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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Jan 10. 2024

01 내 편이라는 낭만



 왜 연애를 그리고 결혼을 하고 싶냐는 나의 질문에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 답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상하리만큼, 대단한 형용 없이 담백하고 때론 투박해 멋없다 생각했지만 오히려 진심으로 내비치는 말이라 그런지 삽시간에 동요되었었다. 계절에 따라 여행도 가고 서로 예쁜 추억도 쌓고 그렇게 미래를 함께 꿈꾸는 일상을 늘여놓는 달콤한 말 보다 그저 내 삶에 든든한 편이 나타나주길 바라는 그 소망이 긴 여정을 겪고 난 뒤 얻은 깨달음처럼 들렸달까.


 어쩌면 그의 말이 내게 명쾌하게 다가온 이유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서 아닐까 뒤늦게 추측해 본다. 자유분방한 의미를 내포한 '내 편'. 나는 그 숱한 의미 속에서 힘들다는 그에게 뭐가 힘드냐고 묻지 않고 그저 고요히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무언의 힘을 진정한 '내 편'이라 정의 내려본다. 물론 나도 한 때는 센스 있는 선물을 주고 사랑 가득한 말들로 눈과 귀를 사로잡는 사랑을 가장 큰 의미로 여긴 적도 있었다. 그런데 사랑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었다. 사랑의 감정이 변질된다는 뜻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또 다른 형태로 승화되어 갔다. 일렁이는 눈빛으로 사랑한다 말하는 순간보다 상대를 필요로 하는 순간 함께해야 함을 아는 마음이 진정으로 고맙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몇 번의 계절을 보내고 가장 소중했던 것들을 떠나보내며 비로소 알아갔던 여러 감정들을 조물주가 태생부터 진하게 새겨주었다면 스물 하나, 광안리 해변가에 누워 별자리에 대해 속삭이던 그 선배와 영원을 향한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쩌면 유치원 짝꿍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불가능에 가깝다. 귀한 줄 알아야 결국 잃지 않기 위해 소중히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을 쥐뿔도 몰랐던, 그저 손 한번 잡아보고 싶은 나이였기 때문이다.


 이제 나의 낭만은 그럴싸한 수식어를 내려놓고 평범하고도 지루한 그래서 익숙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생각한다. 정답은 없다. 누군가에겐 여전히 반짝이는 겉옷이 특별한 사랑으로 여겨질 수 있다. 내 사랑을, 낭만을 수수한 척 포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것 없이도 자꾸 손이 가는 무지 티셔츠가 내 삶에 더 큰 의미로 자리한 것뿐이다. 그뿐이다.



 때론 낭만에 대한 선명한 피력들이 삼십 대 중반을 향하는 솔로, 미혼자의 ‘까달스러움’으로 치부되곤 한다. 책 한 권을 사러가도 신중을 기하면서 내 사람을 위해 들이는 시간 앞에는 애석하게도 부정적인 형용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낭만을 쌓아갈 거라 다부지게 말하고 싶다. 이십 대 때는 목표를 향해 무작정 걸었다면 삼십 대인 지금은 나의 심적 체온을 느껴가며 걷고 쉬고, 또 걷고, 때론 뛰며 그렇게 마음의 속도에 맞춰 나아가고 싶다. 내 삶도 내 사랑도 나의 로맨스도 말이다.


 더 세월이 흘러 주름 가득한 얼굴이 돼서도 나의 로맨스에 대한 글을 쓰고 있길 바라며 올해도 멋 없지만 나다운 사랑의 글로 채움을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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