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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Apr 26. 2024

13 괜찮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



 후배는 몇몇 기혼자 지인들을 뒤로하고 내게 결혼식 축사를 부탁했다. 앞서 경험한 기혼자의 꼰대스러운 발언보다, 학창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편지 낭독보다, 담백하게 3분을 채워주길 바라는 것 아닐까 지레짐작해보았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



 오랜만에 버스에 올라탔다. 퇴근 시간대에 막히는걸 알면서도 그날따라 아무 생각 없이 버스에 앉아 집까지 가고 싶었다. 겨우 앉은자리 앞에는 사랑스러운 연인이 앉아있었다. 함께 갈 식당을 찾고 있는 듯 보였는데 남자친구는 연신 핸드폰으로 맛집을 검색하고 있었고 여자친구는 그런 그의 얼굴을 꽤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남의 연애를 엿보는 것 같아 잠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이내 돌아왔을 때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 눈빛을 뭐라 말하면 좋을까. '내 눈에 당신을 담아도 담아도 모자라다.'라는 표정이었다. 어쩌면 그건 사랑을 넘은 동경이자 존경이자 그 또한 초월한 감정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저게 사랑이지'하며 혼자 흐뭇해하는 순간 문득 축사의 좋은 주제가 생각났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막연히 응원하는 것보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부부와 언젠간 그 자리에 설 내가 함께 꿈꿔보는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갔으면 하는 그 삶을 말이다.



 길 가던 노부부가 손을 꼬옥 잡고 있을 때면 마음이 참 따뜻해진다. 그러나 내겐 기분 좋게 한잔하고 집에 들어가는 길 할망구 좋아하는 귤이 싱싱하다며 한 봉지 사며 퉁명스럽게 현금을 내미는 할아버지의 사랑이 더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일까. 사랑한다 말하며 입 맞춰주는 순간보다 어떤 노래를 듣다 문득 네 생각이 났다고 흘리듯 말해주는 순간을 더 사랑했다. 내 소중한 후배가 그러한 순간들을 아주 많이 그리고 자주 마주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써 내려가는데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흔히 결혼을 통해 '인생의 동반자'를 얻는다 생각한다. 미혼자의 발언이 크게 영향을 끼치진 않겠지만 나는 결혼을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한 무거운 타이틀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고 소신껏 말하고 싶다. 인생의 동반자 안에는 무수한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겠지만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두 사람이 부부라는 관계 하에 짠! 하고 동반자가 되는 마법은 그리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해 왔다. '네가 그러니까 낭만이 없지'라고 질타할지라도 나는 현실적으로 그러한 기대들이, 인생에서 대단한 선택이었기에 주어지는 무게들이 되려 더 큰 실망과 후회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눈 감는 순간 '당신은 내 삶 최고의 동반자였어.'라고 말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가치 있는 관계가 되어주기 위해 함께 성장하는 것이 결혼이라 늘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결혼의 전제가 아닌 '삶을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이 적절한 전제로 옮겨진 것이다. 연애를 거듭할수록 인연을 더해갈수록 그 전제는 확신에 가까워졌다.


 버스가 대교를 건널 무렵 체증이 심해졌다. 덕분에 반짝이는 한강 윤슬을 바라보며 생각은 조금 더 깊어졌다. 내가 누군가와 미래를 함께한다면 어떤 순간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할까? 혼자 떡하니 있던 등본에 누군가가 더해질 때? 치킨 한 마리를 남기지 않고 다 먹을 때? 무서운 영화를 보다 놀라 숨을 품을 찾았을 때? 내 삶에 어려운 문제를 함께 풀어나갈 때? 모두 해당되겠지만 나는 '내가 나를 미워할 수 있을 때' 당신과 함께 하는 삶을 참으로 잘 택했다 여길 것 같았다. 그럴 때가 있다. 내가 굳건히 믿어온 내 신념과 가치들이 때때로 누군가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과 마주했을 때 억울하고 화가 난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상황이 왜 그렇게 된 건지? 상대가 차분히 내게 그 상황에 대한 이야기 해줄 때 차오르는 반감을 누르고 그 말을 기꺼이 해주는 상대에게 되려 고마워질 때, 나조차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또는 외면했던 내 일부를 겸허히 받아들이게 될 때 묘하게 어제보다 괜찮은 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 말도 있지 않을까. 좋은 연애를 했다는 증거는 내가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스스로의 인정이라고. 결혼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장황하게 정의하기엔 아직 미생이지만, 적어도 기준이 상대에게 옮겨져 내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삶보다 내 삶의 기준을 두고 상대롤 통해 더 나은 나로 살아가는 것, 결국 그 발전이 사랑하는 이에게도 더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나이 들어가는 것, 꼬부랑 노부부가 되어 서로를 바라봤을 때 여전히 눈빛 하나만으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그 시선으로 결혼이 시작되고 완성된다 생각해 봤다.


  버스는 곧 집 근처에 다달아 하차벨을 눌렀다. 여전히 그들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그녀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그 시선을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사랑이 아닌 매 순간 진실되게 사랑하는 것일 테니. 그가 드디어 괜찮은 식당을 찾은 모양이다. 환한 표정으로 "이 가게 괜찮겠다."라고 말하는데 핸드폰 화면을 채 보기도 전에 그녀는 답했다. "너무 좋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때마침 내 이어폰에서 성시경의 [당신은 참]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들에게 선물하는 노래처럼 귓가를 맴돌아 기쁜 마음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당신은 참,

내게는 참. 그런 사람.

바보인 날 조금씩 날 바꾸는 신기한 사람

사랑이 하나일 줄, 사랑이 다 그런 줄.

알았던 내게, 그랬던 내게.


 당신은 참,

 내게는 참. 그런 사람.



 나는 후배에게 평생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말보다 비도 오고 천둥도 내리치고 또 때로는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들이 찾아와도 사랑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는 무언의 시선을, 눈빛을 기억하며 그 마음으로 서로에게 진정한 편이 되어주라 어렴풋이 말해보려 한다.


이거 이거 맨날 스스로에게 낭만 없다고 질타하는데 가만 보니 어쩌면 내가 제일 낭만쟁이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기분이 정말 좋았다. 사랑하는 후배가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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