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연정 Aug 28. 2022

[문답칠일01] 기획자 당신, 안녕하신가요?

기획자로서의 나, 스스로에게 안부를 물어보아요.

이 글은 지난해 청년기획자 플랫폼11111에서 진행된 프로젝트 <문답칠일>에 작성한 것을 그대로 발췌해 가져온 것입니다. 문답칠일은 기획자들에게 의미 있는 질문을 고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글로 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기획자 당신, 안녕하신가요? 기획자로서 살아가기 안녕하신가요?
기획자로서의 나, 스스로에게 안부를 물어보아요.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나요?

2009년부터 기획자로 일하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14년 차가 된 셈이네요. (그전에 기자로 일한 시간은 제외). 가끔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가서 공연기획자 특강을 하면서 제가 일한 시간에 대해 말하면, 학생들의 놀란 표정을 보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어떤 학생이 “제가 산 만큼 일하셨네요?”라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렇게 듣고 보니 뭔가 기분이 묘했습니다. 누군가가 태어나서 성숙해가는 과정이 마치 제가 처음 일을 시작해 성장해가는 과정과 묘하게 겹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과연 그 기간 동안 내가 잘 성장한 것인지, 또 나를 충분히 잘 위로해 준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코로나19 전에는 저 자신에게 안부를 물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늘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느라 바빴기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서도 안부를 묻기보다는 끊임없이 설명하느라 바빴습니다. 친한 친구들조차도 제가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몰랐습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고, 그 일의 성격이 판이하게 달랐으며, 왔다 갔다 이동도 많았기에 저,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을 특정한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코로나19 전에는 흡사 폭주하는 기관차 같았습니다. 남들이 다 휴가를 가고, 쉴 때도 저는 야근을 하고 또 야근을 했습니다. 어린 시절 친했던 친척 오빠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도 일하던 축제가 코앞이라는 핑계로 장례식에 가지 못했고, 지금도 그게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여러 가지 일을 쉴 새 없이 쳐내는 게 힘들었다기보다는 저 스스로에 대한 배려가 없었고, 주변 사람들의 안위를 제때 묻지 못했다는 사실이 저를 오랫동안 괴롭혔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는 많은 일이 취소되었고, 이동과 만남 또한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고, 그 생각을 글로 옮기는 시간이 길어졌고, 취미생활이 생겼습니다. 그 덕분에 블로그와 브런치에 공연기획자로 일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고, 필사한 것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되었죠. 놀랍게도 그렇게 지난 시간의 경험과 기억을 글로 쏟아내면서 저는 제 안부를 다시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미처 묻지 못하고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그 질문들을 말이죠.

오롯이 저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지만, 조금씩 그 결과물이 쌓일 때쯤 많은 분들의 글을 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저 같은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다는 학생, 기획자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제 글을 보고 다시 가슴이 뛰었다는 직장인, 제가 쓴 글을 보며 업무에 참고한다는 기획자 새내기, 딸이 공연기획자를 꿈꾸고 있어 제 글이 더 반가웠다는 어머니, 기획자로 일하기에 저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동종업계 종사자, 강의를 듣고 찾아온 학생 등 다양한 분들이 제 글에 감사를 표하며 안부를 물어온 것입니다.


기획자는 늘 프로젝트에 모든 것을 쏟아붓기에 자신을 소모한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프로젝트가 끝나면 늘 무언가로 자신을 채우는 시간이 필요하다 느낍니다. 그러나 그럴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기획자도 모든 것을 내어주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누군가에게 받을 수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시간 동안 많은 분들의 메시지에 위로를 받았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응원에 힘입어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그분들에게 안부를 묻고, 아낌없는 응원에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저는 글을 쓰면서 꾸준히 제 안부도 함께 물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여러 플랫폼을 통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안부를 묻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기획자 마음은 기획자가 안다고. 가족도 친구도 이해 못 해줄 그 기획자의 세계에 같이 발 담그고 있는 우리끼리 자주 물어주자고요. 안녕히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귀 기울여 듣고, 응원해 주자고요!


작가의 이전글 위드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의 본질을 생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