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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Mar 04. 2024

04 감정이 0에 수렴하는 시기



 도태되는 삶이 이처럼 평온한 지 몰랐다. 왁자지껄 소란스럽던 나의 발랄함을 뒤로한 채 생각은 넓혔고 마음은 좁혀갔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들일 수 있는 사람도 사랑도 한정적으로 바뀌었다. 누군가의 삶의 변화에 무던해졌다. 더 야박하게 말하자면 궁금하지 않아 졌다. 핏대 세워 함께 열내주던 그 찰나도 사랑이었음을, 애정이었음을 깨닫고 지금은 그 감정을 소진한 채 귀를 반쯤 닫아버렸다. 내 삶만으로 버거웠다. 고요해지자 평온해졌다. 비겁하게 잠수를 타거나 의도치 않게 오해를 만들진 않으려 최소한의 노력을 기하면서 말이다.


 약속을 줄여갔다. 어쩌면 타인들에게 비치는 내 장점은 '잘 들어주는 사람'일 거라 추측한다. 그래서 자주, 그것도 빈번히 나를 찾아왔다. 남자친구의 성화에 못 이겨 후다닥 한 결혼, 그리고 빠르게 찾아온 아이, 그 아이를 키워내면서 다시 복직을 해야 하는 고민들. 새사람을 만나고있는 전 남자친구를 잊지 못한 채 종종 전화하는 자신의 신세를 토로하는 고민들. 단 한 개도 비슷한 점 없는 가치관을 수시로 읊어대는 고민들. 그 고민들이 자꾸만 날 숨어들게 만든다. 그들의 고민을 자처해 궁금해했던 적은 없지만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 뿌듯했던 나날도 있었다. 단지 이제는 버겁다.


 늘 그래왔다. 서로에게 무거운 일이 생겼을 때 적절히 덜어가 주기도 하고 묵묵히 경청해 주는 것 만으로 위로를 줬던 여유로웠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고민의 반복들이 반문을 일으킨다. 그러길래 왜 줏대 없이 결혼했어. 누굴 만나고 있는 사람한테 전화하는 진짜 이유가 뭐야. 너의 선택들을 확신받으려 하지 마.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들을 삼켜냈다. 나는 내 삶에 대해서도 무수히 고민 중이다.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겪지 않은 고민들, 또는 내가 겪지 않을 고민들로 인해 피로해지는 것이 싫어졌다. 변했다고. 이기적이라고 날 욕해도 할 말 없다. 누구든 본인 삶이 우선이기에. 그래서 자연스레 거리를 뒀다. 나를 위해서 또는 우리를 위해서.

 


  크게 놀라울 것도 없다. 진짜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그가 머지않아 한국을 떠나 먼 타국에 정착할 예정이란 안부 인사에도 '미웠던 감정 털고 가서 잘 살아.'라고 말하자 '많이 배웠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라고 답해왔다. 그가 타국으로 가는 이유도 다름 아닌 국적도 언어도 다른 외국인 새 여자친구 때문임을 듣고도 무너지지 않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 그를 완전히 거둬냈다고 말할 순 없었지만 그의 진취적이고 때론 무모했던 도전의식에 드디어 맞닿는 인연을 만났구나 싶었다. 그 길을 함께 걸어주지 못하고 중도하차 한 스스로를 질타하지도 않았다. 나 또한 고요히 숲길을 걸으며 따스한 햇살을 함께 맞을 내 인연을 만나면 우리 모두 해피엔딩 아닐까 싶어서.


 인생이 참 신기하다 매번 생각한다. 당연하다 여긴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순간이 찾아오고 전혀 예상치 못한 찰나들이 불현듯 삶에 침투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는 전자이자 후자인 셈이다. 내 삶에 예기치 않게 깊게 박혔었지만 수화기 너머 새로운 사람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결국 헤어졌겠구나 우린. 그에게 말했다 이 길고 길었던 인연의 매듭을 이제야 묶을 수 있다고. 참 오래도 걸렸다. 진정한 끝이 당신의 노르웨이 여자친구의 이야기로 장식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인생이 참 신기하다 또 한 번 생각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무렵 노르웨이 언어를 공부했다고 한 문장 읊는 그를 보고 연이어 생각했다. 내가 단단히 콩깍지가 씌였었구나. 이 모지리. 부디 노르웨이 연어와 함께 돌아오는 일 없도록 먼 타국에서 또다시 불타오르는 사랑과 열정을 마음껏 펼치길 진심을 다해 기원했다. 그리고 내 삶에 잔여물처럼 남아있던 모든 이전 인연들이 비로소 소멸됨에 가뿐해졌다.



 책을 많이 읽게 된다. 원래도 책과 가까웠지만 올해가 된 지 석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까지 10권 이상을 읽어냈다. 이전에는 독서가 노력이었다면 지금은 숨쉬기 같은 느낌이다. 오로지 활자에 집중하는 순간 세상과 단절되는 느낌을 받았다. 고민 많은 친구들도. 여전히 해맑기만 한 지나간 그도. 내게 주어진 무수한 역할들로부터 말이다. 그래서 자꾸자꾸 수시로 책을 집어든다. 그렇게 조금씩 더 도태되다 보면 그곳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낼 것 만 같아서.


 스물일곱. 딱 비슷한 감정선을 나를 가득 메워 결국 퇴사를 했다. 모든 일상이 지루하고 피로해지는 동시에 새로운 자극제가 되려 더 숨어들게 하는 요소가 되었고 그저 평온 평온 평온만 찾던 스물일곱의 내가 보였다. 아. 또 왔구나. 이 시기가. 모든 순간이 0이 되는 그 시기.


 그래도 희망적인 사실은 이러한 시기는 늘 진정한 가치를 찾기 전에 찾아오는 명현현상과도 같았다. 단순한 긍정회로가 아니다. 내가 겪었기에 알 수 있는 것들이다. 그래서 이십 대를 넘어 삼십 대에 마주한 나는 더 굳건히 이 시간을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이젠 되려 마음에 채워둔 게 없다 보니 앞으로 채울 일만 남아 오히려 산뜻하기까지 하다. 단지 그 채우는 행위를 아주 조금은 나중으로 미뤄 둘 예정이다.


 책을 읽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내 감정을 순수히 내면에서 해소하고 싶을 때 행하는 나의 노력 중 하나다.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타인의 고민을 하염없이 듣다 보면 공감보단 지침이 먼저 찾아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또 오늘 이 숱한 활자와 문장 속에 모든 것들을 비워내고 있음을, 삶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서고 있음을 이 곳에 녹여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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