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처럼 살아야하는 이유
우리나라 명품소비수준이 세계 최상위권인 것을 미뤄보면 우리의 사치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관대하고 굳건한지 알 수 있다.
비교적 짧은 근대화 기간이나 외세에 강압에 의한 개방이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고려/조선/대한민국을 거치면서 급변한 국교의 부재가 이유일 수도 있다.
석유나 관광같이 주어진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회전율로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의 숙명일 수도 있고, 섬처럼 돼버려 외부와의 교류가 단절된 국가가 가지는 지역적 특성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삶의 판단과 가치관의 근거로 삼을 철학의 부재가 존재하고, 신자유주의와 글로벌화의 흐름 속에 사치재 철학이 빈틈을 손쉽게 장악한 것이다.
무엇이 있어야 내가 좋은 사람인지, 내 하루가 올바른 삶인지 판단할 철학이 없을 때 눈에 보이는 외형과 재화만큼 쉽게 안도감을 주는 것도 없다. 쉽게 비교할 수 있으면서, 열등감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에 그만큼 좋은 것도 없다.
'내 자식은 나같이 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를 통해 성장한 경제가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소유와 과시 중심의 철학은 공허함과 비하로 가득 차 버렸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소유를 물어보지 않는다. 경험과 기억을 묻는다.
그리고 그 중에 무엇이 제일 좋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를 묻는다.
어떤 것이 너의 가장 비싼 경험인지 묻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나는 우리가 여행을 다니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몇 살이고, 어디 살고, 부모의 직업을 안다고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가?
서울에 살면 뭐가 좋은지, 서울의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너희 부모님의 어떤 점이 존경스러운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처럼 묻는다면 작고 외로운 외딴섬 한국에서도 인생의 철학을 찾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