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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윤 Jun 27. 2018

[1m²인터뷰] 10년의 음악. 일시정지. '노재원'

20대 후반으로 접어드니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좀 더 진하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와 '점점 더 멀어져 간다'.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절대, 친구들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 실현하면 안 된다. 쓸쓸하고 헛헛한 분위기는 친구들을 인스타그램의 세상으로 안내하기 때문. 노래가 끝나고 소파에 기대어 핸드폰 액정을 바라보는 친구들의 파리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면 혼자 간 코인 노래방에서 부르자. 혼자. 간주점프 없이.


서른의 형을 만났다. 몇 차례 술잔이 오간 후에야 그는 그의 서른을 조금씩 들려주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닮아있는 아쉬움, 후회, 아련함. 그것과 뒤엉킨 도전, 뜻, 꿈, 음악. 때마침 찾아온 장마전선같이 서로를 수렴하기도, 밀쳐내기도하며 시커먼 기운을 띄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면 장마는 그저 우중충한 하늘. 그 속엔 뜨거운 여름을 향하는 치열한 집중이 있다.

#1. 노래하는 재원 혹은 노박사의 사이에서


반갑습니다 노재원 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89년생 올해 서른. 노재원입니다. 굳이 장르를 정해놓고 노래를 하는 건 아닌데, 앨범에 있는 곡이나 영상을 만들 때 부르는 장르는 보통 발라드네요.


재원 씨의 유튜브 영상도 많이 찾아봤고, 인스타도 들어가 봤습니다. '가요'라 함은 당연히 소주 감성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장소를 옥상휴게소로 정해봤어요. 


여기 괜찮죠. 워낙 오래된 곳이라서. 한 2년 전엔 자주 왔었어요. 영화 '내부자들'에서 나오고 나서부터는 손님이 더 많아졌네요. 확장공사도 했네요. 여기가 원래 남자화장실이 있던 자리거든요.


어쩐지... 뭔가 남성의 향기가 짙다 싶었어요(웃음). 술은 잘 드시는 편인가요?


네. 어렸을 땐 미친 듯이 마셨죠. 근데 요즘엔 건강에 조금 문제가 생겨서 자제하고 있는 편입니다.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거라서 그런지 진짜 맛있네요. 근데 제가 안주를 안 먹는 편이라 좀 남을 것 같아요(웃음).

지금까지 1m² 인터뷰를 만들어주신 분들에는 락, 알앤비, 힙합이었어요. 발라드를 주로 부르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서 발라드는 어떤 매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랑이란 감정은 누구나 다 느끼잖아요. 아름다운 거죠. 사랑에 대한 아픔까지도 아름다운 멜로디가 되고, 때문에 공감대가 높고 가사에 감정 이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떤 노래를 하든 가사에서 많은 매력을 느끼는 편입니다.


재원 씨의 노래를 듣다가 팬이 되어버렸습니다. 목소리 톤이나 창법이 매력적이었어요. 재원 씨만의 목소리를 갖기 위해 한 특별한 노력이 있으신가요?


저는 변성기가 오기 전에도 이 목소리였어요 다르게 말하면 변성기가 오지 않은 거죠. 친구들이 그렇게 말해줬어요. '넌 참 목소리에 변함이 없다'라고.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지금 하고 있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노래를 불러야겠다'라는 다짐은 언제 하시게 됐나요?


딱 10년 전 이맘때쯤. 업으로 노래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 취미적인 접근이었어요. 제 기억이 맞으면 그때 당시에 여자들 이상형 3순위 안에 '노래 잘 부르는 남자'가 있었던 걸 인터넷에서 봤어요(웃음). 다른 두 가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솔로탈출을 위해 공덕에 있는 실용음악 학원에 취미반으로 등록했어요.

중학교 때는 육상부도 하고,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고3 때는 미대 입시를 준비했었죠. 그리고 대학교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근데 욕심이 생기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저보다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쟤는 잘하나 보다. 나는 뭐 이정도 인가 보다'라는 생각이었죠. 근데, 음악은 욕심이 났어요. 가수들을 보면서 '좀 더 연습하면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좀 더 잘하고 싶고 발전하고 싶은 욕심. 무언가에 욕심이 생기는 게 처음이니까 이쪽 길이다 싶었죠. 그래서 대학을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맞아요. 알맞은 욕심은 삶을 더 활력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재원 씨의 욕심에 불을 지핀 아티스트가 궁금해요. 


