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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용이 Mar 29. 2018

우울하다.txt

TED 역사상 가장 인기를 끌었던 사이먼 시넥의 리더의 사고방식에 관한 영상에서, 위대한 리더는 Why-How-What의 방식(이러한 사고의 틀을 '골든 서클'이라고 한다.)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어떤 일을 할 때 그것을 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와 신념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다.

'골든 서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뭐든 근본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고뇌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세웠던 나름의 신념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 자연스레 이런 질문에 빠지게 된다. '인간은 왜 살지?', '내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알겠는데, 가만, 애초에 인간은 일을 왜 하는 걸까?', '왜 꼭 성장해야 하지?', '성장이 뭘까?' 등.

3년에 한 번 꼴로 '왜 살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주기를 정해놓고 던지는 것이 아니고 이 정도 주기로 빅현타가 덮친다는 얘기다. 여태까진 죽지 못해 산다, 관계 속에 있으니 산다, 현재를 만끽하기 위해 산다 등의 답을 구하며 허무함의 구렁텅이를 헤엄쳐 나왔지만 이번에는 좀처럼 답이 보이지 않는다. 민웅이 형은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은 없지만, 사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답을 못 구하고 죽어간 철학자들을 보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며 철학만이 사람을 위로하네 어쩌고 저쩌고 말했다. 일리 있는 말이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얼마 전 한가람 미술관에 자코메티 전시를 보러 갔다. 자코메티는 조각을 통해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명력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그의 역작 '걸어가는 사람 Walking man'을 보고 삶이 두려워졌다. 발기발기 찢어지고 짓밟혀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자 위대함일까? 문득 원하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 하고 싶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나도, 결국 도달할 수 없는 자유를 갈망하며 시스템 안에서 허우적대는 개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열심히, 주체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과연 진정 열심히, 주체적으로 살았던 것일까 의심된다.


스타트업의 성장Growth 정신을 마음에 새기며 성장 병, 프로젝트 병에 걸린 것 같다. 더 큰 목표를 세우고, 더 질 높은 콘텐츠 또는 제품을 만들고, 더 빠르게 그것들을 확산하며, 수많은 피드백에 대응하며 빠르게, 빠르게 성장하는 것이 지향점이자 습관이 되니, 더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세우고 그것을 꾸역꾸역 달성해나가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기도 전에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고 해나가는 것에 중독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야 돈 벌기 시작했는데 비즈니스를 단절하고 미국에 갈 이유가 있을까? 그냥 시즌 2 안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 보고 술 마시고 맛있는 것 먹고 세상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나? 뭐가 부족해서 더더더 큰 것들을 계획하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사람들에게 공표하는 걸까?


나도 안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고 많은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만들고 있으며 크든 작든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분명 나는 어떤 이들보다 나은 상황일 수도 있다. 그냥 잘 산다는 게 뭘까 싶고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2월 말에 운동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내 콘텐츠 좋아해주는 독자들과 나의 활동을 지원해주는 기업과 단체, 그 외 뭔 짓을 해도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친구들이 없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 진작에 미쳐버렸겠지 싶다.


최근 들어 몇 가지 알게 된 것은 내 삶의 최우선 가치는 '자유'라는 것, 외로움에 약하고 소수의 사람에게 의존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광고주가 콘텐츠를 죽이는 멍청한 피드백을 하면 미쳐버릴 것 같고, 연애를 안 하면 술 마시는 빈도 수가 부쩍 늘고, 변화를 이해하고 변화에 적응하라는 콘텐츠를 만들면서도 가까운 사람이 결혼을 한다거나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부쩍 우울해지며 이런 생각을 한다.


'요즘 얘를 세 달에 한 번 정도 볼까 말까인데 이제 1-2년에 한 번씩 보게 된다면, 한 스무 번 더 보면 죽겠네?'


요즘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그냥 만나면 행복이 뿜어져 나오는 사람, 작은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기뻐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기나긴 인생 여정을 차곡차곡 계획해 함께 하고 있는 사람, 씨발 씨발 하면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일 외에 즐거운 것이 있어 '뭐 이 정도면 살만하네'하는 사람 등이다. 내 강연에 오는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상당 수가 이런 사람들인데 내가 배워야 할 마당에 누굴 가르칠 군번은 되나 싶다.


나만의 행복, 나만의 기준을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나만의 조화를 찾고 현재에 감사하고 현재를 만끽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것들에 대해 너무 미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보컬 학원도 다니고 기타도 배우고, 하하호호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집이나 펜션에서 노래 부르고 헛소리하고 떠나고 싶을 때 홀연히 떠나 세상과 단절하고, 사랑하는 사람 친구들과 원하는 만큼 충분히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고 싶다. 성장 그리고 또 성장 이 정도면 많이 했다. 그리고 내 개인의 행복과 자유로움을 찾지 못하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동시에 줄곧 없는 것, 허상, 신기루 따위로 치부해왔던 허상을 좇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싶다. 이것이야말로 진정 시스템에 순응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나를 이루는 토대, 사고방식과 경험 등이 미숙하고 빈약하다는 생각에 앞으로 견뎌내야 할 삶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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