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한 본격 역사 서술이라기보다는 ‘6.25담론’과 과도하게 정치화되고 도그마화된 우리 사회의 한국전쟁 해석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현대 한국 정치사회를 재생산해 온 원형으로서 한국전쟁의 과정에 대한 사회과학적 문제제기였다. 한편 그것은 한국 피해 대중들의 ‘억압된 앎’을 집약하여 공식화된 ‘앎’에 도전함과 동시에, 전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현재의 정치사회 현실을 다시 읽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개정판을 펴내며, 35쪽
“이 책이 기존의 한국전쟁 연구서들과 가장 다른 점은 전쟁기 민간인 학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고 그것이 어떻게 이후 한국의 만성적 국가폭력과 인권 침해로 연결되는지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이라크 전쟁, 이스라엘과 레바논의 갈등 등 모든 미국이 개입한 전쟁과 그것의 직구정치적 함의를 읽기 위해서는 한국전쟁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한반도가 또 다시 장기판의 졸이 되어 또 다른 학살담의 진원지가 되지 않으려면 학살담을 통해 한국전쟁의 진상을 알리고, 학살이라는 지렛대로 지난 20세기 한반도와 미국의 역사를 다시 바라보는 방법밖에는 없다.”
@4부 학살
내게 가장 큰 충격과 여운을 남겨주었던 영화를 꼽으라면 중학생 때 보았던 <변호인>을 말하곤 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인상깊었지만, 무엇보다도 부림사건(1981)에 대해서 찾아보며 교과서에서 배우진 않았지만 한국사에 이런 아픔도 있었구나 지금은 괜찮은걸까, 국가라는 존재는 때론 시민을 적으로 만들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국가체제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상을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는 이유로 청년들을 잡아가 고문하고, 허위자백을 받아내고는 결국 없는 죄도 만들어내는 공권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의 정당성이 약한 정권은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기도 한다는 것, 부림사건 이외에도 한국 현대사에 굵직한 뼈를 새기고 있는 수많은 민간인 학살 사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그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한국전쟁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진실에 접근하는 것은 성역을 건드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조직적으로 은폐되고, 망각이 강요되었던 한국전쟁 시기의 학살 현장을 기억 속에 불러옴으로써 우리는 평화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이유와 방법을 떠올릴 수 있다. 전쟁을 통한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 학살은 만연하다 못해 전쟁 그 자체였다. 전면전으로서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도 각종 유격대의 활동, 제주4.3 사건, 여순사건,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의 정치폭력 등이 있었다. 이들의 연장선이었던 전쟁은 ‘학살의 전면화’ 였다. ‘공식 기억’에서는 잊혀져 있지만, 전 세계에서 이토록 잔인한 학살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조직적인 폭력으로서 한국전쟁기 학살은 다양한 성격을 가진다. 제주 4.3 사건으로 불리는, 좌익 게릴라의 전멸을 위해 그들의 활동 지역 주민들까지 모두 살해했던 초토화작전은 “군사작전의 수행으로서 학살”이었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거창양민학살사건, 제11사단 사건 등 국군에 의한 빨치산 토벌작전도 여기에 속한다. 공비를 토벌한다는 작전수행의 일환으로, 관련되어 보이는 비전투 민간인까지 적으로 간주해 집단살상을 벌인 것이다. 한국전쟁기 최대의 민간인 학살인 국민보도연맹사건은 인민군 점령 시기 그들에 동조할 것이 예상되는 사람들, 즉 ‘적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집단 살해한 “처형으로서의 학살”에 해당한다. 북에 의한 무자비한 인민재판도 여기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끼리도 보복심과 사적인 증오가 계기가 되어 서로를 죽이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사실상 이 모든 유형에 정치권력이 최종적인 배후로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학살은 공식 전투 이면의 전투이자 ‘또 다른 전쟁’ 이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기의 학살은 다른 나라들의 학살 사례와는 상이한, 그래서 조금 독특한 면모를 보인다. 전쟁의 정치화와 냉전 시기의 대립과 광기는 학살의 원인이었다. 남한에서의 학살은 우익, 자유주의 세력 주도의 국가 건설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는 적에 대한 어떠한 폭력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극도의 반공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다시 말해,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 아래 폭력과 학살이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배경을 바탕으로, “좌익 청소 작업”은 이승만 정권의 취약했던 권력 기반을 보완하고 국가의 권위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정치적 반대 세력을 제거함으로써 국가의 위엄을 과시하고, 목격자인 일반 국민에게는 공포심을 심어주는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이 숨어있었다. 한편, 학살의 잔인함은 일제 식민지배의 직접적인 유산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 군대는 일제강점기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국민을 위한 군대가 아닌, 권력자에게 복종하도록 학습된 군대였기에 민간인 학살은 아무렇지 않게 진행될 수 있었다. 형식적으로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립으로 보였으나 대한민국의 권력자는 ‘반역’, ‘부역’과 같은 담론을 활용해 ‘좌익’, ‘빨갱이’를 혈연공동체를 배반한 반민족집단으로 치부한, 의사인종주의의 특징을 띤 학살이라는 점도 한국전쟁만의 특징이다. 따라서 반공이데올로기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이 없는, “전통적인 가족주의와 혈통적 민족주의의 문화적 기반을 정치적으로 동원”한 것일 뿐이었다. 이 학살의 정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코리언 민중들”이었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사실을 망각의 영역에서 기억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필요했고, 이와 더불어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의 처벌이 진행되어야만 이후에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었다. 공식기록상 “공비에 의해 학살된”, “사유미상”으로 죽어간 사람들을 들춰내 대한민국 출생의 비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만큼 지배세력에게 위험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기억할 때, 인권과 평화는 제 빛을 찾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