보통 제 노래를 처음 들으시는 분은 저에게 가장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가 '임재범'씨라고 생각할 거예요. 비슷하단 소리를 많이 듣죠. 제 또래, 그리고 저보다 위의 세대도 임재범 씨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남자는 없을 거예요. [고해]라는 노래가 왜 노래방 금지곡이 됐겠어요. 남자들이 하도 불러서 그렇게 된 거잖아요(웃음).

제가 정말 존경하는 가수는 루더 밴드로스(Luther Vandross)예요. 제 기준에선 가장 완벽한 보컬이라고 생각했어요. 목소리 톤이면 목소리 톤, 노래 스킬이면 스킬, 장르의 다양성, 그런 모든 면을 종합적으로 갖추고 있는 분이죠. 그분 모창도 많이 하고 그랬어요.


유튜브 채널 이름이 '노박사'예요. 왜 노박사인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원래 채널 이름이 '노재'였어요. '노래하는 재원이'라고 해서. 처음 무언가를 시작할 땐 잘 될 것만 생각하잖아요. 저는 제 채널이 대박이 날 줄 알았어요. 유튜브 채널, 사람들과 소통하는 플랫폼을 통해서 세상에 나가자. 근데 벽이 굉장히 많더라구요. 구독자도 많이 안 늘고 조회수도 올라가질 않고. 커버곡이라는 콘텐츠만 올리기엔 조금 부족한 면도 있고요. 채널에 대한 마음가짐이 바뀐 것 같아요. 지금은 내가 하는 걸 기록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어요. 할머니께서 어렸을 때부터 저를 '노박사, 노박사' 부르셨는데 그 편안한 느낌의 이름에 제가 하고 있는 취미생활, 음악, 모든 걸 담기 위해 '노박사'라는 채널명을 쓰고 있습니다.


무관심. 음악을 하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예술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무관심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람은 무관심 속에서는 살 수 없죠. 특히 예술은 대중을 감동시키는 것이 목적이니 더 무섭게 느껴지죠. 

요즘 워낙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정말 뜨는 사람은 몇 없는데 그래도 꾸준히 뭔가를 쌓아 놓으면 그게 언젠가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관심이 힘들긴 하지만 제가 하는 음악과 취미생활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목소리


요즘은 커버곡 위주로 올리시잖아요. 커버곡은 기존에 있는 곡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식상하다고 느껴질 것 같아요. 그 안에서 재원 씨만의 특색을 놓지 않아야 하잖아요. 곡을 재해석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가요?


사람들이 제가 개성 있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 목소리 때문일 거예요. 그 목소리를 잃지 않고 부르는 게 제일 중요하죠.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이입을 잘하는 것. 가사에 빠져 있으면 뻔한 노래도 진실되게 들린다고 생각해요. 어떤 감정 표현을 억지로 하면 듣는 사람들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질 거예요. '이 곡은 부드러우니까 내 특색과는 다르게 식으로 불러야 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억지로 바꾸지 않는 거죠. 본래 갖고 있는 성질을 죽이지 않고 노래를 흡수했다가 그대로 뱉는 느낌이에요. 


제가 사실 코인 노래방 덕후예요(웃음). 어떤 곡을 부르면 자꾸 그 가수처럼 부르게 되더라구요. 모창을 하고 싶지 않아도 모창이 되고...


그쵸. 그쵸. 머릿속에 원곡이 박혀있으면 그렇게 돼요. 원곡자를 따라가려고 하면 쓸데없는 힘이 들어가요. 나와는 다른 성대인데 그 성대를 따라 하려고 하면 내 성대에는 무리가 오는 거죠. 목에 무리가 가지 않게 불러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나의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편하게 부르자'가 가장 중요한데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커버곡을 선정하는 기준이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팝이 부르기 더 편해서 팝을 더 선호해요. 노래를 부를 때 발음하기가 영어가 훨씬 쉽죠. 한글은 발음에 각이 져 있기 때문에 소리가 나오기 쉽지 않거든요. 영어가 훨씬 부드러워요. 하지만 가요가 인기가 더 좋아서 가요를 많이 올리는데 대부분 친구들에게 추천을 받습니다.


