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의 취미는 시를 읽는 것이다.
그런 나에게 친구가 물었다.
“시를 왜 읽어?”
그 질문에 나는 한참을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늘 장황하게 말을 쏟아내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시를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도저히 지금 당장 답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와 그 대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난 평소 생각이 많고, 그런 많은 생각의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상대도 느끼게 설명 해주고 싶은 욕심을 지녔다. 그런 내게 짧은 몇 마디로 모든 것을 설명해버리는 이 시라는 것은 기가 막히게 얄밉고도 닮고 싶은 존재였다.
나의 말이 시처럼 짧고 깊어지길 바랐다. 시작은 비단 질투심 비슷한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시를 읽음으로써 내가, 내 삶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변화한 것은 장황한 말을 쏟아내던 입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나의 눈과 그것을 담아내는 나의 생각이었다.
사실 한동안은 도통 무슨 말인지 몰랐다. 매번 이게 무슨 말이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에 지쳐갈 때쯤.. 시집을 읽는 내 눈과 머리에 들어간 힘이 점차 빠지고 느슨한 상태가 되었다.
마치 수능 공부를 하듯, 쓰여 있는 시구의 의미를 알려고 끙끙대기보다, 글자 그대로 머릿속에 그려보니 일상 속 늘 같았던 대상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가 글자가 되어 눈앞에 떠다니기도 하고, 집안의 물건들이 내게 말을 하기도 하고, 기분이 냄새의 형태가 되기도 했다. 일상을 채우고 있는 것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매일 보는 대상들이 매일 다르게 보였다. 내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무언가가 되기도 했다.
내게 시란 닫혀있던 문을 열리게 해주는 열쇠이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는 렌즈였다.
시를 좋아하게 되고 난 후에도 끝내, 장황하게 말하는 나의 말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생겼다. 수많은 생각의 과정을 통해서 느꼈던 나의 감정과 비슷하게 묘사된 시를 상대방에게 선물했다. 수십 마디의 말보다 무심히 건넨 시 한 편에 수십, 수백 마디의 대답이 돌아오기도 했다.
때로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때로는 나와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당신들이었지만 그 대답들 속에는 진심을 넘어 각자가 평소에 내보이지 않고 마음속에 품고만 있던 무언가가 조금씩 스며들어 있었다.
나의 취미는 시를 읽는 것이다.
시를 닮고 싶어서,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싶어서, 내 마음을 더 잘 전달하고 싶어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아니, 사실 그냥 별 이유 없는 때가 더 많다. 날씨가 좋아서, 아니, 방금 받은 커피 향이 너무 좋아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오늘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마음이 스산해져서. 나는 시를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