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특별히 육고기를 먹는 문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도, 집안에 지병이 있는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다. 그저 누구 할 것 없이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물론 어쩌다 종종 먹었던 기억은 있지만 우리 집안 그 누구도 육고기를 좋아하거나 즐겨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남 부럽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낸 것과 별개로 어린아이들이 그토록 좋아한다는 너비아니나 소시지 종류의 반찬에 길들여진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아빠의 영향이 은근히 있었던 것 같다. 식탁에 올라오는 대다수의 반찬은 아빠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이루어졌었다. 주로 해초류나 생선 그리고 간이 세지 않은 심심한 시금치 등의 나물이 많았다.
우리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강릉 시골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다 생물을 반찬으로 자주 접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아빠한테 다음에 직접 물어봐야겠다). 그래서인지 아빠와 엄마 키즈인 나는 고기보다도 오징어나 고등어, 멍게와 같은 싱싱한 해산물이 좋았다. 다만 내 식습관의 큰 문제는 밥보다도 군것질에 목숨 거는 스타일이었다는 것. 내가 점차 크면서 대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서 군것질을 하는 횟수는 점점 줄었지만, 중고등학생 때 찌운 살들은 다 그놈의 과자 때문이었을 거다.
결혼 후 영국에서 살게 된 30살의 나는 글라스고에 온 지 막 5년이 다 돼가는 친구를 만났고, 그녀와 함께 이곳저곳을 놀러 다니며 영국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다. 그리고 현지인만 아는 카페, 레스토랑, 크고 작은 콘서트, 자연 농원 등을 놀러 다니며 느낀 첫 번째 인상은 영국은 비건 문화가 매우 익숙한 사회라는 것이다. 영국은 동네 슈퍼에 가도 비건 과자를 구할 수 있다. 비건 과자뿐이겠는가? 비건 우유, 비건 아이스크림, 비건 냉동식품, 비건 술 등 없는 게 없다. 그러니까 ‘비건이라서 살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은 적어도 영국에선 해당되지 않을 만큼 비건은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문화다. 심지어 영국에 오기 전까지 ‘비건’이라는 단어 뜻도 몰랐던 내가 ‘도대체 비건이 뭔데?’라는 호기심이 생기게 된 건, 그저 내가 영국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참 보잘것없는(?) 이유이지 않나. 영국에 살고 있어서 비건에 대해 궁금해졌다니… 영국은 도대체 뭐하는 나라이길래 이렇게 특별할 것 없는 소시민인 나에게 숨 쉬듯이 비건 문화를 보여주는 걸까.
이 글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약간의 온라인 서치를 했는데 놀랍게도 글라스고는 내가 직, 간접적으로 느낀 분위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실제 영국에서도 비건으로 살기 편한 도시라고 한다. 더 나아가 영국은 1944년 도널드 왓슨이 설립한 비건 커뮤니티(The Vegan Society)가 처음 시작된 나라답게 미국 다음으로 비건에 대한 인식이 보편적이고 편안한 문화로 자리 잡혀있다.
나는 이제껏 글라스고에서 방문한 어떤 식당에서든 비건 음식을 주문할 수 있었고, 만약 비건 메뉴가 없다면 직원에게 비건 옵션에 대한 유무를 묻고 별도로 요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행위에 대해서 그 누구도 당황해하거나 되물은 적이 없다. 그저 다를 것 없는 일상 그 자체였다. 영국이 보여준 비건 문화에 어느새 잘 적응이 된 나는 비건에 대해 조금씩 공부하게 되었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출발한 그때의 시작이 지금의 나를 비건 지향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