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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점직원 Jun 17. 2024

당신은 가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짜 일을 하고 있는가?


몇년전 아는 지인과의 술자리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 K군. 그는 자신을 N년차 기획자라고 소개했는데요. 술자리 대화는 뻔하디 뻔한 자기소개와 업무 무용담을 거쳐 내가 이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업무를 하는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윗사람들은 나의 소중함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연봉이나 대우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는 성토대회로 이어졌습니다.


이윽고 K군의 불만토로하기 타임. K군의 불만 역시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K군의 불만은 '나는 N년차 기획자인데 연차에 걸맞지 않은 쥐꼬리만 한 연봉을 받고 있다.' , '회사는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고 가스라이팅만 하려 한다' K군의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K군의 연차와 본인이 받고 있는 연봉 대비 시장에서 평가받는 N년차 기획자와의 연봉 갭차이가 너무 컸거든요.


조심스럽게 그의 업무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K군이 받고 있는 연봉과 시장가의 갭 차이가 왜 이렇게 큰지 알게 됐죠. K군이 하고 있는 업무는 배너와 콘텐츠 관리, 엑셀 데이터 관리 등 엄밀히 말하자면 기획자보다는 콘텐츠 관리와 서비스 운영에 가까운 그런 업무들이었습니다. 전문적인 기술이나 경험이 필요 없는 신입 뽑아다가 한두 달만 교육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이었죠.


몇 달 전 만났던 마케터 J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케터라는 직함을 달고 있지만 본인이 하는 일이 진짜 마케팅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던 J양, J양이 입사해서 1년 반동안 했던 일은 타 커뮤니티에 인기 있는 글을 퍼 나르고 일반 유저인척 커뮤니티에 이슈 될만한 글을 쓰는 바이럴 업무였습니다.


잡코리아에 경력 기획자 채용 공고를 올리면 접수된 이력서 열에 여덟 아홉은 서비스 기획서나 화면설계서, WBS 한번 잡아본 적 없는 소위 물경력, 뻥경력인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본인들도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본인들이 물경력, 뻥경력이라는 사실을요. 그런데 간혹  자기가 진짜 일을 하는 줄, 전문적인 기술을 가진 일을 하는 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본인의 연봉이 시장가에 비해 왜 이렇게 낮은지, 이력서만 넣으면 서류에서 떨어지는 이유가 뭔지 알지 못하고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으려고 하죠. 진짜 원인은 가짜일을 하고 가짜 경력을 쌓고 있기 때문인걸 모르고 말이죠.




나도 3개월이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2~3년 전 데이터 분석가가 부족하다는 뉴스 보 언론을 뒤덮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언론보도에 발맞춰 다양한 사설 교육기관에서 데이터 분석가 교육과정이 개설됐죠. 3개월 만에 당신도 데이터 분석가가 될 수 있다 같은 자극적인 홍보 문구로 취준생들을 유혹하면서요.


홍보문구를 보면서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진짜 3개월 만에 데이터 분석가가 될 수 있나?" 의문을 가지고 커리큘럼을 살펴보니 대부분의 강의가 원시 데이터를 추출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툴 위주의 강의였습니다.


데이터 분석의 핵심은 데이터를 추출하는 능력이 아니라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해석 능력입니다. 같은 데이터라도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180도 달라질 수 있죠. 데이터 분석가는 단순히 요청한 데이터를 추출하는 직업이 아니라 가설을 세워 데이터를 추출하고 전략을 수립하는 직업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사람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데이터 분석가이자 전략가이지 3개월 과정만 수료하면 누구나 될 수 있는 데이터 추출가가 아닙니다.


직업의 수요 공급 법칙은 사실 간단합니다. 진입장벽이 높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은 고연봉을 받을 수 있고 진입장벽이 낮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 없는 직업은 낮은 임금을 받게 됩니다. 간단하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죠. 정말 3개월만 교육을 들으면 데이터사이언스가 PM, PO이 될 수 있는 걸까? 그럼 왜 이렇게 연봉을 많이 주는 거지?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는데?




당신은 가짜 일을 하고 있지 않나요?


가짜일과 진짜 일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지금 당장 채용 서비스에 접속해서 내가 하는 업무분야와 연차에 맞는 채용공고를 확인한 후 우대사항 중 내가 몇 개나 해당하는지를 체크해 보면 되죠. 우대사항에 해당 항목이 많을수록 나는 진짜 일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고 우대사항에 해당하는 항목이 하나도 없다면 나는 가짜일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과 지식이 쌓이지 않는 가짜 일을 하면서 진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실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몇 개월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저 숙련 노동이지만 회사의 네임벨류가, 직책이 주는 위엄에 취해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물경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죠.

당신은 진짜 일을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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