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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가좋아서 Jun 13. 2019

와인 테이스팅에 미치는 심리적인 요인

테이스팅을 할 때 나 자신은 오로지 객관적으로 이 와인을 평가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실은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너무나 다양한 테이스팅 변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서 계속 언급했던 심리적인 요인이 테이스팅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대표적인 심리적인 요인은 다음과 같다. 


‘권위자 편향’,‘기준점 편향’,‘플라세보 효과’,‘후광 효과’ 


‘권위자 편향(Authority Bias)’이란 어떤 특정 정보가 맞든 맞지 않든 권위자가 하는 말이라면 따로 의심하지 않고 그 정보를 받아 들이는 심리이다. 조금 의문이 들더라도 내가 잘못 생각했거니 믿어버리고 무조건적으로 권위자의 말을 믿어버리는 모습을 우리 일 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가령 나보다 조금 더 와인을 잘 알고 있 는 사람이 이 와인에서는 블랙베리 향은 없고 블랙 커런트 향만 느껴진다고 말할 때 실제로 그 와인에서 블랙베리 향이 더 많이 느껴져도 권위자의 말만 믿고 블랙베리가 아닌 블랙 커런트 향이 더 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나아가 맛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 다. 내가 마음속으로 좋게 생각을 하고 있는 와인도 권위자가‘이 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와인은 별로다’라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 와인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최소한‘나한테는 좋은데’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것부터 금세 별로인 와인으로 바뀌게 되 어 버린다. 이런 경향은 권위자의 권위가 높을수록 더 강하게 나 타난다.


‘기준점 편향(Anchoring Bias)’이란 처음 내가 가지고 있는 정 보가 기준이 되어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많은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 학습된 정보가 테이스팅 전반에 영향 을 미치는 것으로 가령 보르도 와인에서는‘블랙 커런트’,‘삼나 무’향을 빼놓을 수 없다. 이미 내가 이 정보를 학습했기에 보르도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는 테이스팅 하기 전부터‘블랙 커런트’와 ‘삼나무’향이 느껴진다는 기준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분명 우리 에게 익숙하지 않은 향임에도 불구하고 학습된 것을 우리는 그대로 느끼게 된다. 또 특정 품종에는 ’어떤 향‘이 난다고 배웠다면 그 품종의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는 그 향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가 지고 와인을 접근하기에 그 생각 그대로를 와인에서 느껴버린다. 이런 기준점 편향은 대비 효과와도 연결되는데 두 개 이상의 와인 을 테이스팅 할 때 진한 와인을 먼저 테이스팅 하고 상대적으로 진하지 않은 와인을 테이스팅 하면 진하지 않은 와인이 기존에 느 낄 수 있는 진한 정도보다 훨씬 더 연하게 느껴진다. 


반대로 가벼운 와인을 먼저 테이스팅 하고 무거운 와인을 테이 스팅 하면 무거운 정도를 훨씬 더 무겁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거 기다 이렇게 와인을 마셨을 때는 처음 마셨던 와인의 감각이 남아 있어 다음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 그 감각과 합쳐진 느낌을 전달 받기에 정확하고 공정한 테이스팅이 이루어지기가 실제로 많이 어 렵다. 대개 와인 품평회에서는 진하고 오크 풍미가 강한 와인들이 수상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이유에는 기준점 편향이나 대비 효과가 연관이 있다. 아무리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진행한다 해도 짧은 시간에 여러 와인을 비교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강한 뉘앙스를 가진 와인들이 기준이 되 어 더 좋은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는 의사가 아무런 약 효과 없는 약을 환자에게 처방해도 환자는 강한 긍정적인 믿음 때문에 의사가 처방해준 약이 효과가 없어도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이다. 특히 나 디캔팅, 브리딩, 스월링 등으로 와인이 대단히 변할 것 같은 강 렬한 믿음이 실제 와인이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더 좋아졌다고 굳 게 믿고 그렇게 느끼는 현상과 같다.


‘후광 효과(Halo Effect)’는 하나의 좋은 현상이나 정보를 보고 나서 그 하나로 전체를 결론짓는 것을 말한다. 가격이 비싸거나 희소한 와인을 테이스팅 할 때는 순수하게 와인 맛 자체를 평가했 을 때보다 훨씬 더 좋게 평가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가 대부분 다 후광 효과의 영향을 받는 것이다. 


이 밖에도 테이스팅의 심리적인 변수는 너무나 많다. 또 하나 쉽게 빠지는 함정 중 하나는 사람은 어떤 것을 평가할 때 특별히 양 끝에 있는 점수를 주기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즉 가장 낮은 점 수나 가장 높은 점수를 잘 주지 않는 것이다. 어떤 와인의 특징이 낮거나 높은데도 이보다 더 극단적으로 낮거나 높은 특징을 가진 와인과 비교하여 중간의 선택을 많이 하게 된다. 이러한 심리 요 인들은 개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보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테이스팅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고 맛만으로 그 와인을 평가한다고 생각하지만 와인을 둘러싼 환경, 장소, 사 람, 음식 자신의 기호 등 여러 요소에 자극받아 심리적인 요인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부분은 사람이 통제 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객관 적인 테이스팅은 불가능하기에 어느 정도는 이런 심리 요인들을 의식적으로 느끼고 테이스팅을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덜 주관적인 와인 테이스팅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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