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03 작성
나는 대학을 졸업한 지도 꽤 오래되어 간다.
하지만, 그 강렬했던 기억과 감정은 아직도 그때처럼 생생하다.
대학에서의 자유로운 학습과 개인 활동을 꿈꾸고 고등학교 3년을 꾹 참고 입시준비를 했지만,
생각보다 학교에서 인정해 주는 나의 재량권이나, 다양한 개별 활동들을 관리 가능한 유연한 시스템이 없어 너무 답답하고 화가 났다.
초, 중, 고등학교와 다를 바 없이,
반드시 등교해야 하는 '학교'(건물)이 있었으며,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과 정해진 수강 '시간'이 있었고,
졸업을 위해 갖추어야 최소요건('컴퓨터 관련 자격증', '영어성적', '졸업학점') 등 셀 수도 없는 획일적이고 경직된 틀이 사고와 행동반경을 제약했다.
그야말로 인간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있는 격이었다.
공교육과 대학제도는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훨씬 전에 산업혁명에 따라 당시의 획일화된 공정과 반복적 업무를 관리할 수많은 화이트 칼라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기업과 정부의 기획과 투자로 갖춰진 제도이다.
결국, 사회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기존에 없던 교육 제도가 탄생했던 것이다.
역으로 생각해 보자면, 사회의 요구가 달라지면, 교육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바로 지금이 그 시점이다.
다음과 같은 최근 변화의 징후들은 나의 예상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 코로나라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외부 충격 인해서, 가장 많은 학생이 좁은 공간에 모이는 대학은 코로나에 의해 그동안의 '학습공간'에 대한 개념이 깨져버렸다. 그동안에서 온라인 강의 시스템과 콘텐츠 구축에 노력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염병 이슈는 이러한 변화를 엄청나게 가속시켰다.
: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동안 "교육"과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여겨지던 것들이 무너지고, 또 무너져도 학습은 지속될 수 있다는 대중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이 생겨난 나는 것이다.
: 결국, 민주사회에서의 의사 결정은 다수의 대중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의 공통 경험과 인지는 결국 변화를 향한 정책과 투자로 이어질 것이다.
: 수 십 년 전, 대학 졸업장 만으로 쉽게 사회 진입(취업)이 가능했던 시기에는 대학 등록금도 마찬가지로 매년 물가 상승률의 몇 배 수준으로 뛰곤 했다.
: 그러나 점점 입학생은 줄고, 대학은 많아지고 등록금은 동결되면서, 대학의 재정 상태는 점점 열악해지고 있다. 점점 학위의 가치가 낮아지고, 따라서 등록금 상승 억제력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 이미, 많은 대학에서 등록금 수익이 대학 전체 수입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등록금 수익 부분도 그나마 외국인 학생을 적극 유치하고, 직장인 학위 프로그램처럼 그야말로 아직까지 돈 되는 학위 장사를 통해 버티고 있는 실정이다.
: 최근 대학이 새로운 수입원으로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이 "산학협력"이다. 대학이 가지는 연구장비와 고급 연구인력은 현재뿐만 아니라 향후에도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이며, 점점 전체 수입의 더 큰 비중으로 자리 잡아갈 것이다.
: 이를 통해 예측해 보건대, 대학의 생존가능한 유일한 수단이자 미래 대학 기능은 '교육'보다 '연구'가 될 것이다.
: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으로서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무엇보다도 사회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 그러나, 교육이 100년 전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반면, 사회와 기업은 1년이 멀다 하고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으며, 직무의 종류, 범위, 업무 방법, 업무 환경, 그리고 인재상이 이미 변한 지 오래다.
: 더 이상 학위, 학점, 자격증 등은 실무 역량을 예측할 수 있는 지표로 활용되지 못한다. 이미 실리콘 벨리의 글로벌 IT 기업들은 학위를 보지 않는다는 뉴스를 벌써 몇 년 전에 본 적이 있다.
: 실제로 최근 스타트업이나 기업들에서의 채용하고 있는 방식을 보면, 이미 다면평가 등 일률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이뤄지고 있으며, IT나 디자인 계통의 경우는 포트폴리오를 제일 중요시하고 있다.
: 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와 보면, 우리는 왜 대학이 필요한가? 왜 교육이 필요한가?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유(자립) 위해서이고,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경제적 자립"이 필수적이다. 결국, 내가 먹고살기 위한 스킬을 갖기 위하여 우리는 배운다.
: 과거에는 이 먹고살기 위한 스킬을 가르쳐줄 수 있는 루트(학교)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돈 한 푼 없이 세계최고 석학의 가장 훌륭한 강의를 들을 수 있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도 누군가 친절하게 정리해 놓은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 영상만 보고 따라 해도 거뜬히 해낼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통한 정보 습득과 훈련이 가능하다.
: 이런 지금의 환경에서, 오히려 수 십 년 전 쓰인 교과서에, 수십 년 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나보다 수십 살 많은 특정인으로부터, 비싼 비용을 들여서, 배운다 해도 실무에 가면 하나도 써먹지도 못할 정보를 배우고 있다는 자체가 오히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곧, 머지않아 대학은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고, 중, 초등학교가 도미노처럼 붕괴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