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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Jul 30. 2022

아이를 기다리는 간절함

2015년 가을 어느 날 한 산부인과 대기실에서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아이의 첫 울음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장인 장모님이 한 팀, 그리고 다른 산모의 가족들이 한 팀. 두 팀 모두 예정된 시간을 꽤 넘기고 있어 초조한 가운데, 그래도 서로 어디 사는지 묻고 이런저런 덕담을 할 만큼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이웃 산모를 담당했던 의사가 급히 나와 보호자를 찾으면서 대기실의 공기가 달라졌다.


아이가 사산되었다고 했다. 이미 얼마 전에 심장이 멈춘 채 엄마 뱃속에 있다 나왔다는 것이다. 급작스레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출생 신고와 사망 신고를 해야 하는지, 죽은 아이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한 마디 보탤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내 아내도 예정 시간을 한 시간 가까이 넘기고 있었지만 걱정스럽다 말할 경황이 없었다. 다행히 아내는 얼마 후 제왕절개로 4kg 우량아를 순산했다. 사실 산통이 24시간 넘게 이어진 뒤의 난산이었지만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니었다.


아이와의 첫 만남을 가진 후 회복실에 대기하는데 하필 바로 옆방이 그 가족의 방이었다. 가끔 아기 엄마의 울음소리가 났다. 내가 없을 때 그 아기 아빠가 우리 아내 식판을 옮겨주었다는 말도 들었다. 우리도 한 번 아픔을 겪었지만, 뱃속에서 다 자란 아이를 그렇게 보내야 하는 상황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 우리의 위로가 위로로 들릴 수 없을 것이어서 다만 기쁨의 목소리를 낮추는 것으로, 다음엔 그들에게 꼭 건강한 아이가 찾아오기를 비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아이가 여덟 살 쯤 되니 안 자겠다고 잠 투정을 한다든지, 유튜브에 정신이 팔려 불러도 대답이 없다든지, 이런저런 일들로 아빠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든지 하는 장면이 많아진다. 많은 부모들이 그렇듯 우리도 처음엔 공부 잘 할 필요 없으니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고 빌었지만, 이제는 정말 건강하게만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을 내는 부모가 되어 간다. 그러다 가끔 아이가 아프거나 아이들에 관한 아픈 기사를 접하고 나서야 다시 건강하게만 자라 달라는 기도를 하는 뻔뻔한 부모가 되어 가는 것이다.


7년 전의 그 부부에게도 새로운 생명이 찾아왔을까. 힘든 시기는 짧게 지나고, 그들의 아이가 지금 여섯 살이나 일곱 살이 되어 엄마 아빠를 기쁘게도 힘들게도 하며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기를 빈다. 어린이집도 가고 유치원도 다니면서, 키도 크고 말도 많이 늘어 있기를 빈다. 그리고 결국 뻔뻔한 부모가 되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집의 꼬맹이에게도 늘 건강한 날들이 이어지기를 빈다. 그 누구든 아이를 기다리는 간절함만큼은 배반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일은 이미 까맣게 그을린 딸 아이와 자전거를 타러 나갈 생각이다.


- 22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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