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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n 08. 2020

오늘도 최선을 다해 버틴 모습, 당신께 보여드릴게요.

부평초(浮萍草). 

순우리말로 개구리밥. 한 글자씩 한자를 뜯어보면 “뜰 부 부평초 평 풀 초”를 쓴다.

한자 사전에 따르면, 부평초 평의 세 번째 뜻에는 ‘떠돌다’도 있다. 부평초는 물 위에 떠 있는 풀이다. 대부분 식물은 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을 먹지 못하면 며칠 버틸 수는 있으나 흙과 분리된 식물은 사망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부평초는 한평생 흙과 마주칠 수 없는 식물이라니, 참 특이하지 않은가. 


아주 짧으면서도 길다고 할 수 있는 내 인생은 ‘부평초’와 닮았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신세였다. 갓난아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네 번이나 이사했다. 대학생 이후 집도 1년에 한 번, 심지어 6개월에 한 번씩 옮긴 적도 있었다. 최소 3개월 최대 6개월마다 여행을 다녔다. 국내 국외 가리지 않았다. 물론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고 나름대로 여행이 익숙해지면서 주로 해외로 나돌아다니긴 했다. 어디론가 떠나길 좋아했던 나, 인간관계도 방랑(放浪)했다. 사람들이 다가오길 고대하며 가만히 서 있지 않고 내가 먼저 찾아 나섰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날 보며 자유롭게 살아서 부럽다고 했다. 나 자신도 이런 모습이 비교적 흡족했던 날이 있었다. 이상향이자 사랑했던 ‘자유로운 삶’은 과거의 개념이 되어버렸다. 내 손에 남아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돌이켜보니 나는 관계의 끈을 오랫동안 잡고 있지 못했고, 남들은 하나를 붙잡고 역량을 키워나갈 때 나는 그러하지도 못했다.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뒤적이기 바빴다. 흥미도 금세 꺼지기 일쑤였다.  


바스러진 듯한 추억만 가슴속에 있다. 추억이 소중한 것이라며 위로해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추억은 나를 사회에서 지켜줄 수 있는 무기가 되지 못한다. 그들도 이를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추억은 손에 잡히지도 않는 비물질적이며, 움겨쥐려고 하면 손에서 바로 사라질 것 같은 아주 곱디고운 모래와 같다. 


현시점이 나를 이렇게 바꿔버렸다.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남들이 다하는 것들, 나도 기본적으로 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흙’이란 정착의 삶이자 다른 이들이 대체로 하고 산다는 기본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느샌가부터 흙을 갈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본은 흙은, 한없이 특별하고 어려웠으며 다가설 수 없었다. 기본은 통곡의 벽이었다. 적당한 나이에  좋은 곳에 취업하고, 적당한 나이에 애인과 결혼하고, 적당한 나이에 집 사고 ‘적당한 나이에’... 적당한 나이에 살아남기 위해 갖고 있어야 할 자원이 내게 있었던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눈물 한 방울이 찔끔 나온 날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훗날 돌이켜보면 지금이 찬란했던 순간일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사회에서 또는 인간관계에서 실패하고 깨지느라 하염없이 아프기 바쁘다. 이러니 죽지 않고 하루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고 내일을 마주하는 순간은 나에게 매우 중대한 일과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버티는 삶이란 버겁고 감당하기 어렵다. 세월이 흐를수록 하루를 인내하기가 더 고달프다. 93년생의 일그러진 청춘을 준 신께 원망을 토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쓰고 또 쓴다. 나의 실패에 따른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며 절망하는 나의 친구들 동생들 그리고 언니 오빠들과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고 연대하기 위해 쓰고 또 쓸 것이다. 앞으로 하루를 어떻게 버티며 살아왔는지 또는 살 것인지 보여줄 예정이다. 삶이 극도로 고통스러웠을 때 브런치에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사람들의 스토리를 찾고 읽기를 반복했었다. 이 글을 보는 이가 있다면 최소한 한 명쯤 당신과 같은 처지인 내가 있으니 좌절에 굴하지 말길 바란다. 한낮 미물의 나도 이렇게 버티며 살고 있으니 너무 힘겨워하지 말기를 간곡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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