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elene Jul 27. 2022

5. 비건이 도대체 뭐길래?

비건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비건이 뭘 하는 건지, 페미니스트의 종류인가? 샐러드만 먹는 식단?’ 등등 도통 알리가 없을 것이다. 의도치 않은 식단 호불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비건 지향으로 사는 우리 아빠조차 비건이 뭔지, 비건 지향은 또 뭔지 전혀 모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만약 영국에서 살지 않았다면 평생 비건을 알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비건 지향으로 살아가는 지금의 내가 냉정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비건 문화는 관심을 갖고 안 갖고의 문제가 아니다. 세상은 비건과 논 비건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비건 문화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비건을 하는 이유, 비건 문화가 왜 대중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명확하게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비건(Vegan)은 식생활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동물로부터 착취된 그 어떠한 것도 먹지 않는다. 돼지고기, 소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버터 등 동물성 식품은 섭취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비건이라고 하면 보통 샐러드와 같은 풀만 먹는 줄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생각보다 비건식으로 할 수 있는 식단은 그 범위가 아주 넓다. 오히려 육류를 먹었던 과거보다도 할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고 반찬이 다채롭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먹어 온 식습관에 입맛이 적응되어 있다. 비건 문화가 흔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고기를 먹어야 단백질 보충을 든든히 하고 우유를 통해 칼슘을 섭취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와서 채식을 하려니 당연히 어색하고 뭔가 영양적으로 불균형해 보일 수밖에 없다. 내 친구 중에는 부모님 덕에 어렸을 때부터 비건 문화에 친근하게 살아온 이탈리아인 친구가 있다. 그는 37살인 지금도 고기의 맛이 무슨 맛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맛이 궁금하지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고 한다. 참고로 그는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은 누구보다 튼튼하고 건장한 한 아이 아빠인데 나는 이 친구를 통해 비건은 불균형한 식사라는 선입견에서 아주 아주 쉽게 벗어날 수 있었다. 


<채식주의의 종류>

정확하게 분류를 하자면 비건은 채식주의자의 형태 중에 하나일 뿐이다. 비건 말고도 채식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형태는 다양하다는 뜻이다. 내가 공부한 바에 따르면 채식주의는 비건을 포함해 8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니 채식의 종류가 무슨 8가지로 나뉠 게 있냐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단언컨데, 절대 그렇지가 않더라.


1. 폴로(Pollo) 테리언 
폴로 + 베지테리언이라고 해서 폴로 테리언이라고 한다. 폴로는 우유나 유제품(치즈, 요구르트, 버터 등) 그리고 계란과 같은 동물의 알, 생선, 닭고기를 다 먹는 단계의 채식주의자다. 


나는 처음에 폴로 테리언에 대한 설명을 알고 난 후에 ‘이게 무슨 채식주의자인가? 웬만해선 골고루 다 먹는구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폴로 테리언의 주요 신념은 붉은 고기를 먹지 않는 것. 따라서 돼지, 소 고기를 먹지 않는 단계로 이해하면 쉽다.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를 한 번쯤 경험하고 싶을 때 도전해 보기 좋은 단계라고 생각한다.


2. 페스코(Pesco) 테리언

페스코 + 베지테리언을  줄인 말이다. 페스코는 라틴어로 생선이라는 뜻이다.  페스코 테리언은 ‘어류’는 먹는 채식주의자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래서 페스코 테리언은 육고기/닭고기 다 먹지 않는다. 단, 계란과 유제품, 어류만 섭취하는 채식주의자이다.


페스코 테리언은 폴로 테리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다.  붉은 고기를 먹지 않은 폴로 테리언에서 먹지 않는 음식이 닭고기와 같은 가금류가 더해진 단계다.


3. 락토 오보(Lacto-ovo) 베지테리언
여기서 락토는 젖, 오보는 알을 의미한다.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은 이름 따라 달걀, 우유, 꿀과 같은 동물에게서 어쩔 수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먹는다. 이들은 채식 기반으로 육류, 닭고기는 먹지 않지만 달걀과 유제품, 꿀은 인간이 강제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다면 자연스레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4. 락토(Lacto) 베지테리언
락토 오보 베지테리언이 있다면 락토만 허용하는 베지테리언도 있다. 락토 베지테리언은 락토 오보와 달리 유제품을 섭취하는 채식주의자를 말한다. 채식 + 유제품(우유, 버터, 꿀, 치즈, 요구르트 등) 이 이들이 섭취하는 음식의 종류라고 생각하면 쉽다. 물론 육류, 어패류, 계란은 먹지 않는다.


