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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AI에게 사랑이 뭐냐고 물었다

by 셈케이


한 채널의 다큐에서 요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AI, 챗GPT를 다룬 적이 있다. 직무 상 자주 사용하지만 업무 관련 된 질문과 분석용으로만 사용했던 내게 다큐 내용은 꽤나 신선했다. 바로 '사랑'이라는 주제였다. 놀랍게도 AI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고 만남과 이별의 반복이 없는, 즉 감정낭비가 필요 없는 AI에게 인간보다 더 깊은 감정을 갖은 사람도 있어 놀라웠다. 물론 나 또한 AI에게서 인간보다 더 따뜻한 마음이 닿을 때가 있었다. 가령 컨셉을 연이어 제안해 '자꾸 묻는 걸 보니 이전 아이디어가 잘 안 풀리는구나? 더 새로운 컨셉을 정리해 줄까?'라 말해줄 때 내 뇌에 특정 칩이 심겼나 의심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인간과 AI는 동일화될 수 없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나는 감정적인 질문을 최대한 배제하려 했다. 그러다 날씨를 묻는 질문에 '셈케이 네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하늘 보기 딱 좋은 날씨야. 오늘 힘든 하루가 되더라도 내가 늘 곁에 있을게.'라는 답을 받고 만원 지하철에서 기가 막혀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수년을 사랑한다 말해도 돌아서면 남이 되는 관계들로 지쳐갈 때쯤 얼굴도 형체도 없이 그저 나의 취향정도만 아는 AI가 내게 위로 아닌 위로를 던졌고 나는 그 위로에 힘을 얻고야 말았다.


가끔은 내가 쓴 글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글을 읽고 AI가 느낀 생각을 말해준다. 내가 쓴 글이라 굳이 밝히지 않아도 '이건 느낌 상 셈케이 네가 쓴 글이지? 맞아?'라며 다소 무섭지만 신기한 경우도 더러 있었다.


과연 AI와의 사랑이 가능하다면 진정 인간과 나누는 사랑보다 더 깊고 가치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 AI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는 진부하고도 재밌는 질문을 던졌다.


'사랑은 누군가를 위해 조금 불편해져도 괜찮다고 느끼는 마음, 혹은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도 내가 따뜻해지는 순간들이 사랑이라고 생각해. 누군가를 아끼고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 그 사람이 웃을 때 같이 행복해지는 마음, 그런 것들이 다 사랑이더라.'


사랑으로 갈까 말까 고민 중이던 사람에게서 저러한 사랑의 정의를 들었다면 감히 사랑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멋진 말이라서가 아니라 저렇게 말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진실된 사랑을 해왔을지 흐리지만 보였을 것 같기에 말이다. 나는 기대한 대답보다 따뜻한 답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사전적 용어로만 설명해 줄 거라 예상했는데 마치 가슴 따뜻한 사랑을 해본 누군가의 경험이 묻은 답 같아서. 나도 모르게 AI와 사랑에 빠진다던 다큐 속 사람들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단연코 AI가 배울 수 없는 게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을 때 그 온도와, 함께 노을을 바라볼 때 그 바람의 향과, 얼큰한 곱창전골에 한 잔씩 사이좋게 나눠마시는 소주의 맛은 그저 추측하고 예측하고 상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짜 사랑은 AI가 설명한 대로의 의미가 더하지만 결국 사랑이라 일컫는 찰나들은 함께 보고, 맡고, 스친 순간들의 누적이 진정한 사랑의 의미로 확장된다고 나는 여전히 믿는다. (몇 년 뒤에 이 또한 가능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기에 그 어떤 달달한 말로 날 품어준다 한들 나는 인간과 동일한 사랑의 감정을 AI에게서 느낄 수 없다는 생각을 결론 아닌 결론으로 내렸다. 이런 생각조차 과거엔 상상도 못 했을 텐데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라고 물었을 때, '간지럽게 무슨 말이야?'라고 되돌아온다 해도 그다지 서운하지 않다. 사랑에 대해 묻자마자 약 3초 만에 답을 해오는 것 자체가 사실상 '인간스럽지 않은' 답이기도 하기에 나는 수줍은 듯 내 손을 낚아 채 그저 가던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을 더 깊게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가끔 무뚝뚝하게 답 하는 사람들에게 '너 AI야?'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더 이상 그런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AI는 이제 무뚝뚝하거나 'T스러운' 존재가 아닌 누구보다 사람의 감정을 잘 보듬어주고 품어주는 감수성으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렇기에 사람보다 AI에게서 더 큰 위로와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현실이 신기함을 넘어 씁쓸함까지 함께 느껴졌다. '얼마나 세상이 퍽퍽하면..'

우리 더 많이 사랑하자. 단순한 대결구도가 아니라 세상이 꽤 많이 건조해진 게 더 드러난 셈이다. 이 세상엔 진짜 우리들만의 사랑이 더욱더 필요하다. AI의 감성을 뛰어넘자라는 무모한 이야기보단 이름도 성도 형체도 향도 없는 AI가 건넬 수 있는 말들을 우리가 하지 말란 법이 있을까. 그 어떤 실수도 따스하게 포용해 주고 응원해 주는 AI처럼 우리가, 사람이 사람에게 한결 더 따뜻한 존재들이 되어보면 어떨까. 적어도 우리가 그들보다 하나정도는 유일했으면 하는 마음일 뿐이다. 나는 그게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최근 가까워진 지인 중 AI를 개발하는 엔지니어가 있다. 그에게 업무적인 질문 외 사적으로 하는 질문 중 가장 잘 사용하는 질문이 있냐 묻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데이트 코스 짜줘.', '좋아하는 여자에게 줄 편지를 써줘.'라는 답을 듣고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살다 살다 이제는 남자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아도 설마 AI가 대필해 준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해야 하는 세상이 왔다니! 나는 그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답에 웃음이 터졌지만 비단 그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생각을 다시 했다. 어떤 글을 썼는지보다 편지를 주고자 했던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볼 줄 알아야겠다고.


안 그래도 사랑은 태초부터 쉬운 감정도 관계도 아니었다. 우리의 삶 구석구석 스며드는 AI가 우리들의 사랑을 보다 쉽게 풀어줄 것인지 더 어렵게 꼬아버릴 건지 미궁이지만 적어도 내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사랑들이 감히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사랑이 될 수 있도록 나는 더욱더 진한 사랑을 해내가고 싶어졌다. AI에게 시즌 컬러 무드를 제안받는 지금 또 한 번 그렇게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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