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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가좋아서 Jun 13. 2019

와인은 꽤 괜찮은 알코올이자 지극히 기호음료이다

와인은 기호음료이다. 모든 기호식품이 그렇듯 와인도 지극히 취 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술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에서만큼은 와인은 하나의 기호음료로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고 있지 못한다. 와인을 마시는 데 너무나 불편한 규칙들이 많다. 특히 와인은 많은 사람들이 책이나 강연으로 학습된 술이라 그런지 한국에서 와인을 마시는 건 지나치게 형식을 강조하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한다. 


사실 나도 몇 년 전만 해도 와인이 기호음료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와인에 물이나 얼 음을 타 마신다거나, 이론적으로 매칭이 맞지 않는 음식과 즐긴다 거나, 비싼 와인에 소주를 타 마시는 사람을 보고 조금 심하게 말 하면 상식도 없고 교양도 없는 와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작 와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였다. 지 금 생각해도 비싼 와인에 소주를 타 마시는 건 좀 심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지만 지극히 개인이 즐기고 싶은 대로 즐기면 잘못된 것 은 아니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빠졌던 와인의 환상 속에서 벗어나 지 못했던 건지 와인이라는 술에 너무 낭만을 가졌던 것인지는 모 르겠지만 이런 편견과 선입견은 서울에서 소믈리에로 일을 하면서 나를 이끌어 주셨던 업장 매니저님 덕분에 많이 깨질 수 있었다. 


어느 한 날은 손님께서 업장에서 파는 바비큐 메뉴를 고르고 달 지 않은 레드 와인과 달콤한 와인 한 병을 추천해달라고 내게 말 씀하셨다. 여차여차 와인 설명을 드리면서 추천을 끝내고 당연히 달지 않은 레드 와인을 먼저 오픈해드리려고 하는데 달콤한 와인 을 먼저 드시겠다고 하셨다. 바비큐 메뉴에는 달지 않은 레드 와 인을 매칭하는 게 보편적이다. 그에 따라 잘 설명을 드렸지만 손 님께서는 끝내 달콤한 와인과 바비큐를 드시고 달지 않은 레드 와 인은 따로 드시겠다 하셨다. 주문에 맞춰 준비를 다 해드리고 함 께 일하던 직원들에게 푸념 아닌 푸념을 했었다.“왜 저렇게 드시 는지 모르겠네”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계시던 매니저님은 “디저트 를 그냥 먼저 먹는다고 생각해” 넌지시 한마디 던지고 가셨다. 나 름 학구파로 똘똘 뭉친 철저한 이론에 입각한 직원들이었기에 매 니저님이 우리들을 설득하려 가볍게 던진 한마디였지만 그 한마디 가 깊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에는 한 손님께서 레드 와인에 얼음을 타 마시겠다고 얼음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얼음을 가져다 드리고 얼음을 와인에 타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해가 가지 않았다. 가격도 꽤 비싼 와인이었는데 왜 저 맛있는 레 드 와인에 얼을 타 마시냐며 푸념 아닌 푸념을 또 내뱉었다. 그러 자 매니저님이“저분에게는 저렇게 드시는 게 맛있으니 그런 거 아 닐까?”라고 또 한마디 던지셨고 나는 그 한마디에 그동안 학습되 어온 와인에 대한 이론이 모두 깨부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랬다. 우리가 와인을 마시는 이유는 어떤 와인이든 그 와인을 맛있게 마시기 위함이지 마치 정해진 규칙에 따라 마시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꽤 많은 시간 와인 공부를 했지만 나는 기호에 따라 즐기는 음료를 기준에 따라 즐기는 음료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 이다. 


그 두 번의 일 이후로는 나 스스로 와인을 대하는 게 많이 달라 졌다. 조금 더 여러 관점으로 와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와인 한 병을 가지고 누군가는 아직 신의 물방울, 열정의 물방울이라 칭하 며 온갖 찬양을 하겠지만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것을 넘어 한 끼 의 식사를 빛내주고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을 만들어주는 꽤 괜찮 은 알코올로 와인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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