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정 Sep 29. 2020

공연과 함께한 시간은 모두 소중했다.

공연 관람의 역사를 말해주는 티켓을 들여다보며

공연 티켓 모으게 된 사연


얼마 전 책상 정리를 하다가 서랍까지 손을 뻗게 됐다.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말았다. 티켓이 나오고, 또 나왔다. 공연 애호가분들 중에서는 공연 티켓을 가지런히 수집하기 위해 티켓북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티켓북의 볼륨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머지 나중에는 큰 박스에 티켓을 보관하게 되신다고. 이마저도 포화상태에 이르러 감당할 수 없게 될 즈음에는 눈물을 머금고 결국 티켓을 버리게 된다고도 들었다.



나도 티켓북을 따로 구매하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티켓북을 사서 티켓을 모으다 보면, 결국 늘어나는 티켓북의 양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하나의 이유는 티켓마다 규격이 다른 경우가 종종 있어 하나의 규격을 가진 티켓북에 티켓을 모두 수납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었다.

원래 무언가를 모으는 걸 딱히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티켓은 버리지 않고 모으게 되었다. 사실상 모으려고 했다기보다는 버리기가 아까워서 책상 서랍 안에 넣어두었다는 것이 맞겠다. 이렇게 남은 티켓 말고 분실하거나 버린 것도 꽤 된다.





티켓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왜 티켓을 버리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공연은 기록되지 않는 예술 장르라는 점 때문인 것 같다. 공연은 촬영 및 편집 후 제공되는 드라마와 영화처럼 후가공이 없다. 라이브로 진행되는 현장 예술이기에 매일 하는 공연이라고 해도 결코 같을 수가 없다. 비록 촬영을 통해 기록을 한다고 해도 극장에서 관람하는듯한 현장감까지는 고스란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공연이 잠시 존재했다가 아예 세상에서 증발되어버린 것 같다는 허무감을 느낄 때가 많다. 텅 빈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그것이 존재했다'라는 사실이 기록으로 남는 티켓을 모으게 되었다. '관람한 티켓이 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와 같은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티켓은 타임머신 같은 거라서요.

또 한 가지 이유로는 내가 관람한 공연의 대부분은 지인들이 참여한 것들이라, 그들의 노고를 기리고 싶은 측면도 있었다. 지인들이 출연한 공연은 초대로 본 경우가 많은데, 이때는 프로그램북을 샀다. 한때는 이 프로그램북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았었다. 그런데 그 책자가 너무 많이 쌓여서 얼마간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또 티켓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가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이때 이런 공연을 어디에서 누구와 봤구나' 하는 기억을 소환해 주는 타임머신 같은 기능을 해준다고나 할까. 티켓에는 비록 최소한의 정보밖에 담겨있지 않지만, 그걸 볼 때마다 공연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곤 한다. 사실 개중에는 정말 흐릿한 잔상으로밖에 남지 않은 공연들도 있다. 공연을 관람할 때의 컨디션, 취향의 문제, 또 관람한 지 오래되어 잊혀진 것들까지, 이유는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한 명으로서 어떠한 공연과 함께했다는 기억은 모두 소중하다. 기획자로 일하면서 내가 기획한 공연을 제대로 보지 못한 한풀이를 다른 공연을 통해서 많이 했고, 내게 소중한 의미를 지니는 지인들이 참여한 공연을 찾아가 그들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낼 수 있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내가 기획한 공연을 올렸을 때, 그들이 그러했듯이.



공연과 함께한 시간을 말해주는 산증인, 티켓 


티켓을 제작해 수기로 적던 시절도 떠오른다. 예매처 발권기 시스템을 사용하면 발권수수료가 있어서 그 예산을 줄이기 위해 티켓을 직접 만들고, 좌석 번호를 수기로 적어 관객분들에게 드렸던 적이 있었다. 좌석 번호가 중복되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가 꽤나 컸던 기억이 난다. 관객 숫자가 많은 날에는 일일이 번호를 적느라 고생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이런 고생을 피하기 위해 숫자가 돌아가는 도장을 활용해서 좌석 번호를 찍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고생도 다 추억이다.


티켓을 보면서 일의 테두리 안에서든, 혹은 일의 바깥 권역에서든 공연과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길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정씨는 삶의 낙이 뭐예요?"라고 물을 때, 나는 그런 건 없다고 말했었다. 그때 사람들은 "아니, 그럼 도대체 스트레스는 어디서 풀어요?" 라거나 "취미를 새롭게 가져보는 게 어때요?"라고 조언하곤 했다. 정리를 하면서 찾은 이 많은 티켓이 말해준다. 내가 좋아한 일도 공연이었고, 삶의 낙이자 취미도 공연이었노라고.

역시나 이번에도 티켓을 버리지 못하고, 조그마한 상자 안에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어디론가 분실되거나 버린 티켓들이 아깝다. 그건 내 삶의 전부고, 역사였다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무언가를 수집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비롯되는 행위다. 그것이 닳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서 지켜내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이 티켓들은 영원히 버리지 못할 것만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