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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Apr 27. 2024

14 위로가 필요한 순간이라면



 버스가 죽지 않을 만큼의 사고가 났으면 했다. 언제쯤 도착 예정이냐는 선임의 연락을 무시한 채 깊은 강 아래로 빠지고 싶었다. 석 달만에 7kg가 빠지고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자 엄마는 심각성을 느끼고 내게 물어왔다. 네게 무슨 일이 있는 거냐며. 그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럴싸한 일이 없어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세상 사람들 다 잘만하고 살아가는 일을 하다 이 지경이 되었다 말하기에 왠지 이해받지 못할 것 같아서. 내 나이 스물일곱에 찾아온 첫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이 무서운 게 당시에는 본인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기 어렵다. 그저 피곤하고 나태해지는 기분을 시작으로 모든 상황에 무감각해진다. 그러다 불현듯 두려움이 엄습한다. 이런 내 모습이 영원할 것 같아서. 선뜻 병원을 가기도 망설여진다. 나만 유독 나약해서 그런가 또 스스로를 탓한다. 그리고 온몸과 마음이 부서지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많이 아프구나.

 


 첫 사회였다. 대학을 휴학 한번 하지 않고 졸업한 이유는 경제적인 독립을 하고 싶었다. 양지바른 부모의 그늘 아래서 감사히도 걱정 없이 컸지만 진정한 내 삶을 찾기 위해선 먼저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졸업 전시를 준비하면서 취업에 성공했고 졸업식을 치루기도 전에 출근을 했다. 내게 주어진 일에 감사했고 많지 않지만 다달이 들어오는 월급에 스스로가 대견하다 여겼을 때도 있었다. 성격 탓인지 덕인지 나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다가올 수 있는 직원이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도 먼저 나서서 했고 부탁하기 어려운 일도 사람들은 쉽사리 부탁해 왔다. 그 시간의 누적은 결국 날 인정해 주는 결과를 낳을 거라 순수하게 생각했지만 사회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일은 두 배나 되는 브랜드에 배정되더니 후배를 한 번에 두 명이나 붙여주었다. 2살 아이에게 갓 태어난 둘째, 셋째 쌍둥이 동생을 맡긴 격이다. 후배들의 실수는 나의 실수로 돌아왔고 혼자서 버텨오던 것들이 세배가 되자 버겁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두 후배가 지금까지의 소중한 동생으로 자리해 감사하지만 당시에는 이 둘을 책임져야 한다는 두 살짜리 어린 초년생의 고민은 심히 깊었다. 그래서 그들을 보내고 울기도 했다. 그때는 현명하지 못했다. 그저 무게를 대신 짊어주는 것이 선배의 역할이라 생각했지만 좋은 선배는 적절히 무게를 나누어 모두에게 괜찮은 결과를 이끌어냈어야 했는데. 그렇게 우울은 그러한 빈틈을 노리며 서서히 내게 스며들었다. 마치 나의 상황을 조롱하듯 말이다.


 맞는 바지가 없어졌다. 다이어트할 때는 그렇게도 안 빠지던 살이 몇 달 만에 삽시간에 빠져 동기는 나를 보고 조금 쉬라 했다. 그때는 그러한 이유로 쉰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용납되지 않았다. 웃긴 이야기지만 난 그때의 나, 과거의 나, 지금보다 훨씬 어린 나를 떠올리면 미안하다. 그때는 나도 나를 지키는 법을 몰라 나를 너무 아프게 만들었다. 나를 병들게 한 것은 사회도, 상황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버스가 강남역에 멈추어 섰을 때 오늘도 버스 안에서 사고 나는 상상을 했던 나 자신이 미웠다. 곧장 병원을 여러 군데 돌아다니며 검사를 했다. 그 어디에서도 똑같은 말만 들었다. 아무 문제없다. 이상 없다. 정상이다. 그리고 끝에 이 말들을 했다. 푹 쉬어라. 많이 자고 쉬고 먹어라. 그날 회사에 가 무급휴가를 조금 길게 내야겠다고 처음으로 나를 위해 목소리를 냈다. 평소에 휴가도 잘 안 가던 내가 무급휴가를 낸다 하니 이사는 그러라 했다. 그때 마음먹었다. 다시는 고통을 주면서까지 회사에 전념하지 않겠다고. 누굴 위해서라는 포장 안에 나를 아프게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엄마와 여행을 떠났다. 엄마가 평소에 가고 싶다던 체코로 향하기 위해 비행기에 올라탔다. 글로는 다 써 내려갈 수 없지만 나의 첫 우울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내 인생 진한 흉터를 남기고 서서히 옅어져갔다. 또다시 우울이라는 감정을 마주하더라도 가뿐히 나를 쉬게 해 줄 여유를 배우며.


 


 퇴근길 지하철에 내리자 의자 옆에 쭈그려 깊은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를 보았다.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나쳤지만 순간 그날이 생각났다.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나는 이런 상황과 마주할 때마다 자꾸 그때의 내가 보인다. 그래서 오지랖이 생긴다. 힘들면 좀 쉬라고 참지 말라고 이름도 성도 모르는 낯선 이에게 마음을 보내고 발 길을 돌렸다. 하루하루 평범히 살아가다 보면 평소와 다르게 지치는 날들이 있다. 나는 여행을 떠나거나 가까운 카페라도 나가 스스로를 챙긴다. 사회초년생들에게 업무를 알려주기 전에 이러한 이야기를 미리 해주는 것도 어쩌면 내 오지랖 중 하나다. 나도 그때, 누군가 다 그런 시기가 있다고,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힘들면 좀 쉬라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 친구에게 솔직하게 내 상황을 말하지 못했던 내 부족함도 있었지만 스쳐 흩어질 말이라도 혹시나 싶어서. 이 글을 마주한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꼭 해내야만 하는 일은 사실 많지 않다. 그러니 힘들면 그저 힘든 마음을 구석에 내팽겨치고 어디든 떠났으면 좋겠다. 집 앞 공원이라도 좋다. 거기서부터 출발이다. 나 자신을 지켜내는 법. 더 이상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삶이 힘들어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쳤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은 비싼 회를 포장해 소주나 한잔 마시고 자야겠다 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 엄마는 내게 그런 말을 하셨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 싶은 일들은 결국 그러한 순간을 다시 마주했을 때 이겨낼 힘을 길러준다고. 그래서 삶이 힘들 때 무조건 울 일이 아니라고. 맞다. 맞지만, 그러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 않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야 알게 될 뿐. 그러니 내 글은 ‘이겨내라, 그러면 알게 된다’가 아닌 ‘많이 힘들겠다. 그래도 기필코 내일은 보다 나을 거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잠시, 쉬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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