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열심히 일해야지 다짐해봐요!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술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떨 때는 그 효과가 너무 미미해서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요.
기획서를 쓰다 보면 정량적 혹은 정성적 효과에 대해 기술하라는 항목이 종종 나오는데요. 사실 문화예술의 효과는 숫자로 결론 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참여한 관객이나 참여자 수로 그 효과를 평가하기에는 한없이 제약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몇 명의 사람이 참여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단 한 명이라도 그 프로그램에 온전히 몰입했느냐 여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변화는 거기서부터 일어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그 변화를 일으키기까지가 굉장히 힘든 거죠. 당장 문화예술이 없어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거든요. 그리고 내가 당장 라면 하나 사 먹을 돈도 없는데 문화예술을 즐긴다는 건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요.
언젠가 본 유튜브에서 나왔던 말을 기억하는데요. 집 밖을 안 나오고 인터넷만 할수록 가난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어요. 밖에 나와서 외식을 하고, 문화를 즐길수록 쓰는 비용이 높아지잖아요. 그러니까 아예 인터넷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보고 대리 만족하는 것에 그치는 거죠. 그게 당연해지는 거고요. 그러면 점점 문화예술을 접하는 사람들의 편차는 커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제는 코로나로 인해서 그 편차가 더 벌어지고 있죠.
저는 얼마 전에 복지관에서 노인분들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친구와 만났는데요. 그 친구가 말하길, 노인분들의 댁에 인터넷 설치가 안 되어 있는 경우도 많고, 핸드폰도 스마트폰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스마트폰이 있어도 ZOOM과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모르는 분이 많고요. 그러니 대면 만남이 불가해진 상황에서 시니어 분들이 즐길 수 있는 예술 활동은 지극히 제한적이게 된 셈이죠.
젊은 세대는 그래도 변화에 대한 적응이 빠른 편인데, 시니어들은 아예 그 변화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조차도 마련되지 않은 것이니까요.
코로나 전에도 예술로부터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많았을 거예요. 그러나 저 같은 기획자는 대부분 어느 정도 예술을 향유하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왔기에 무지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지방으로 수업을 다녀왔는데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데리고 공연을 보려고 하면, 아예 타 지역으로 가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이처럼 예술을 접하기 어려운 지역에 사는 사람도 있고요. 또 수업을 다니다가 모 학교에 가서 “공연 본 적 있나요?” 하고 질문했을 때 어떤 학생이 “방학 때, 브로드웨이에 가서 뮤지컬을 봤어요.”라고 대답한 게 기억이 남아요. 어떤 학교에 가면 공연을 한 편도 본 적 없는 학생도 있거든요.
아시테지에서 일할 때는 구청의 후원을 받았기에 일정 부분의 좌석은 소외계층에게 제공해야 했어요. 그때 장애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오셨던 어머님이 생각나요. 혼자서 휠체어를 밀고, 들며 올라오시는 걸 보고 계단으로 황급히 뛰어 내려가 휠체어에 앉은 아이를 옮기는 것을 도왔었죠. 공연 한 편 보러 오는 데도 이렇게 장벽이 많은데, 과연 다시 공연을 보러 올 엄두를 내실 수나 있을까 싶어 마음이 쓰렸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당연한 일인데, 누군가에게는 이 많은 장벽과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것이라니요. 예술로 세상을 개혁할 수 있다거나, 엄청난 변화를 일굴 수 있을 거라는 거대한 희망은 없어요. 그러나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균등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환경에 있거나,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많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문화예술이 가닿을 기회조차 없잖아요.
공평하지 않은 게 너무 많은데, 문화예술이라도 공평하게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지역아동센터의 학생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아이들 반응이 너무 부정적이었어요. 교육을 받고 마지막에는 자신이 쓴 문구를 읽는 것이었는데, 발표회 날 만나자고 하니 “네-니요.”라고 답을 하는 거예요. 그 아이들의 대답 습관이었어요.
발표회 날 아이들이 늦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웬걸요. 훨씬 더 빨리 와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이들은 그 시간이 좋았던 거예요. 나중에 다 끝나고 인사를 나누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우리 이제 다시 볼일 없죠?” 하기에 “왜 다시 보고 싶어?” 하니까 대답할 듯 말 듯하며 돌아서 가던 표정이 생각나요. 문화예술이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어도 적어도 사람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하게 돕는 윤활유가 될 수 있음을 느꼈고,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 보니까 이 분야의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무료로 궁금한 것을 답해주거나, 인터뷰에 응해주는 것이겠더라고요.
제가 너무 문화예술을 사랑해서일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이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요. 저부터 일단 더 노력해야겠네요. 문화예술을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