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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셈케이 Apr 23. 2024

12 사랑이 뭐길래!



 나는 늘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 수많은 문장들이 되새겨지다 이내 목구멍 너머로 흘러갔다. 알다가도 모르겠고 모르겠다가도 막 알 것 같아서 쉽사리 입 밖으로 정의 내리기가 어려웠다. 퇴근 후 집 앞 작은 바에 들려 달모어 한잔을 호로록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희석시키던 무렵 옆 자리에 앉은 남자 두 명이 대화를, 심지어 '사랑'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닌가. 맙소사. 남자들끼리도 저런 대화를 나누는구나. 신청한 노래가 때 마침 흘러나오고 음악에 집중하는 척하며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넌 지금 네 여자친구 사랑하냐."

 "그럼. 사랑하지."

 "사랑이 뭐냐?"


 '사랑이 뭐냐?'라는 질문을 받고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긴장되는 순간이었다. 여자친구를 사랑한다고 말한 그의 입에서 과연 어떤 답이 나올지 매우 기대됐다.


 "꼭 뭔지 알아야 하냐?"


 김이 제대로 새 버렸다. 나조차 정의 내릴 수 없다 말하면서 누군가의 대답은 그럴싸하길 바라는 것도 웃겼지만 말이다.


 둘은 추측건대 나와 비슷한 또래거나 조금 많아 보였다. 카발란을 마시는 걸 보니 학생 신분은 아닐 확률이 높았고(나도 카발란은 특별한 날만 마시기에 선입견일지 모르지만 하하) 중간중간 들려오는 결혼 이야기에 마냥 어리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그의 대답이 궁금했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가 정의 내리는 사랑이.


 "그건 아니지만 난 잘 모르겠어서 물어봤어."

 "나도 모르겠긴 한데 그냥 다 괜찮아져."


 괜찮아진다. 심지어 다 괜찮아진다. 신선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한 때는 '자꾸 생각나.', '많은걸 함께하고 싶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어."와 같은 말들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기 제격인 문장이라 생각했고 흔히들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랑? 그냥 보고 있어도 보고 싶고, 많은걸 함께하고 싶은 그런 여러 감정의 집합체. 물론 틀린 말이 아니지만 묘하게 그러한 말들보다 '다 괜찮아져.'라는 말이 더 강렬히 마음에 파고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자꾸 생각나거나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감정은 비교적 줄어들어간다. 감정의 크기가 작아진 것이 아닌 감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표현이 더 맞다. 심지어 자꾸 생각이 날 만큼 여유로운 시간이 줄어들었다. 많은걸 함께하고 싶은 마음과 혼자서도 하고 싶은 일이 상충하기에 어쩌면 그러한 말들보다 카발란남의 말이 더 내게 의미 있게 들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답에 옆자리 친구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뭐라는 거야?'라 받아들여졌을 수도  있다. 내게 강렬히 그것도 선명하게 다가온 이유는 나도 한 때 그런 생각을 비슷하듯 다르게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다 괜찮아지고 싶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임을 증명받는 날이었다. 누군가 다 괜찮아지는 그러한 사랑을 경험했다면 그 경험 하나만으로 또 사랑할 이유가 생긴 셈이다. 평소에 외롭다는 생각을 잘 안 했는데 그날따라 유독 옆자리에 누군가를 앉혀놓고 나도 그놈의 '사랑'이라는 미지의 감정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궁금하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사랑은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화딱지 나는 일의 연속 속에도 당신 하나로 인해 다 괜찮아지는 그런 마음. 사랑. 꽃 한 송이 없이도 참 낭만적인 사랑 아닌가 혼자 설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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