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olina.’ 줄여서 캐롤이라고 불리는 내 친구 캐롤라이나는 영국에서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선생님이다. 남편과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 중이고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아주 많은 친구다.
캐롤을 처음 만난 건 글라스고 대학교 스포츠센터에서였다. 필라테스 수업이 끝나고 게시판에 어슬렁거리고 있던 나를 보고 왠 모르는 여자가 말을 걸었는데 그게 바로 캐롤이었다. 딱 내 주먹만 한 머리 크기에 주황빛 머리색 그리고 핏줄이 조금씩 보일 정도로 새하얀 피부를 한 캐롤라이나는 누가 봐도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애였다. 그런 그녀가 톡톡 내게 말을 걸어왔을 때, 꽤나 이질적인 비주얼에 순간 당황했지만 그녀의 해맑은 인사에 굉장히 친절하게 대답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는 ‘여기가 처음이냐’ 에서부터 ‘~~~~ 한국에서 온’라고 이야기하기까지 그 자리에서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 같다. 지금에 와서야 자세한 상황을 알게 되었는데 캐롤은 당시 나를 학교 수업에서 만난 또 다른 친구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만나 반가움에 말을 걸었는데 내가 되게 어색하게 대해서 본인도 의아했다고 했다. 캐롤은 내가 그 친구가 아니라는 걸 대화하며 알았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친근함에 나와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말이지 캐롤과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그 시작은 어쩌면 정말 우연일지 모르겠다. 아니 우연이 맞다.
그렇지만 그녀와 친구가 되지 않았으면 어떡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캐롤을 만나 글라스고에 너무나 쉽고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우연은 필연이 되기도 할까? 캐롤과 나는 나이를 세는 방식은 달라도 태어난 년도가 같은 동갑내기였고, 관심사도 비슷한 게 많았다. 한국 사람인 나보다 BTS를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을 제외하곤 발레, 현대무용과 같은 정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것과 어렸을 때 Green Day 노래를 듣고 미드 Prison Break를 보면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비슷했다. 또 자주 보는 넷플릭스 장르가 거의 겹쳐서 대화의 소재가 끊어질 일이 없었다. 또 내가 남편과 함께 살고 있듯이, 캐롤 역시 10년째 만나고 있는 파트너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마냥 놀러 다닐 수 있는 수줍은(?) 10-20대 소녀들이 아니었고, 웬만해서 겪을 것 다 겪어 본 조금 성숙한 여인들이었달까.(이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아직까지도 고민이 필요하다) 캐롤과 나는 아줌마와 조금 성숙한 언니 어딘가의 경계선에서 함께 서 있었고 그래서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가 많았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도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있었다. 더불어 각자의 모국을 떠나 생판 남의 나라에서 사는 이방인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렇게 우리는 왜 이제야 알게 되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를 아끼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