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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가좋아서 Jun 13. 2019

점수가 높고 비싼 와인은 왜 더 맛있을까?

편견에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와인에 대한 편견도 마 찬가지이다. 와인의 맛과 가격이 일정 비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정도 선에 다다르면 그것이 무의미해진다. 개인적으로 느끼 는 게 다르겠지만 나는 그 기준을 15만 원~20만 원 정도로 생각 한다. 그 이상 가격의 와인을 단순히 품질과 맛으로 따지는 일 자 체는 참으로 무의미한 일이다. 인간의 혀는 생각보다 그리 현명하 지 못하다. 실제로 색상이 보이지 않는 검은 글라스에 레드 와인, 화이트 와인을 따라서 구분하라 주면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제대로 구분을 못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프랑스 보르도 대학에서 와인 양조학을 공부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비슷한 실험을 진행한 적이 있다. 레드 와인 한 잔, 화이트 와인 한 잔, 냄새가 없는 붉 은 색소를 섞은 화이트 와인 한 잔을 주고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살펴본 실험이다. 참 웃기게도 학생들은 붉은 색소를 섞은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레드 와인에서 나오는 향을 기술했다. 얼핏 들으면 이게 가능한가 싶으면서도 와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이런 결과 를 보여주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아마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이지 이런 일은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 이다. 


책‘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는 와인 전문가들에 대한 아래와 같 은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많은 분야에서‘전문가’라고 널리 인정되는 사람들이 객관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면 사실 전문가가 아니다. 이런 현상의 예로 내가 자주 드는 사례 중 하나가 와인‘전문가’다. 일반적으로 와인 전문 가라고 하면, 고도로 발달한 미각을 통해 일반인에게는 분명하지 않은 와인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으리라 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 결과를 보면 와인 전문가들의 능력이 많이 과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별 와인에 부여하는 등급이 전 문가별로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2008년 와인 경제학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면, 와인 전 문가들끼리 일치된 평가를 내리느냐는 차치하고 자기 스스로도 같 은 와인에 대한 평가에 일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 아에서 소형 와인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로버트 호지슨은 캘리 포니아 주 축제에서 열리는 연례 와인 품평회 심사위원장에게 연 락을 해서 한 가지 실험을 제안했다. 매년 열리는 캘리포니아 와 인 품평회에는 수천 가지 와인이 출품되는데, 심사위원 한 명이 앞에 높인 30가지 와인을 동시에 시음하면서 점수를 매기는 방식 이다. 어떤 와인인지는 알 수 없기에 심사위원은 평판 같은 다른 요인에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호지슨은 이렇게 늘어놓은 30가지 와인 속에 같은 와인을 세 잔 놓는 방법을 제안했다.


심사위원들은 같은 와인에 같은 등급을 매길까, 아니면 다른 등 급을 매길까? 심사위원장의 동의하에 호지슨은 2005년부터 2008 년까지 연달아 4년 동안 이 실험을 진행했다. 결과적으로 세 번의 동일한 와인 시음에서 비슷한 등급을 매긴 심사위원은 매우 드물 었다. 일반적으로 같은 심사위원이 동일한 와인에 +,-4점 정도 다른 점수를 주었다. 즉 같은 와인에 한 번은 91점을 주고, 한 번 87점, 한 번은 83점을 주는 식이다. 이는 상당한 점수 차이다. 91 점짜리 와인이면 고가에 팔리는 좋은 와인이고, 83점이면 그저 그 런 와인이다. 일부 심사위원은 세 번의 시음에서 한 번은 금메달감이라고 했다가 두 번째는 동메달 정도밖에 안된다고 하거나 전 혀 메달감이 아니라는 식으로 낮은 점수를 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특정 해에 다른 심사위원보다 일관성 있는 점수를 내놓은 심사위 원이 다른 해에도 그럴까? 호지슨이 4년간 비교해본 결과 그런 일 관성도 유지되지 않았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많은 분야에서 소위‘전문가’가 그만그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보다 확실히 나 은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해당 분야의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문외한보다 나을 것이 없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전문가의 함정 예시로‘와인 전문가의 미각 능력’ 을 두고 있지만, 와인 전문가는 테이스팅 전문가가 아니다. 이 책 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한 예가 적절치 않다고 언지를 주고 싶지만 그걸 떠나서 현지에서 와인을 교육받고 와인을 심사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사람들 역시 동일한 와인을 한 번은 83점, 한 번은 91점을 주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와인을 마시고 평가하는 일은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심리 적인 부분이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유난히도 더 비싸고 더 고급 스러운 와인에 그렇게 찬란하고도 황홀한 평가들이 많이 쏟아지는 이유는 이미 우리가 그 와인이 비싸고 고급스럽기 때문에‘가치’ 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맛이 아닌 가격, 등급, 마케팅 등 외부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여 마시기 전부터 이 와인은 이미 좋 은 와인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비싼 와인이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자본주의 세상에 는 그 어떤 상품도 희귀성의 원칙에 따라, 또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치와 가격이 결정되는 것을 피할 수 없기에 가치가 있는 상품은 당연히 그만한 가격을 하는 것이 맞다. 비싼 와인은 그 나름의 이 유가 분명 있다. 훨씬 더 품질 좋은 포도와 철저한 관리로 만들어 지기 때문에 그 맛의 차이가 분명하게 느껴진다. 다만 무작정 비 싼 와인이 좋다는 생각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하고 내가 그 와인의 가치를 모르고 있다면 아무리 비싼 와인을 마셔도 그 가격이 합당 하다는 맛을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즉 어떤 와인을 마시든 간에 맛이 있어 가치가 있는 것인지 가치가 있어 맛이 있는 것인지 한 번쯤 생각해 본다면 와인 맛에 대해 좀 더 넓은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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