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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후회는 명품이다

방금 떠나간 버스가 아닌,

한참 전에 떠나보낸 버스가

내가 타야 했었던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온 우주에서 밀려오는 파도 같은,

'후회'가 꼭 그렇더라.


그래서 후회는 밀려온 파도의 크기만큼 미련을 남기지만

실은, 이 녀석의 진짜 면모는

파도가 다시 밀려나가며 쓸고 간 빈자리에서 드러난다.


그것은 단순히 놓친 버스에 대한 미련만이 아니라

내가 그 버스를 기다리며 느낀 설렘,

그리고 버스가 눈앞에 왔을 때 타야 할까?

라고 들었던 찰나의 의문,

여기에 막간의 조미료로 떠나는 버스 뒷모습을 보며

아니겠지라고 안심했던 못생긴 확신까지.

이 모든 것들이 엉키고 설켜

파도가 남기고 간 빈자리에 묘한 삶의 궤적을 그린다.


그래.

후회는 사실 단순하지 않았다.

삶의 궤적, 그것은 분명 나만의 사이클이 담긴 희로애락이었다.

그래서 그 어떤 감성들 못지않게

꽤 오랫동안 네임텍처럼 내 발목에 홀랑 달려있다.

나름 후회가 스스로 브랜딩 하는 것일까.


오늘은 그 후회의 브랜딩이 참 세련됐다고 느꼈다.

숨 막힐 것 같은 답답함만을 남기던 어떤 오래된 후회들이

내 삶의 자연스러운 한 부분으로서,

과거 그 찰나가 미래 어딘가로 길을 밝혀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이제는 이런 것을 막연히 느낄 나이가 된 것일까.

굳이 이유를 알고 싶지 않은 걸 보니

'나이를 먹었으니까'정도로 덮어도 꽤나 멋질 것 같다.


이 정도면

후회가 하는 브랜딩은 분명 명품이다.

왜?

그 찰나는 감정이 휘청일 만큼 좀 비싸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빛을 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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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명품이라면,

더 가져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버스를 놓쳐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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