5. 오보(Ovo) 베지테리언 
이쯤 되면 쉽게 유추할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은 오보 즉 알을 먹는 단계로 고기, 생선, 유제품은 먹지 않지만 계란과 같은 가금류의 알은 먹는다. 유제품을 먹는 락토 베지테리언과 달리, 오보 베지테리언은 유제품을 먹지 않고 채식+ 알을 섭취하는 단계인 것이다.


6. 비건(Vegan) 

완전한 채식주의자. 비건은 동물성 식품은 제외하고 오직 식물성 식품만을 섭취한다. 이들은 먹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 실험을 한 그 어떠한 제품도 사용하지 않으며 모피, 앙고라 와 같은 옷에서부터 화장품 등 식습관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에서도 동물의 원료가 되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비건의 경우는 식습관을 넘어 비건 패션, 비건 뷰티와 같이 라이프스타일에도 같은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비건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동물 보호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이유에서 시작하는 경우도 정말 많다. 실제로 오늘 비건한 하루를 살았다면 내일의 지구를 살릴 수 있다.(이건 다음 글에서 다뤄볼 예정!) 그렇다 보니 비건은 요즘의 트렌드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기후 위기가 도래한 아픈 지구를 위해 물빠지면 그만인 트렌드가 아닌 앞으로도 계속될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7. 프루(Fruit) 테리언
얼추 짐작했겠지만 프루 테리언은 과일과 견과류만 허용하는 채식주의자다. 채식주의 레벨 중에 가장 상위 레벨이라고 볼 수 있겠다. 프루 테리언은 비건보다도 극단적인 식단을 지향하는데 이는 동물만큼이나 식물의 생명도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직 내 주변에서 찾아보지 못한 단계이지만 만약 프루 테리언을 만나게 된다면 식단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다. 과일과 견과류만으로 어떻게 식단을 맛있게(?) 꾸리고 있는지 말이다. 조심스럽지만 나의 생각은 프루 테리언으로 살게 된다면 지나친 영양 불균형이 오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8. 플렉시테리언
플렉시블(Flexible) + 베지테리언을 더해 생겨난 단어이다. 말 그대로 유연하게 육식을 하는 채식주의자란 뜻이다. 플렉시테리언은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육식을 하기도 하는 단계를 말한다.


그럼 일반 사람들이랑 다를 게 없네?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평소에 꾸준히 채식을 하다가 어쩌다 한번 육식을 하는 것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면 플렉시테리언은 왜 플렉시블 한 걸까. 평소에는 채식을 하지만 단체 회식이나 가족 모임과 같은 자리에서 특별히 나로 인해 영향을 주고 싶지 않은 경우가 많을 거다. 어찌 보면 채식주의 단계 중에 가장 자유로운 채식주의자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채식은 왜 하는 걸까?


채식주의는 건강상의 이유, 종교적인 신념, 동물보호, 환경 보호 등 그 이유는 제각각이다. 다시 말해 채식을 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육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환경에는 엄청나게 선한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육식을 멈추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지금보다도 훨씬 깨끗한 지구에서 살 수가 있다. 그래서 개인적인 생각은 비건 라이프스타일이 부담스럽다면 플렉시테리언으로의 유연적인 경험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 완벽한 1명의 비건보다 불완전한 비건 100명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조금씩 비건의 대한 개념이 알려지고 있지만 국민의 다수가 안다고 하기엔 아직 걸어야 할 길이 많다. 왜냐하면 대중화라는 것은 개인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호기심이 모여 두 사람이 되고, 세 사람이 되고 그렇게 다수가 되어 일반화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건 문화가 올바른 개념으로 자리 잡히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과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30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건 문화를 실천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기쁘고 이러한 멋진 문화와 가치를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비건을 위한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