너무 어수선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날 오전은 오롯이 청소를 위해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수업 중에는 셋이 똑같이 떠들어도 우리 아이에게만 화살이 날아간다. 내 아이를 혼내는 일도 불편하지만, 아이 친구에게 엄격해지기는 더 쉽지 않다. 불쑥불쑥 장난을 걸어오는 녀석들에게 적당한 언어의 방패를 들이미는 건, 무척이나 지치는 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한 사람으로서 가려는 길'이 논술 선생님은 아니라는 걸 재차 확인한 시간이었다. 그저 내가 가진 능력의 일부일 뿐, 그것이 돈벌이가 되거나 목표는 아니었음을. 보람은 있지만, 즐거움은 아니었다고... 지금처럼 마음을 글로 표현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욱 큰 힘이 된다는 걸 알았다. 그 깨달음이 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고, 난 용기를 내어 아이 친구 엄마에게 양해를 구하는 전화를 걸었다. 두 분 모두 흔쾌히(?) 내 뜻을 이해해준 덕분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난 참으로 오랫동안 육아를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었고, 내 기회를 양보했고, 내 꿈을 미뤄왔다. 아이는 야금야금 그것들을 먹고 제법 잘 자라고 있다. 그러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서, 나의 수많은 '포기'들이 '원망'으로 바뀌기 전에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발을 내딛기로 했다. 오늘처럼, 글을 쓰는 일이 바로 그 시작이다. 아이들이 그들의 세계에서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수행하는 만큼,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서로의 성실함이 맞닿는 날,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