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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Aug 30. 2020

축제가 그리워지는 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올해는 모두에게 가장 잔인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나 역시도 미처 예상하지도 못했던 위기의 순간을 보내면서 상실감과 공포감을 체감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와 교육계, 산업계 어느 곳에서든지 들려오는 소식이 너무나 절망적이다. 해도 걱정 안 해도 걱정인 가운데, 계획하기도 실행하기도 어렵다.


나름대로 상반기까지는 그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미뤘던 공부도 하고, 리서치도 하면서 그래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을 시작한 이래로 제대로 누려본 적 없는 여유도 갖고, 물론 순전히 내 의지였다기 보다는 강제적으로 갖게 된 휴식 시간이었지만.

사실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부터는 잠을 제대로 자본 기억이 없다. 여러 가지 걱정과 부담감에 짓눌려서 깨고 잠들고 다시 깨기를 여러 번. 그 생활을 계속해왔다. 그게 코로나로 인해 더 심해졌다. 지금의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이 너무 아득해 보이고, 과거는 너무나 찬란해 보인다. 그 갭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발버둥 치고 있다. 

서울거리예술축제 - <내 땅의 땀으로부터> 공연 시


엊그제 외장하드 정리를 하다가 서울거리예술축제에서 <내 땅의 땀으로부터> 공연을 했을 때, 사진들을 찾았다. 처음 내 회사를 만들고 제작한 공연이라 그런지 몰라도 이 공연을 떠올리면 늘 애틋한 생각이 든다.



작품 리서치를 하러 시골에 가서 어느 할머니의 농사일을 도울 때, 할머니께서는 "아가씨들 왜 여기 와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려고 해! 일을 잘하지도 못하면서... 얼른 서울 올라가.."라고 잔소리를 하시면서도 좋아하셨다. 그때만 해도 이런 공간에서 공연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고층건물들이 우뚝 서 있는 도심의 중앙에서 공연하게 되다니. 외국 공연팀 멤버와 한국에 거주하던 외국 기자들도 장소 선정이 절묘하다고 했다.

공연에 대해 어렵다고 평하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땅의 생명력, 전통의 뿌리, 우리의 밥줄 등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농업을 다룬 작품을 도심의 중앙에서 선보일 수 있어 좋았다. 우리 삶의 원동력은 무엇보다 밥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던가. 찬란하게 빛나는 고층건물과 화려하게 빛을 발하는 제품들도 모두 인간의 손길이 아니었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들이다. 그 노동력의 본질에 대해 공연을 통해 말해보고 싶었다. 


서울거리예술축제 - <내 땅의 땀으로부터> 공연 당시 사진

이 날 공연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던 날이라 그런 것 같다. 보통 기획자는 커튼콜에 함께하지 않는다. 로비에서 관객들에게 무언의 감사 인사를 전할 뿐. '이 공연을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런데 공연의 마지막 날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던 퍼포머와 스태프들이 나를 기어이 앞으로 불렀다. 계속해서 부르는 통해 거절도 못 하고 앞으로 나가서 인사를 하려던 순간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왜인지 모르지만, 그때 엄청나게 많이 울어버리는 바람에 팀 멤버들이 안아주면서 위로해 줬던 기억이 난다. 공연 보러 왔던 지인은 내가 펑펑 우는 걸 보고,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울게 생긴 사람이 우는 걸 보니 당황스럽다'라고 했었다.


얼마 전부터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진행하는 <텐츠 임팩트-AI: Storyteller> 교육생으로 뽑혀 AI와 스토리텔링을 접목해보려 시도하고 있다. 문과생 출신으로 과학기술에 무관심한 나날을 보내왔고, 나와는 전혀 교집합이 없는 세계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우연히 만난 선생님께서 해준 이야기를 듣고 도전해보리라 마음먹었다. 


"힘든 시기지만, 자기 같이 젊은 기획자들은 아직 아이디어가 있잖아. 분명 새로운 걸 배워서 색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거야. 이 기회에 조금 쉬면서 연구도 하고. 나중에 예술가들을 모을 수 있는 새로운 판을 또 깔아봐야지!"


모두가 절망해도 기획자는 아직 절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가 끝나도, 끝나지 않아도, 우리는 꾸준히 생각하고, 실행하고, 협업하면서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아야 하는 운명일지어니.  


같이 고생해 준 팀 멤버들과 공연을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이 떠오르는 밤이다. 너무 아름답고 찬란했던 밤. 동료들이 무사하게 버텨주기를. 그리고 관객분들은 건강하게 기다려주시기를.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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