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노년을 그들은 살고 있었다
덥고 습한 무덥고 무거운 여름의 지속이다.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이마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 목을 타고 내려간다. 이런 날씨에 실외활동은 최대한 자제하고 싶다. 실내활동을 할 만한 곳을 찾아보자. 그러고 보니, 블로그 이웃이 앙리 마티스 전을 갔다 왔다는 게 생각이 난다. 그래,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에어컨 속에서 여가시간을 보내자.
대략 1시간을 가까이 야마노테선을 타고 우에노 공원에 도착했다.
우에노 공원 내에는 도쿄도 미술관, 국립서양미술관, 우에노모리 미술관 등 크고 굵직한 미술관과 박물관 5-6개가 모여있다. 공원 내에 미술관이 있는 것도 이색적인데,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만큼 공원은 컸고 우에노 동물원과도 이어져있어, 남녀노소 상관없이 많은 인파들로 붐볐다.
구글 맵을 켜고 뜨거운 햇빛 아래에 땀을 흘리며 도쿄도 미술관으로 향했다.
공원의 안쪽으로 쭉 들어가니 붉은 벽돌로 지은 미술관이 나타났다. 야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니, 입구가 나타났다. 티켓은 생각보다 비싼, 2000엔 웃도는 가격이었다. 오디오 해설은 추가 비용을 내야 하는데, 한국어 해설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여기서 더 추가 지출은 하고 싶지 않았다.
비싼 입장료에 묘한 압박감이 든다.
전시장 내부는 평일 낮 시간대였는데도 전시 입구부터 많은 인파로 붐볐다.
입구에는 앙리 마티스의 전기에 대한 설명이 적혔있었다. 수많은 한자들을 한 번에 해석할 자신이 없어 적힌 설명들을 번역하고자 , 파파고 이미지 번역을 켰는데, 미술관 직원으로부터 제지받았다. 아... 민망해라..
일본의 전시장은 한국과는 다르게 전시의 90%는 사진 촬영이 금지였다.
특정 사진 허용구역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했고, 사진 허용 구역에서도 한국처럼 자신이 전시장에 왔다는 인증사진을 찍는 사람은 아. 무. 도 없었다. 천천히 전시를 즐기며 작품 하나하나를 살펴보았다.
전시장 내부의 관람객들은 대부분이 60-70대 이상이었고, 얼핏 봐도 80대는 넘어 보이시는 어르신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신사의 상징인 중절모를 쓰고 있거나, 깔끔한 블라우스에 귀여운 실루엣의 치마와 가지런히 접힌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림 하나하나를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감상하고 있었다.
한국과는 다른 전시장 풍경이 이색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노년 생활을 이 분들은 현실에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은 꽤나 열정적인 모습이었기 때문에 감히 내가 그들 앞으로 들어가 그림을 더 가까이서 보려고 할 수 없었다.
핸드폰 사용이 최대한 자제되는 환경이었게 때문에 난 내가 들고 온 작고 진한 파란색의 몰스킨 노트 꺼내 간단한 감상문을 적으며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전시장은 꽤나 커서 지하에서부터 지상까지 이어졌다. 이제 막 지하에서 1층 전시장을 향하려 할 때, 어떤 직원분이 나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죄송하지만, 이 펜을 사용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나에게 짧은 연필심 박힌 펜 하나 건네주었다.
그렇다. 이곳은 볼펜의 "딸깍" 소리도 용납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받은 펜을 들고 "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전한 후, 문화충격으로 한동안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미술 관람에 이렇게 사소한 것들까지 배려한다니. 그 뒤로는 꽤나 바싹 긴장한 상태로 관람을 이어갔다.
잠시 긴장 풀린 곳은 사진이 허용된 공간이었다. 나도 주머니 깊숙이 넣어 두었던 핸드폰을 조심스레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일본의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온 자신이 아닌, 자신들이 관람하고 있는 작품들을 소중히 찍고 있었다. 멋진 작품 앞에서 돌아가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아닌, 정말 진심으로 작품을 감상하고 자신들만의 감상 포인트가 담긴 작품 사진을 찍고 있었다. 꽤나 부러운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의 전시장은 오히려 포토스팟들을 만들어 두고 가서 꼭 찍어야 하는 사진이 있기 때문에, 감상은커녕 작품과 사진을 찍으려 줄 서기 바쁜 풍경이 많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포토 열풍으로 인해 한국의 문화 생활 수준이 많이 올라간 것은 사실이지만, 조금 불편할 때가 많았다. 바싹 긴장한 채로 관람하는 것도 사실 예삿일은 아니었지만, 남들 사진 찍을 때 방해가 될까 봐 요리조리 자리를 피해서 다닌 것보다는 좋다고 생각했다.
한껏 여유를 부리며 마지막 전시 공간까지 보고 나오니 시간은 2시간 30분을 훌쩍 넘어가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의 공간은 전시 굿즈 판매 샵이었다.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적막의 전시장과는 다른 풍경이었다. 굿즈샵에는 식품부터 액세서리, 엽서, 도록, 의류, 인테리어 용품 등 없는 게 없었다.
거기다, 가챠의 나라답게 앙리 마티스의 가챠도 준비되어 있었다. 굿즈 샵만 돌아보는데 30분을 소비할 만큼 많은 상품들이 있었다. 그중 에코백이 예뻐 보여 거울에 대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가격표를 보니 3만 엔을 훌쩍 넘는 금액대였다. 아직 엔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0을 잘못 세었나 싶어 지만, 틀림없이 3만 엔이 넘는 금액이었다. 근처에 진열된 앙리 마티스 그림이 모티브가 된 브로치나 귀걸이, 패브릭 가방 류들은 가격대가 꽤나 나가는 제품들이었는데, 40-50대 여성에게 인기가 많아 보였다. 난 두 손으로 조심히 가방을 내려놓고 엽서들이 전시된 곳으로 재빠르게 발검을을 옮겼다.
그리고는 마음에 드는 포스터 3장과 그림이 그러져 있는 파일, 엽서 몇 장을 골랐다.
굿즈 샵 계산 줄은 맛집 못지않게 늘어서 있었고, 기다림 끝에 구매를 할 수 있었다.
미술관 문을 나서자 다시 도쿄의 무거운 열기가 온몸을 감쌌다.
전시장에서 건네받았던 그 짧은 연필을 떠올려 본다.
언젠가 나에게도 짧은 연필 한 자루와 함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작품과 마주할 수 있는 그들 같은 우아한 노년이 찾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