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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Dec 14. 2020

공연기획자가 하는 일 5. 홍보의 중심-포스터 만들기

디자인을 못하는 기획자로 산다는 건. 

지금까지 다양한 역할로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포스터 이미지를 모아보았다. 국내와 국외를 포함하는 것이고, 연극과 뮤지컬, 페스티벌, 전시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 어느 쪽도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이중 어느 하나도 내가 직접적으로 작업한 시안은 없다. 물론 기획자 중에는 뛰어난 미적 감각을 자랑하며, 편집 툴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툴도 다루지 못하는 기획자는 디자인이란 업무에서 멀찍이 떨어질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기획자는 공연보다 먼저 관객을 만나게 될 홍보물의 이미지에 대해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멋진 포스터를 클릭하는 것은 예쁜 표지의 책을 사고 싶어 지는 심리랑 같은 것


공연 티켓을 구매할 때뿐만 아니라, 공연계의 트렌드도 살펴볼 겸 인터파크나 예스24 같은 티켓 예매사이트에 자주 들어가 보는 편이다.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나도 모르게 클릭하게 되는 공연이 있었으니, 바로 포스터가 훌륭한 공연이다. 무심코 서점에 방문해 책을 둘러보다가 표지 이미지에 이끌려 책을 산 경험이 몇 차례 있다. 순전히 충동구매였는데 공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이미지가 주는 자극은 어느 것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기획자는 공연보다 먼저 관객과 만나게 될 홍보물의 이미지에 대해 반드시 고민을 해야 한다. 특히 포스터 이미지는 공연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드러내 주기도 하고, 공연에 등장하는 인물의 개성과 특징을 극대화해주기도 하며, 공연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기획자는 스태프, 그리고 디자이너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게 된다.




포스터에 무엇을 담고 싶나요?


수많은 포스터를 보았지만, 잘 된 포스터의 공식이 따로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등장인물의 특징을 잘 살렸다거나, 색감을 잘 썼다거나, 폰트를 개성 있게 잘 썼다거나 등등 서로 다른 장점으로 돋보이는 포스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작품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디자인의 '디'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 또 작품의 홍보에 어떤 컨셉과 문구를 사용할지에 대한 생각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서 작품의 타이틀과 홍보 컨셉, 작품에 대한 정보와 작품을 상징적으로 대변해 주는 한 줄 문구 같은 것들을 정리해서 디자이너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


물론 이 기획자의 생각과 언어를 이미지로 멋스럽게 풀어주는 것은 디자이너의 몫이지만, 그전까지는 기획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기획자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두루뭉술하게 하거나, 컨셉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면 포스터의 결과물도 모호할 수밖에 없다.


어느 디자이너가 이런 기획자의 말이 제일 싫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이쪽 방면의 전문가시니까 알아서 해주세요. 잘"

그리고 공들여 작업을 해서 결과물을 보여주면, 그걸 보고는

"아, 이런 건 아니고. 뭐라고 해야 할까? 느낌 아시죠? 요즘 트렌드에 맞춰서 좀 세련되면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왜 그런 거 있잖아요?"라는 식의 반응이 이어져 작업하기 너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기에 정확히 그 입장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포스터를 만드는 작업은 디자이너만의 작업이라기보다는 기획자와 디자이너와의 협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만큼 디자이너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너는 디자인을 하렴, 나는 글을 쓸 테니!



연습이 끝나고 난 뒤. 모여서 시작하는 작업 

공연 예산이 충분하지 않았던 시절, 디자인에 쓸 비용이 없었다. 그래서 극단에 있던 배우가 디자인을 맡게 되었다. 당시에 그 배우는 무대에까지 올라야 하는 상황이라 연습이 끝나고 난 저녁 무렵에야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라고 했다던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나는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를 정리해서 주고, 그 배우는 디자인 작업을 했더랬다. 전문 디자이너가 작업한 포스터가 아닌 만큼 훌륭한 퀄리티는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그 고생만큼은 정말 고퀄이었다.



사진이냐? 디자인이냐?





포스터에 사진을 쓰려면, 좋은 컷이 많이 필요해요!


사진도 분야마다 포토그래퍼의 강점이 다르듯이, 공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공연 사진은 특히 인물의 표정이나 움직임을 생동감 넘치게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는 곧 단순 인물 혹은 배경 사진의 촬영법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포스터 이미지를 사진 컷으로 쓰기로 결정한 경우라면, 여러 구도로 다양한 컷을 많이 찍어두는 게 좋다. 보통 포토그래퍼와 계약을 할 때는 각종 홍보물에 들어갈 이미지(포스터 + 리플릿 + 프로그램북)를 모두 포함해 계약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출연진이 많을 경우에는 작업 시간도 길고, 노동 강도도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획자는 이런 고생을 조금 더 줄이기 위해서 작품에 대한 컨셉에 대한 설명과 동시에 필요한 컷에 대해서도 미리 언급해두는 것이 좋다. 사실 출연진의 사진만 잘 촬영해두어도 홍보에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기 때문에 좋은 사진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을 못하는 기획자로 산다는 것

공연기획자로 살면서 나 역시도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이기에 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했던 프로젝트에 참여해 주셨던 디자이너나 포토그래퍼 분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매체 디자인을 한다면, 분명 더 많은 비용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작업에 힘을 보태주셨다. 사소한 수정도 할 줄 모르는 탓에 디자이너나 디자인을 맡고 있던 극단 단원, 혹은 페스티벌의 직원에게 부탁을 한 적도 많았다. 짜증 났을 법도 한데 늦은 시간에도 작업에 열과 혼을 다 바친 그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공연기획 이야기는 앞으로도 쭉 이어집니다. 재밌게 읽고 계시다면, 공감과 댓글을 많이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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