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로 기억합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블로그에 글을 올리려고 들어온 저는 댓글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웹소설 작가로 유명한 로즈빈님으로부터 온 것이었습니다.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공연기획자 관련 정보를 수집하던 중에 제 글을 보게 되셨다며, 소설 속 인물의 직업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제 글을 참고하고 싶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흔쾌히 사용하셔도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다시 작가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쓴 글을 정독했고, 작품을 창작하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프랑스 컴퍼니와 합작 프로젝트를 한 이야기를 인상적으로 읽으셨고, <내 땅의 땀으로부터> 프로젝트를 할 때 농촌 체험한 이야기를 참고해 에피소드도 쓰셨다고 했습니다. 제 이야기가 소설의 소재로 쓰인다니 다시 생각해도 놀랍기만 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작품의 공개일을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그 결과물이 지난 7월 4일(일)에 네이버웹소설을 통해 공개되었습니다. 제목은 <사랑 같은 건, 처음>. 무려 여주인공의 직업이 공연기획자입니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무대 뒤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간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요.
작품 속 여주인공인 윤서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한불 합작 공연의 축제 총괄을 맡게 되면서 감독으로 온 전남편 남현준과 재회하게 되는데요. <철의 대성당>과 <내 땅의 땀으로부터>, 두 편의 한불 합작 공연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저로서는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꼭 과거로 여행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작가님은 이렇게 제 글을 참고했다는 사실도 밝혀주셨습니다. 공연기획자로 일하며 각종 홍보물에 제 이름이 들어간 적은 많았지만, 이렇게 소설 속 크레딧에 제 이름이 들어갔다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그저 얼떨떨하기만 합니다.
소설 속 인물의 직업 세계관을 보다 효과적으로 구축하고, 생생한 에피소드를 전해드리기 위해 실제 공연기획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공연기획사 <올웨이즈 어웨이크> 김연정 대표님의 에세이를 참고하였습니다. 에세이를 정독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으며, 집필에 큰 도움을 받은 만큼 아래와 같이 명시합니다.
처음 브런치와 블로그에 공연기획 이야기를 올릴 때만 해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질만한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워낙 이 직업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도 않거니와, 그나마 알려진 것도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급여가 적으며, 심하면 밀리거나 못 받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야근과 잔업이 많다는 것.
공연기획자 멘토로 학교에 강의를 다니면서 이 직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직업에 대한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아 더더욱 궁금한 것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일을 하면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공연을 좋아하고,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이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습니다. 쓰자고 마음먹었으니 쓰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대 뒤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무대 위에는 없는 이야기. 네. 공연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항상 무대 뒤에서 일하기 때문에 앞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홍보물에 크레딧 한 줄 남는 것으로 낙을 삼곤 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이름이 담긴 책자를 가끔 열어보며 '나는 거기에 있었지. 그리고 열심히 했지!'라고 되뇌곤 했습니다. 모든 것이 사라진 뒤에도 그 이름은 남아있었고, 휘발되지 않은 기억도 같이 존재했습니다.
처음에 작가님의 메시지를 보고,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우리네 이야기도 이렇게 빛나는 소재로 쓰일 수 있다니 기뻤습니다. 이번 기회로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도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상기시켜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The Show Must Go On. 공연이 계속되려면,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코로나로 힘들었지만, 지금도 힘든 시기를 견디고 있는 중이지만, 힘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비록 우리의 존재가 드러나는 법은 없지만, 우리는 정말 멋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포기하려고 할 때마다 내 글을 발견해준 사람들
블로그의 이웃은 2,000명 남짓이지만, 브런치의 구독자는 100명입니다. 상대적으로 많은 구독자수를 보유하고 있는 다른 작가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를 무시하기 힘들었습니다. 브런치북 공모전도 몇 차례 탈락했습니다. 과연 내 글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생각했습니다. 정말 계속 써야 할 이유가 있을지 반문한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포기할 때마다 제 글을 발견해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모 광고회사, 교육회사, 커리어 콘텐츠 플랫폼인 오직(0ZIC), 그리고 로즈빈 작가님까지. 얼마 전에는 모 재단이 실시하는 출판 지원사업에 브런치북으로도 발행한 적이 있는 <공연과 함께 한 모든 순간>을 지원했고, 1차 서류심사를 통과했습니다. 내일은 면접을 보러 가는 날입니다. 최종 선정이 될 수도 있겠지만, 탈락할지도 모르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겸허히 받아들이고,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음먹어봅니다. 그것이 제 글을 읽어준 구독자분들과 저의 글을 발견해준 사람들에 대한 최선의 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 스티브 잡스의 공식 전기를 읽으면서 그가 말한 영감의 원천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던 저는 많은 작가들의 고귀한 문장에 빚지고 살았습니다.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도움을 받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