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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가좋아서 Jun 13. 2019

20살, 소주 대신 와인을 만나다

내가 처음 와인을 마신 것은 20살, 대학교 1학년 학교 강의실에서였다. 고등학교 3년, 대학교 선택을 앞두고 있던 나는 학교 선택 두 달 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와인을 전공으로 선 택했다. 그때는 꽤 이름있는 대학교의 심리학과를 진학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만 어디 인생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이 있던가.  나를 포함한 아주 많은 이들이 수능이라는 시험 제도 앞에 원치 않는 결과를 맛봤겠지만 어쨌든 그 당시 원하는 학교에 갈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곳을 찾아볼 것인가의 선택은 끝내 새로운 곳을 찾 는 것이었다. 그때는 나름대로 심리학과에 꿈과 욕심이 있다고 생 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렇게 욕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랬다면 다른 학교의 심리학과에 진학하지 않았을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겨우 그 한 번의 선택으로 나의 20대가 어떻게 흘러갈지 자연스럽게 결정되었다.  그러고 보면 20살이 되기 전 그 한 번의 선택 때문에 인생의 방 향이 참 많이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토록 좋은 학교 선택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지나고 나니 조금 선명하게 든다.  새로운 선택의 결과는 와인이었다. 내가 그때 왜 와인을 선택했 는지는 아직도 아이러니하지만 어떻게 와인이라는 술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보면 책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우연찮게 찾아보고 읽게 된 와인 책들이 있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와인이 어떤 술이고, 어떻게 마시며, 어떤 종류가 있는지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 서 와인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확실히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 만‘까베르네 쇼비뇽’.‘그랑 크뤼 클라쎄’등 지금은 너무나 일상 적인 말들이 되었지만 그때는 와인 한 번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 었는데 이런 생소한 용어들을 보면서 나는 아마도 책 내용을 절반 도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이미 마음은 와인을 배우겠 다고 결정을 내려놓고 그 결정을 합리화해줄 만한 이유를 책에서 찾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와인을 선택하고, 파릇하고 어색한 친구들 사이에 끼어 대학교라는 곳에 입학했다. 학교 강의실에서 술을 대놓고 마 셔도 되느냐란 생각을 하면서 내 인생에서 처음 와인을 맛봤다. 혀를 조이는 거칠거칠한 쓴맛이 처음에는 정말 맛이 없었다. 처음 와인을 마신 그날 진지하게 자퇴를 할까까지 고민을 했다. 물론 자퇴를 하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매일매일 3종류 이상의 와인을 테이스팅 하면서 와인이란 술에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갔다. 대학 생이 되어 많은 술자리가 생기고 또 술맛을 알아가니 와인은 아주 매력적인 술이었다. 술 자체를 잘 마시지 못하는 탓에 나는 소주 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술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대개 맛이 잘 느 껴지는 술을 좋아한다. 


와인이 그런 술이었다. 향이 다채롭냐느니 천천히 즐길 수 있다 느니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술이니 이런 번지르르한 이유 말 고 정말 술맛이 맛있게 느껴지는 술이기 때문에 와인은 특히 내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모두 어깨 춤을 들썩이며 소주란 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제법 고상하게 잔을 돌리며 와인이란 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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