'노재원'을 검색하면 본인 채널에 있는 영상 말고 다른 영상도 많이 보여요. 실용음악 학원에서 찍은 영상들! 그땐 수염도 덥수룩하시고 머리도 꽤 기셨던데.


네. 실용음악 학원은 연습실이자 제 목소리를 케어 받는 곳이었어요. 한 2년 전에 찍은 영상들이 많을 텐데 그때는 세상과 단절되어서 노래만 해야겠다라는 마음가짐이었어요. 근데 진짜 단절이 되어버린 거죠. 머리가 어깨선까지 내려왔었는데 뭔가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이니까... 여자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피하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 그런 부스스한 스타일을 좋아해서 1,2년 정도 하긴 했는데 얻는 게 없었죠.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알바도 하고 해야 했는데 도저히 그 꼴로는 할 수 없더라구요(웃음).

저는 노래를 배우러 학원을 간다는 걸 잘 몰라요. 제가 좋아하는 힙합은 '개성'이란 것에 무게가 실려있는 장르라 그런지 강의나 레슨이 꼭 필요한가 싶기도 하구요. 근데 요즘은 힙합도 레슨이 많이 생겼어요. 실용음악학원에서 배우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세 군데의 학원을 다녔어요. 가르쳐주는 분들마다 가치관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게 다양했죠. 처음 공덕에서 취미반으로 노래를 시작할 때 느꼈던 건 '내가 원하는 걸 찾았다'라는 것. 실력이 늘고 안 늘고는 뒷전이었어요.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겠다 해서 찾아간 두 번째 학원의 선생님은 90년대 '노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신 분이에요. 그 형님의 말은 너무 거칠어서 어떻게 순화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웃음)...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면서 저의 마인드적인 부분을 많이 다잡아주셨어요.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훈련도 빡셌죠. 저를 연습실에 가둬놨다고 보시면 돼요. 보통 연습실에 10시간 정도 있었는데 10시간을 꽉 채워서 노래를 할 순 없잖아요. 하지만 그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저에게 음악에 대한 지구력과 인내심을 길러준 것 같아요. 그 학원에서 3인조 그룹을 준비했었어요. 인터넷에 가끔 뜨는 '사이버리아 알바생'이라는 전국노래자랑에서 [천년의 사랑]을 부른 형과 다른 한분과 저. 근데 그룹이 무산됐고 군에 입대했어요.

군대에서 음악 말고 다른 일을 해볼까 많이 고민했어요. 근데 음악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음악에 쏟은 시간이 아깝고, 음악으로 승부를 보고 싶고. 사실 그때 바꿨어도 늦지 않았을 것 같은데(웃음). 전역을 하고 다시 학원을 찾아다녔어요. 어떤 사람에게 배우면 좋을까. 근데 전역을 하고 나오니까 학원에서 오디션을 보더라구요. 반을 배정한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많은 학원들이 학원생들을 돈으로 보는 느낌이었어요. 최대한 장사치 같지 않은 학원을 찾아다녔죠.


그래서 마음에 드는 학원과 선생님을 찾으셨나요?


네. 마지막으로 절 가르쳐주신 선생님은 좀 특별했어요. 보통 학원에서는 어떤 정석의 소리를 내길 원하죠. 목소리가 다르다는 건 알지만 목소리 내는 방식을 똑같이 하려고 해요. 하지만 마지막 선생님은 '목소리가 다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가장 편하게 소리 내는 방식도 다르다'라는 생각이셨어요. 내가 어떤 목소리를 지녔고 이 목소리를 어떻게 발전시킬지 많이 고민했어요.

실용음악과나 실용음악 학원을 가면 대부분 가사를 펼쳐놓고 소절마다 집어주거나 글자에 대한 뉘앙스를 알려주는 레슨이 많아요. 내가 노래를 받았을 때 어떻게 어레인지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글자 하나하나 어떤 식으로 불러야 하고 강약 조절까지. 그래서 획일화된 교육을 하지 않으신 이 선생님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죠.

