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기획자의 새 취미생활, 서예
일본어랑 중국어 자격증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따셨어요?
이런 질문을 종종 듣는다. 물론 열심히 노력도 것도 있지만, 일본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시절 '한문 서예'를 배웠던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자를 많이 알고 있다 보니 단어의 뜻을 유추하고, 암기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미술이나 음악에 재능이 없었던 어머니는 내가 어려서부터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라셨다고 한다. 그 덕분에 피아노학원과 미술학원도 다닐 수 있었는데 내가 더 간절히 다니고 싶던 곳은 서예학원이었다. 서예학원에서 글을 쓰는 친구들을 보니 여기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해 서예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서예학원은 워낙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라, 다닌 지 며칠 되지 않아 "도저히 못 다니겠다!"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어머니가 강압적으로 학원에 가라고 말씀하셨다면, 나는 더 가기 싫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왕에 샀으니 먹을 다 쓸 때까지만 다녀!"라며 말씀하셨고, 가방 안에 덩그러니 담겨 있는 붓과 먹물, 그리고 먹을 보고 있자니 설득이 됐다.
사물은 죄가 없고, 이것들의 사명이 다하는 날까지만 견디겠노라 선언했다. 그다음 날부터 학원에 가자마자 먹을 가는데 열중하곤 했는데 그 먹이 닳아 없어지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동안 서예의 재미에 눈을 떴다.
돌아보면 그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지금은 짧은 시간에도 그만큼의 정성과 공을 들여 한 가지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그때는 큰 걱정이 없었고, 서예를 배워서 무언가를 하겠다는 원대한 꿈이나 목표도 없었다. 온 마음을 다해 글을 쓰던 시간이 좋았을 뿐이었다. 옛 성현의 말씀을 새기면서 올곧게 살고 싶다는 의지를 다지던 시절이었다.
점차 학업에 집중하게 되면서 서예학원도 그만두게 되었지만, 대학교 재학 시절에 문득 서예를 하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 종로에 위치한 서예학원을 다시 다녔다. 공강 시간이면, 서예를 쓰러 달려갔다.
당시에는 서예의 인기도 시들어져서 학원에서 내가 제일 어린 학생이었다. 100세가 다 되도록 그 서예학원의 높은 계단을 오르며 글을 쓰러 오시던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걸 느꼈다. 배움에는 나이 제한이 없다는 것과 그 배움을 통해 여유시간을 의미 있게 쓸 수 있다면, 일상을 더욱 가치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올해 들어 갑자기 서예를 쓰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그러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할 수 없는 핑계가 10개 넘게 떠올랐다. 하는 일의 특성상 워낙 일정이 들쑥날쑥해 오래 지속할 수 없을 것이란 이유가 가장 큰 핑계 중 하나였다.
지난 3월 26일, 상담만 받아보자고 들렀던 서예학원에서 나의 결심이 굳어졌다. 클래식 음악이 나오는 조용한 분위기에서 집중해 글을 쓰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건강한 취미생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일만 하면 소모된다고 느껴질 때가 너무 많다. 그토록 자주 드나드는 인터넷 세상을 떠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오롯이 나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다시 가져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확신을 더해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서예가 이제 갓 2개월을 넘겼다. 결석이 더 많을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어 지역 출장이나 급한 일정을 제외하고는 거의 개근하며 학원에 다니고 있다. 서예학원이 오전 9시에 열고 밤 9시에 닫기에 유연한 스케줄 조정이 가능했다.
오늘은 지난 2개월간 쓴 글자들을 복습하고, 그 화선지를 모아 촬영해 보았다. 매일 2시간씩 꾸준히 쓴 글자들을 이렇게 다시 쓰니 감회가 새로웠다.
타자 치는 삶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손으로 글을 직접 쓴다는 것이 무언가 어색하고, 또 쉽지 않다.
그렇지만 최첨단으로 가득 찬 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적 감성'에 곁을 내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느낀다.
빠른 속도만을 좇기보다는 내 본위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여유가 중요하다 느끼기 때문이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쓰는 노동의 감촉을 새기면서 시간을 소중히 흘러 보내는 중이다.
'이제는 하고 싶다는 말'을 내뱉기보다는 곧장 '실천'으로 바꾸는 습관을 들여보려고 한다.
하지 못할 핑계를 찾기보다는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꾸준히 하는 의지를 더해나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