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후배가 수년의 시간을 함께 한 연인과 이별했다. 그간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각자 다른 연애를 하다, 또다시 서로에게 연락을 하고 그 무수한 과정을 끝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오전에는 눈물이 나지 않고 초연하다던 그녀가 오후엔 눈물이 날 것 같다 말했다. 정신이 온전할 수 없는 시기임이 분명하기에 별다른 말을 해줄 수 없어 그저 들어주었다.
안 아플 리가 없지만 그녀 또한 시간이 약이라는 거북스럽지만 부정할 수 없는 문장에 기대 버티어 결국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것이다. 몇 주가 지나 그녀를 포함해 후배 한 명과 함께 만난 날이었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다 문득 후배는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잘 헤어지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옆자리에 앉은 동기가 얼마 전 이별을 겪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그날 이후 알게 된 것은 질문을 한 그녀 또한 이별을 준비 중이었었다.
그중 한 후배가 말했다.
"함께 갔던 여행지중에 가장 즐거웠던 곳을 마지막으로 가는 거 어때? 뭔가 깔끔히 정리할 시간이 될 거 같은데.“
그러자 우리는 웃었다. 실제로 '이별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을지는 가늠이 안 가지만 참 어려운 여행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그것이야말로 낭만인가 순간 생각했다. 이어 나머지 후배가 골똘히 고민하더니 말했다.
"서로한테 미안했던 일 다 사과하고 고마웠던 일 고맙다 하고 감정을 다 표현하고 끝내기?"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 차례가 왔다. 사실 세상에 '잘 헤어지는 법'이라는 게 존재할지 그 유무조차 의문스러웠던 내가 답 할 차례였다.
"한번 안아보기!"
그녀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나한테서 기대한 말은 이러한 답이 아님이 확실해 보였다.
가로등 불빛 아래였다. 마음이 다 했다고 할 순 없었지만 더 이상 사랑을 이어갈 수 없음이 서로에게 분명했던 날. 우리는 헤어졌다. 그는 헤어지잔 내 말에 동의했지만 자리에 일어서며 집까지 데려다주겠다 말했다. 마지막일 것 같아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집에 다다르자 평소 헤어짐이 아쉬워 자주 포옹을 하던 가로등 불빛 아래였다. 나는 그에게 한번 안아달라 말했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 안아주다 힘을 더 주어 꼬옥 더 꼬옥 안아주었다. 나도 힘을 빼고 그의 몸에 가득 안겼다. 우리의 긴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알기에, 이 순간이 서로에게 또 얼마나 아플지 아주 잘 알기에. 고마움과 미안함을 가득 담아 서로를 안았다.
그 순간 신기한 감정이 들었다. 모든 미움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더 이상 이 사람과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 아득함이 진심을 담은 포옹 한 번으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했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그가 따뜻하게 안아주며 이내 머리까지 쓰다듬어주니 눈물이 왈칵 나올 것 같았다. 헤어짐이 아쉬워서라기 보단 고작 이런 짧은 시간에 감정의 판도가 흔들려 '혹시 그래도 우리..'라는 생각을 찰나에 했다는 사실에. 얄팍한 마음이 못내 야속해서. 그 사소함을 앞서 해내지 못한 우리는, 아니 그와 나는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그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후련했을까. 미웠을까. 아니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더 이상 가로등을 보며 그를 떠올리지 않았지만 새 연애를 해도 필사적으로 그 가로등 아래서 포옹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겨울 눈이 예쁘게도 내리던 날, 가로등 불빛을 더 영롱하게 만들어주던 그날, 나는 생각했다. '다시는 저 근처도 안 갈래'라는 속마음에 가려진 ‘조금 일찍 안아볼걸'이라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연애초에는 미움이 가시는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신경전 끝에 얼굴을 마주하면 그저 좋았고 무엇 때문에 감정이 상했는지 기억조차 안나는 경우도 잦았다. 관계가 익숙해지고 편해질수록 더 이해받고 싶고 더 많이 배려받고 싶은 못된, 어쩌면 자연스러운 마음이 피어올랐다. 내 감정이 최우선이 되어 상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속상해 마지못해 밉고 밉더라도 내 마음을 뒤로하고 따스히 안아줬다면. 그 못된 이기심을 삼켜내고 너도 많이 힘들었겠지 하며 끌어안아줬다면. 이건 후회와 미련이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자 아쉬움이다. 감정을 스스로 마무리 짓고 이별을 말했던 그 어리숙했던 나를.
그녀들은 이러한 내 경험을 알지 못했기에 그저 어이없다고 웃어댔다. 이별여행과 고해성사보단 더 현실적이지 않나? 억울하지만, 결코 이별을 ‘잘’하는 것과 떠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 실오라기 하나 없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에 기꺼이 헤어지고 또다시 사랑하며 득도하는 수밖에 없다.
태어날 때부터 잘 사랑하고 잘 헤어지는 사람은 없다. 헤어지면서 숭고함을 배우고 돌아보면서도 또 한 번 내면의 근육을 자극시키는 것 아닐까.
그래도 말이다. 진짜 더 이상 결단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당신이 만나는 상대는 당신 삶 구석구석 자욱을 남긴 사람이자 앞으로 삶에서도 여전히 그런 존재일 것이다. 그러니, 연을 다해 각자의 길을 걷게 되든 앞으로의 삶을 함께하든 어떤 결말이든 좋으니 그러한 마음이 들 때 딱 한 번만 상대를 끌어안아봤으면 좋겠다. 별 거 아닐지 모르니 말이다.
비록 나는 결국 이별 해 애꿎은 가로등에게 화풀이를 해왔지만 당신의 사랑은 나보다 나은 엔딩이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