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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한 인간이 감당 가능한 무게는 어디까지인가요

연극열전 10_여섯 번째 작품_연극〈킬 미 나우〉후기

by 김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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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시여,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는 어디까지인가요?
나약한 인간은 그저 우네요.


누구나 그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이 제일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직접적으로 겪기 전에는 타인의 고통과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는 장애를 가진 이와 그를 돌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나의 단편적인 경험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공연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주마등처럼 스쳐간 기억들이 있었다. 해외 공연팀 의전을 할 때 장애가 있는 예술인을 수행하던 때의 기억, 가끔 특수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만난 아이들과의 경험, 장애예술 프로젝트를 하며 만난 예술인들과의 경험 등.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 경험마저 없었다면 어땠을까? 나는 좀 더 비성숙하고, 비인간적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직도 편견 가득한 사람으로 살았을 수도 있고, 장애를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치부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사는 사회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모두 소중하다. 일련의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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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텐 심각한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나한테 나는 없어.


이 작품은 장애를 가진 아들을 둔 아버지,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공연을 보기 전부터 익히 들었다. 이 작품을 보며 휴지나 손수건 정도로는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배우들은 물론이고, 객석의 관객들도 오열했고, 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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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본 이후로는 욕조만 봐도 눈물 날 것 같다. 욕조 신에는 많은 감정이 함축되어 있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애정과 아들의 성장을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는 아버지의 복잡한 감정. 아버지의 사랑과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이제는 홀로 서고 싶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변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던 존재에서 아버지의 마지막을 지키는 아들의 모습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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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보는 내내 평범함이라는 단어가 참 가혹하게 들렸다. 다른 사람들처럼 사는 게 이 부자에게는 참 힘들었으니까. 그래도 이 아버지와 아들의 애정은 보통의 사람들, 그 이상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아들이 성장해 가는 모습을 회피하기보다는 마주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뜻에 따라주는 아들. 결국 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서로의 뜻을 존중해 준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 아닐까. 내 욕심대로 자녀가 따라주길, 내 마음처럼 부모가 인정해 주길 바라는 마음은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 싶어서.


물론 보는 사람이 시각에 따라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두 사람의 선택을 반대할 수가 없더라. 한 사람이 감당하고 있는 삶의 무게는 타인의 시각에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누가 그 무게를 덜어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조이가 아버지가 쓴 책의 글을 읽을 때, 나는 이 대사를 잊지 못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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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강

태어나는 모든 아이는 완벽한 존재다.
태어나는 그 순간, 그 존재 자체만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든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존재를 태어나게 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와 아빠도 태어난다.
내가 처음 아이를 목욕시키기 위해 물을 받고
장난감 고무 오리를 띄우던 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욕조에 띄운 고무 오리 인형이 말했다.
안녕, 이제부터 우리는 긴 여정을 시작할 거예요.
나는 아이를 욕조 안에 넣기가 두려웠다.
일렁이는 물 위에 노란 고무 오리가 춤을 춘다.
아이가 작은 분홍색 입을 살짝 벌려 하품했다.

욕조의 물은 넘치고 언젠가 고무 오리도 욕조 밖으로 흘러갈 것이다.
물도 점점 강을 향해 간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춤추는 강 위에 뜬 고무 오리일지도 모른다.
나는 가만히 아이를 물에 담가본다.

긴 여정 끝에 어느 해변가 모래 위 평화롭게 일광욕을 하는 오리가 떠오른다.
백조가 되지 않더라도 나는 이 오리를 영원히 사랑할 것이다.

아들의 존재가 완벽했듯이,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도 완벽했다. 그 애정 속에서 어떤 부족함을 찾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마주하게 될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이 작품을 생각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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