#3. 아직 내 것이 되지 못한


음원사이트에 세 개의 곡이 있어요. 첫 번째 앨범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사랑 나눔 첫 번째 이야기'라는 CCM 앨범에 유일하게 가요 같은 [너무나 좋아]라는 곡이 있어요. 같이 음악을 배우던 친구랑 녹음을 해서 CBS에서 노래도 한번 했죠. 근데 저는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아요. 굉장히 지우고 싶은 노래예요.


누구나 다 그런 노래는 있지 않겠습니까(웃음). 두 번째 앨범은 TSP라는 앨범이에요.


마지막에 다녔던 학원에서 진행한 TPS라는 프로젝트 앨범이에요. 제가 다닐 당시에는 학원이 꽤 컸어요. 중국에 있는 학생들과도 교류하기도 했고 분기별로 오디션을 봐서 앨범을 제작했었어요. 그때 오디션에서 1등을 해서 [겨울동화]라는 곡을 불렀어요. 근데 제가 참여한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 됐네요.


저는 [겨울동화]라는 곡에서 재원 씨의 걸걸함이 많이 빠져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저를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의 커리큘럼이죠. 제가 가지고 있는 쓸데없는 힘을 빼는 과정에 있을 때 앨범 제작을 했고, 그 이후에는 저만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과정 끝에 만들어진 곡이 '지우고 또 잊어본다'라는 곡입니다.

지우고 또 잊어본다는 어떻게 만드시게 됐나요?


제가 직접 투자를 해서 만든 곡이에요. 이 노래의 작곡가분이 친한 형인데 "네가 가지고 있는 두 개의 곡에 하나를 더해서 세 곡을 만들어라. 오디션을 가든 소속사를 가든 세 곡은 듣는다" 해서 지원용으로 만든 곡입니다. 이 곡은 라이브가 안됩니다. 숨 쉬는 구간을 다 붙여놨어요. 라이브를 하려면 AR을 깔아야 합니다(웃음).


앨범이 세상에 공개가 되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분 좋죠. 근데 그런 좋은 기분은 짧게 가더라구요.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이 생기고 부끄럽기도 해서 잘 안 듣게 돼요. 다른 노래를 내고 싶다는 욕심이 또 생기고... 그런 것의 반복인 것 같아요.


완벽한 곡을 낸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 같아요.


완벽한 만족이라는 게 있을 수가 없죠. 그러면서 발전을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노래를 하는 사람이든, 작곡이나 연주를 하는 사람이든 들어주는 사람이 있을 때 좀 더 의미가 있는 건데 너무 혼자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지치더라구요. 내가 부르고 내가 발매한 음원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4. 길 위에서 


재원 씨의 영상을 보다가 '개드립에서 왔어요!'라는 댓글을 몇 개 봤어요. 그래서 개드립라는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재원 씨가 쓴 글까지 찾아보게 됐거든요. "20살 때부터 30이 될 때까지 10년 동안 음악을 했다. 앨범도 3장 정도 있고 여러 영상들을 찍었지만 음악을 놓으려 한다. 좋아하는 일을 배우면서 창업을 준비할 생각이다. 혹시 음악을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잘 생각해봐라"라고 쓰셨는데, 정말 음악을 포기하시는 건가요?


가수로서 유명해져서 가수로서 돈을 번다는 생각을 놓게 되었어요. 불가능하다 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메이저급의 가수가 되려고 시간을 투자하거나 이를 악 물고 밀고 나갈 용기가 없어졌다는 의미죠. 음악을 아예 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에요. 음악 하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아예 놓고 살 수는 없잖아요. 생업으로 갖고 있지 않는다 뿐인 거죠.

