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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정 Apr 25. 2022

공연기획자의 고충 시리즈 1. 객석을 채워라!

따뜻한 응원의 말이 필요했던 순간

공연기획자의 고충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야근이 많고, 주말 근무도 있기에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직업임이 사실입니다. 거의 밤을 새우고 일하다 보니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적도 많고, 심지어는 쓰러진 적도 있습니다. 또 급여가 높지 않은 직업임이 사실입니다. 야근 수당이나 추가 근무 수당 같은 것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요.

그러니 공연기획자로 오래도록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만족과 업에 대한 애정 때문에 이 직업을 지키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애정이 너무 커서 고난의 여정을 직접 선택한 셈이죠. 그래서 오래 일한 이들 중에서 돈이니 워라밸이니 이런 걸로 불평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습니다. 기획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고충은 바로 '객석을 채우는 일'입니다. 아니 그보다는 그 와중에서 듣는 이야기들이죠.



무슨 일을 하든 과정보다는 결과로 평가받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 간에 결과물로 심판받아야 하는 날이 오게 마련이죠. 방송이라면 시청률이라는 지표, 영업이라면 판매액이라는 수치로 평가를 받을 겁니다.


그렇다면 공연은 무얼로 평가를 받을까요? 맞습니다. 관객 수와 티켓 수익이겠죠. 그러나 관객이 많다고 해서 티켓 수익이 높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 관객들 중 유료와 무료의 비율에 따라 수익이 정해질 테니까요.

공연장에 가보면, 공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공연이 성공했느냐 아니냐를 바로 판가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객석이 어느 정도 찼는가, 두 번째는 현장의 분위기입니다.

공연이 잘 팔리려면 어때야 할까요? 우선은 작품성이 좋아야 하겠죠. 그러나 작품을 보기 전에 판단할 수 없으니 관객들은 참여진(출연진과 스태프)을 보고 결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래서 참여진의 존재에 무게중심이 쏠리는 경우가 많죠.

저는 그런 작품보다는 다소 무거운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연극을 많이 기획했고, 그 때문에 객석을 채우는 것이 항상 어려웠습니다. 사실상 객석은 함께 하는 모든 사람과 작품의 힘으로 채워지는 것이 맞다고 보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탓을 기획자에게 전가하는 경향이 큽니다. "홍보를 어떻게 한 거예요?"와 같은 질책부터 "나 같으면, 지금 길거리에 나가서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아서라도 공연장에 데려오겠네요!"와 같은 힐난도 많이 하죠.


사실 그 이야기가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기획자는 발을 동동 구르게 됩니다. 객석이 비게 되면, 수익은 물론이거니와 공연 분위기도 그다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열심히 준비해서 무대에 서는 배우와 현장에서 노력하는 스태프들을 볼 면목이 없거든요.


객석이 비게 되면, 여러 말이 오가기에 이제는 어느 정도 담담해졌습니다만, 제가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발언은 이것이었습니다. 모 제작자가 웃으면서 한 말입니다.


표가 안 팔리면, 나는 극장 앞에서 목매달아 자살할 거야. 
그리고 김연정 때문에 죽었다고 유서를 남길 거야!


모 제작자는 몇몇 스태프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 "공연 티켓이 팔리지 않으면, 극장 앞에서 목을 매달아 자살할 것"이라며, 그리고 "김연정 때문에 죽었다고 유서를 남기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 섬뜩한 말이라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주변에 있던 스태프가 당황해 그 제작자분에게 그건 농담으로 할 말이 아니라고 했고, 저 역시도 그런 말은 농담이라기엔 지나치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저 프로덕션에서는 처음 약속했던 사례비도 다 못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나중에 투입됐지만, 그 회사의 직원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습니다. 보도자료를 열심히 썼고, 기자분들에게 성심성의껏 이메일도 보냈습니다. 회사의 SNS 계정도 열심히 관리했고, 단체를 모객 하기 위해 전화도 부지런히 돌렸고, 심지어 공연을 홍보하기 위해 포스터와 리플릿을 가방에 넣고 발품을 팔면서 공연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외국 관객들을 모객 하기 위해서 관객들과 외국어로 이메일을 주고받았고, 해외 매거진 회사에 공연 자료를 번역해 보내기도 했었죠. 공연이 시작되고부터는 줄곧 로비를 지키며 관객분들에게 티켓을 나눠드리는 일도 했고요. 그런데 저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간의 노력이 무슨 가치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당시 제가 버틸 수 있었던 건 공연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같이 하는 사람들과 지지해 준 관객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프로덕션이 다 저런 것은 아닙니다.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발 벗고 나서 홍보와 판매에 힘을 보태는 훈훈한 곳도 있습니다. 모 배우분께서는 지인들에게 공연을 홍보해 티켓 판매에 도움을 주셨고, 더 홍보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너무 감사해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늘 응원하고 있습니다. 공연은 팀워크의 예술이라는 말이 실감 났던 순간이었습니다.

기획자는 객석을 채우기 위해 언론사에 부지런히 보도자료를 뿌리고, 현장 홍보물 및 온라인 홍보물을 제작합니다. 또 SNS 계정을 관리하고, 단체관람객 모객을 위해 여러 곳에 공문을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하며, 우편 발송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판매가 많이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초대권도 부지런히 뿌리고, 이벤트도 부지런히 열어 객석을 채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물론 초대권을 뿌린다고 해서 객석이 다 찬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예약을 해두고 오지 않는 노쇼(No-Show) 관객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공연 당일, 남은 것은 현장 판매가 있는데요. 현장에서 구매해 주는 분들이 있으면 정말 감사하죠.


열정을 다해 연습하는 배우들과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 스태프들을 위해, 그리고 공연의 성공을 위해 늘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늘 결과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했다고는 자부합니다.

그러고 보니 객석이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매진으로 마감된 공연도 꽤 있었어요. 그때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현장에 오신 관객분들에게 남은 좌석이 없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참 송구스러웠지만요.

문득 매진돼서 관객으로 꽉 찬 공연장이 그리워지는 밤입니다. 오늘 밤에는 이 꿈을 꾸면서 잠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객석이 꽉 찰 때만큼은 기획자가 정말 발 뻗고 편히 잘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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