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정 Oct 26. 2021

태도만은 남는 것

결과는 어쩔 수 없더라도(실패한 프로젝트를 돌아보며 생각한 것)


청년기획자 플랫폼 일일일일일에서 '문답칠일'이라는 문답집 프로젝트에 참여 중이다. 기획자들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고, 답해보는 프로젝트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혹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꾸준히 하실 수 있는 거예요?" 혹은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등등이다. 오늘의 글은 그 질문에 대한 완벽한 답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삶의 가치관과 태도에 대해 한 번 적어보고 싶었다. 


결과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더라고요.


이동진 평론가의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 대로'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저는 조금 느리더라도 꾸준히 성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매일을 성실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성실한 태도를 꾸준히 견지하는 것, 그것은 제 삶의 기본 골격이 되었습니다.


물론 매일 열심히 하루를 보낸다고 해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얻게 되거나, 보상을 받게 되는 건 아닙니다. 블로그에 제가 올리는 글은 어쩌면 굉장히 단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글만 보면 제가 하는 일들이 다 잘 되고, 그 과정도 매끄러운 거라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도 엄청나게 큰 실패를 맛본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 시련도 많이 겪었죠.

거의 제대로 쉬지도, 잠들지도, 먹지도 못하며 타지에서 모든 열과 성을 쏟아부으며 일을 했건만, 결과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던 어느 순간이 떠오릅니다. 저는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연고도 없는 지방에 내려가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직원은 저랑 같이 일하는 언니 딱 두 명이었어요. 꽤나 큰 규모의 축제였고, 해야 할 일이 많았지만, 제가 선택한 일이기에 불평한 적은 없습니다.


원래 약속된 숙소가 있었지만, 그게 취소되면서 저는 모텔 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사무실을 가기 위해 모텔을 나오면, 저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견디는 게 힘들었습니다. 모텔 안에 있는 시간이 너무 싫어 새벽같이 일어나 헬스클럽에 갔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하고, 씻고 사무실에 갔어요. 그리고 거의 저녁 9시~12시까지 일했습니다. 할 일도 많았고, 또 모텔로 가기도 싫었거든요. 그런 일과를 반복했습니다. 몇 달간 저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고, 행복해할 것만을 생각하면서요.

집에 몇 달간 가지도 못했고, 거의 하루도 쉬어본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부 상황으로 인해 갑자기 장소가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거리였는데, 바닷가 모래사장으로요. 축제가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이었어요. 모든 걸 바꿔야 했고, 모든 걸 설명해야 했죠. 그러나 결국 결과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때 나온 기사를 보면, 그 아수라장의 결과물이 고스란히 찍혀있죠.

그때는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붙잡고 설명하면서 해명하고 싶었어요. 나는 정말 하루도 안 쉬고 열심히 했는데, 모텔 생활까지 하면서 버텼는데, 이런저런 상황과 외부 여건으로 인해서 안 좋은 결과가 나오고야 말았다고요. 결국 축제가 끝나고도 쉬지 못하고, 이곳저곳에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부정적인 기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수정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으면서 수습하려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어요. 서울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 모습이 아른거려 괴로워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그 결과로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까 두렵고 무섭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나 그 일은 제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물론 그 인과관계는 누구에게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었지만, 과정상에서 배운 것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나만큼은 결과만으로 과정의 가치를 무시해버리는 우를 범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자원봉사를 하던 학생이 그러더라고요. 서울에서 온 기획자가 호텔 생활을 하면서 예산을 펑펑 쓴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제가 모텔 생활을 하면서 매일 같이 야근을 하면서 일하고 또 일했다는 걸. 문제점을 어떻게든 수습해 보려 했다는 걸요. 결국 나만 아는 거죠.


태도만은 남는 것, 어려워도 내가 지켜내고 싶은 것


일도 그렇지만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 좋은 일도 다 나쁜 일도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시에는 좋은 일이었으나, 시간이 지나 보면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있었고, 당시에는 처참한 결과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많은 깨달음과 배움을 안겨준 일도 있었죠.

결과는 상황이니 운이니 하는 외부 요인이 작용하기에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 태도만은 남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떤 태도로 그 일에 임하고, 어떻게 사람들을 대했는가 하는 것들 말이죠. 그것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 와도 내가 단단하면, 지킬 수 있는 것이죠. 다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결과를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 없기에 무언가를 성실하고, 꾸준하게 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 마음처럼 쉽지 않은 일, 어찌 보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조그마한 돌이라도 던져보는 것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어렵기에 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운 때문에 잘 되는 경우도 간혹 있죠. 그런데 그게 얼마나 더 오래갈 수 있을까요? 순전히 운이었잖아요. 그 작은 확률에 기대면서 노력하지 않는다면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불안하겠습니까.

그러니 과정상에서 내가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로 나태하고 미진했다면, 결과가 좋다고 해서 만족할 수 있을까요? 모두가 칭찬하고 인정해 줘도 내가 스스로를 인정 못한다면, 계속 나아갈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인정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했다면, 그 자세는 내 몸에 새겨집니다. 습관처럼 새겨지고, 삶이 지속될수록 깊어집니다. 운에 기대기보다는 매 순간에 진심을 다하게 됩니다.

실패, 물론 두렵습니다. 그러나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만나는 실패는 나쁜 실패입니다. 그에 반해 노력을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좋은 실패입니다. 과정상에서 내가 얻은 것이 있잖아요.


주변 사람들은 당장의 결과만 보기 때문에 당신이 실패했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알죠. 지금의 실패를 계기로 더 발돋움할 것이라는 걸. 최선을 다했기에 미련도 아쉬움도 없습니다. 자책할 필요도 없어요. 보이지 않는 성장을 일군 것입니다. 남들이 뭐라건 신경 쓰지 마세요. 지금은 나만 알지만, 언젠가는 다들 알게 될 거예요. 저는 그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요즘 저는 시흥의 예술가와 인터뷰를 하고 책을 내야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요. 그중에서 치매 걸린 어머님을 돌보는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은 치매 때문에 하루가 다르게 기억력을 소실해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 자녀가 속을 썩여서 어머니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치매 걸린 어머니가 "야야. 그러면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 줘야 돼. 그래야 부모가 없어도 자식이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라고 하셨답니다. 기억을 잃어가도 한 사람의 자세, 평생 붙들어온 신념만은 남는다는 거죠. 마치 나이테처럼.


그 이야기를 들으며 성실성과 꾸준함이 제 몸에 그렇게 새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와도 흔들림 없이 매일을 성실한 태도로 임하는 것. 그것이 제가 삶을 살아내고 싶은 태도이자, 방식입니다. 태도가 삶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기에 매일을 성실하게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