사실 제가 커뮤니티에 쓴 글이 이슈가 돼서 제 유튜브 채널로 사람들을 유입시키려는 의도도 있었어요. 근데 그 사이트에서만 이슈였네요(웃음). 댓글이 200개 정도 달렸어요. 제 채널을 컨설팅 해 주신 분도 있고, 노래를 응원해주신 분도 있고, 악플도 굉장히 많았어요. 유행이 바뀌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악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젊은 층의 사람들이 악플을 많이 달았는데 아마 요즘 트렌드에 비해 제 노래가 약간 올드하게 느껴졌을 거예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대중의 그룹이기 때문에 무시할 수 없죠. 저는 항상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 목소리는 어딜 가든 먹힌다. 세대를 뛰어넘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을 가장 활발히 소비하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친구들의 반응을 볼 기회가 없었던 거죠. 생각해보니 굉장히 한정된 제 세대의 음악 속에서만 살았던 거죠. 시간이 지나 내 뒤에 오는 세대들을 보지 못했던 거예요. 

요즘의 트렌드는 어떤 것일까요?


요즘은 부드러운 고음의 음색을 가진 가수들이 많은 것 같아요. 멜로망스나 정승환, 얼마 전 이슈가 됐던 닐로, 장덕철. 이런 가수를 보면 키가 다 높아요. 기술적인 측면으로 연습을 하면 어느 정도 높은 키를 구사할 수 있지만 고음은 타고난 부분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해요. 사람의 성대 모양이 각기 다르듯 자기가 가진 키가 존재해요. 제가 고음적인 테크닉을 위해 엄청난 연습을 한다고 해서 나얼 같이 높은 키의 음악을 부를 수 없어요. 마찬가지로 나얼 씨가 저처럼 굵직하고 낮은 톤의 노래를 부를 순 없을 거예요. 트렌드나 유행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거기에 치중되어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해요.

제가 추구하는 것은 아름다운 고음이 아니라 제 중저음의 톤을 살려 감성적으로 파고드는 것이에요. 젊은 친구들의 니즈와는 조금 다르죠. '시대와 잘 안 맞는구나... 내 목소리가 먹히던 때에 세상 밖으로 좀 나갔어야 했는데 때를 놓친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제 목소리를 좋아해 줄 30대부터 그 위로는 사는 게 바빠서 신곡들에 조금 더딜 거예요.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다시 듣는 경우가 많죠. 이런 시간이 오기 전에 무언갈 했었으면 소규모의 팬층이라도 만들었을 텐데(웃음). 개드리퍼에 올린 글 때문에 많은 걸 느끼게 됐네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오디션 프로그램이 정말 흥행했잖아요. 그런 곳에 나가볼 생각은 없으셨던 건가요?


슈스케, 케이팝스타, 위대한탄생, 보이스코리아 등등 참 많았네요. 그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저런 데 나가서 뭐하냐' '방송의 꼬리표가 붙고 어느 오디션 출신이라고 불리는 것이 싫다'라고 말했었어요. 좀 더 연습을 해서 저기 나오는 출연진들보다 훨씬 뛰어난 가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보면 도전할 용기가 없던 것을 자존심으로 포장한 것 같아요. 숨어들었던 거죠. 

작년엔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노래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몇 번 왔었어요. 너의 목소리가 보여, 듀엣가요제, 판타스틱듀오.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참여의사를 밝히고 필요한 음원을 보내줬어요. 근데 회의하고 연락을 준다고 한 후에 연락이 두절되더군요. 그런 게 몇 번 있었어요. 다른 참가자가 확정됐으면 연락을 좀 주시면 좋을 텐데. 마지막으로 작년 연말에 너목보에서 연락이 왔었는데 그때가 세 번째 연락이었거든요. 그땐 제가 거절했어요. 기분이 나빠서. 제작진 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새로운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또 연락을 주시는 건데... 자존심이란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건데 제가 자존심을 좀 부렸어요. 

하지만 올해 만약 연락이 온다면 꼭 도전하려고 합니다. 실력은 만들어 가는 것이지 다 만든 걸 보여주는 게 아니더라구요. 


또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 혹은 일반인들이 노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진행된다면 꼭 참여하셨으면 좋겠어요. 요즘 나이가 뭐가 중요합니까. 오히려 저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다고 생각하는데(웃음).


그런 게 있더라구요. 기획사에서 저를 상품으로 본다고 했을 때 저의 음악적 스타일이나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거죠. 저 혼자 음악을 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으면 투자를 받아야 하잖아요. 내 돈으로 내가 무엇을 한다는 거엔 나이가 상관이 없죠. 하지만 남의 돈으로 무엇을 하기엔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이기기 위해선 정말 음악을 잘 해야겠죠.


정말 재원 씨의 팬이 됐는데... 음악을 놓지 말아주세요!!


음악... 노래라는 건 놓는다고 놓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잘 아시겠지만. 운동선수들도 아무리 은퇴를 했다고 해도 아예 다른 일로 빠지지 않는 것과 같아요. 노래도 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도전을 해야죠. 

어떻게 보면 음악을 품고 가는 상황이네요. 


그쵸. 음악적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그냥 음악을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근데 지금은 아마 생업 수단으로 다른 걸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계약직 업무가 끝나서 실업급여를 받고 있어요. 계약직으로 근근이 버티며 음악을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더라구요. 지금은 금속공예 쪽을 배우고 있어요. 마음먹고 쇼핑몰 제작도 생각하고 있구요. 꾸준히 해서 자리를 잡는다면 그 수입을 음악 쪽에 투자할 수 있게 되는 거니까. 음악은 여유가 된다면 언제든 할 수 있잖아요. 이제는  '음악으로 돈을 벌겠다'가 아닌 '음악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번다'가 됐네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다만 어렸을 땐 플랜 B라는 게 없었다는 게 아쉽죠. 너무 노래만 불러온 것 같고. 노래만 해서 성공하려는 배짱에 사로잡혀 살았네요. 그래도 그것이 삶을 좀 더 의미있게 해줬고, 현재의 삶에도 관절같은 역할을 해주고 있어요.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 '더 뮤지션에서 듣고 왔어요~'하는 댓글들이 보였어요. 더 뮤지션이 뭔가요? TV 프로그램은 아닌 것 같던데.


아. 핸드폰 게임이에요. 리듬게임인데, 초창기에 워너원이 광고를 해서 잠깐 이슈가 된 적이 있죠. 그 게임을 개발할 때 게임 콘텐츠 중에 하나가 '버스커 모드'였어요. 게임회사에서 노래를 하는 일반인들에게 지정곡을 주고 그 곡을 녹음해서 보내주면 그걸로 하나의 노트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제 노래에 맞춰 사람들이 플레이하는 거죠. 처음 게임이 나왔을 땐 인기도 많았고 버스커 모드 아티스트가 10명도 안됐었어요. 그때쯤에 제 싱글 [지우고 또 잊어본다]가 발매됐었어요. 버스커 모드를 플레이하면 맨 처음에 인사말 같은 게 떠요. 그 멘트를 제가 정할 수 있는데 거기에 [지우고 또 잊어본다]를 홍보했었어요. 그러니까 스트리밍이 한 달에 2만 회 정도를 찍더라구요. 유튜브 채널을 만든 뒤에는 채널을 홍보하고 있구요. 

#5. 쓸쓸함에 대하여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안주를 정말 안 드시네요!


네. 20대 초반엔 돈이 많지 않잖아요. 6명이서 5천 원씩 모아서 3만 원으로 술을 마셔야 했었죠. 그래서 번데기탕 하나 시켜놓고 먹던 습관이 생겼어요. 부대찌갠데 국물이 쫄면 물 부어서 끓이고, 쫄면 물 붓고 해서 나중에는 그냥 소금물 먹는 느낌이 된 적도 허다했구요(웃음).

재원 씨는 어떤 가수가 되고 싶었어요?


지금은 딱 이렇게 한마디로 얘기할 수 있어요. 최백호 님 같은 가수. 얼마 전 라이브 영상을 보게 됐는데 정말... '노래의 장인이다'라고 느꼈어요. 그분의 노래를 들어보면 정형화된 노래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뭔가 설렁설렁 부르시는 것 같아요. 하지만 기술적인 면이나 감정적인 면, 예술적인 면들이 너무나 완벽하다고 해야 할까. 그분이 40년, 50년은 노래를 부르셨을 건데 제가 40년, 50년 노래를 부른다고 해서 저렇게 될 수는 없을 것 같더라구요. 제가 이별을 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뜬금없이 듣게 된 건데 막 감정이 북받쳐 올랐어요. 감정으로 모든 걸 말할 수 있고 노래 가사를 몰라도 듣기만 해도 울림이 생기는. 아까 말했듯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게 예술의 가치고 목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백호 님 같이 내 노래로써, 목소리로써 사람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주고 싶어요. 그런 예술을 하는 진짜 결정체가 최백호 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처음 재원 씨에게 인터뷰 섭외를 요청할 때 '아직 음악적으로 이룬 것이 없다. 그래도 괜찮겠냐'라고 답장을 해주셨어요. 음악적으로 무언가를 이룬다는 게 정확히 어떤 걸 생각하시고 말씀하신 건가요?


처음엔 유명한 가수가 되는 것이 '이룬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준이 계속 낮아졌어요. 꾸준히 활동을 해 온 것도 없고, 커버 영상으로 구독자가 많고 피드백이 많은 것도 아니고, 내 이름으로 된 음원이 막 많은 것도 아니고, 지역행사나 공연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것들히 꾸준하지 않았기에 '이룬 것이 없다'라고 말씀드린 거예요. 또 노래로 인해 어떤 것을 2차적으로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도.

재원 씨의 음악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까요.


지금까지 10년 동안 음악을 해왔지만 아직 '내 것'이라는 느낌의 노래가 없어요. 음원도 내 이름을 걸고 발매를 했지만 내가 만든 노래가 아닌 거죠. 커버라는 것도 다른 사람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거고요. 그래서 제가 작곡, 작사, 멜로디까지 다 만든 '나의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단기간에 일어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악을 한다면 저작권료는 한번 받아봐야죠(웃음).


재원 씨처럼 서른에 놓여있는,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시기에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해 줄 음악이 있으신가요? 서른 즈음에 빼고!


하하. 서른 즈음에는 중학교 때부터 듣던 음악이라도 서른이 아니지만 20년을 들었네요. 아까 말씀드린 최백호 님의 라이브 무대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예요. 어린 친구들에게는 올드하게 들릴진 몰라도 제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라면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서른이면 스무 살 때의 불타오르고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사랑을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또 너무 찌들었기 때문에 가사가 가슴에 박힐 거예요.

https://www.youtube.com/watch?v=zBVAOgamgVU

재원 씨를 인터뷰하기 전에 이런저런 자료들을 조사하면서 이 인터뷰가 재원 씨의 음악인생에 환기의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커뮤니티에 쓰신 글을 보고 이쯤에서 한 번 자신이 10년 동안 했던 음악생활도 돌아보고,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고, 또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보고. 그게 됐는지 안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웃음)...


만약에 그런 생각이 있으셨다면 잘 된 것 같아요.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왜 음악을 하게 됐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내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지내왔나.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됐어요. 이 자리 때문에. 지금 당장에는 금전적인 게 급해서 음악을 좀 놓고 있지만 또 다른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년 까지만 해도 '노래하는 남자가 34, 35살에 성공하면 된 거다'라는 생각이었는데 막상 30대가 되니 그게 아니네요.

특히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하는 건 좋아하는 사람과 현실적인 부분 때문에 부딪힌다는 거예요. 저보다 나이가 적든 동갑이든 뭔가를 이루고 활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상대는 굉장히 불안해하더라구요. 쉽게 얘기해서 돈을 못 벌고 있다는 거죠. 3,4년 동안 꾸준히 이런 경우들이 있었는데 최근에 또 겪었어요.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이런 불완전한 상태를 질질 끌 수 없네요. 빨리 끝내야 사랑도, 음악도 가질 수 있겠죠.


아... 어렵네요. 사랑하기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어느새 해가 졌어요.


소주 마시면서 이렇게 음악 얘기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들이랑만 만나고, 하는 얘기 똑같이 또 하고. 최근에는 건강문제 때문에 술도 안 마셨으니까,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반가우면서 색다르네요. 괜찮으시면 한병 더 하실까요?


정사각형의 정지버튼을 생각한다. 자비없이 무겁고 단단하고 막혀있다. 일시정지버튼을 생각한다. 다행히 네모와 네모 사이에 작은 길이 나있다. 

그의 음악은 일시정지버튼이다. 그의 생은 지금도 흐르고 있고 나이와 현실이라는 두 둑 사이에 음악이 잠시 고여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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