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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Jul 31. 2023

아프니까 아프리카

어느날 갑자기 암 환자가 되었다

2017년 2월, 나는 돌연 암 환자가 되었다.

유방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을 받고 며칠 후, 병원에서 다급하게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 문 닫기 한 시간도 채 남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당장 내원하라는 연락이었다. 조직 검사 결과 유방암 0기. 마음의 준비는 커녕 영문도 모른 채 나는 순식간에 중증질환자로 등록되었다. 당시 만 나이 32세. 내가 암 환자라니. 내가 중증질환자라니! 가만 있어보자, 진료비의 10%만 부담해도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좋은 것일까? 좋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첫 번째 수술로부터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2017년 7월, 새로운 종양들이 생겨나 나는 또 다시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나의 유방에서는 반 년 사이 이미 10개가 넘는 종양들이 떼어져 나갔다. 나는 바이러스들 입장에서 보면 아주 훌륭한 숙주로구나. 그래, 뭐 하나 훌륭하면 된거지. 그나저나 가뜩이나 빈약한 가슴인데 이렇게 종양까지 떼어내면 가슴이 더 작아질까 싶어 괜히 화가 났다. 어이 자네, 지금 그게 중요한가.


중증질환자로 등록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수술을 받으며 나는 삶의 동력을 상실했다. 원체 병약한 나의 건강 상태도 한 몫을 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예를 들어 금요일에 직장에 휴가를 내어 수술을 받고 주말을 쉰 후 월요일에 출근하기도 한다는 매우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나는 첫 수술 후 혈종이 생기는 바람에 새벽에 통증으로 울며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혈종 제거술 코 앞에서 가까스로 안정이 되어 제거술만은 면하게 된 전력이 있었다. 나는 혈관이 가늘고 약해 평소에도 작은 자극에 혈관이 잘 터지는데, 수술 후 조심해서 걷는다고 살살 걸었는데 그 과정에서 어이없게도 수술 부위의 혈관이 터져버린 것이다. 이렇게 빈약한 가슴도 걸어다닐때 생각보다 많이 흔들린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다. 가슴이나 크면 덜 억울하지.


이 사건(?)으로 '평소처럼 걷는다=혈관이 터진다'는 공식을 몸소 습득하게 되어 첫 번째 수술 때는 거의 한 달 가까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두 번째 수술 때도 첫 번째 수술 때의 악몽을 피하고자 3주 정도 외부 활동을 못한 채로 집 안에서 안정을 취해야만 했다.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이 지워진 느낌이었다. 가끔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요!' 라고 외치고 싶은 나날들이었다.


당시에 내가 프리랜서였던 것은 다행이었을까 불행이었을까. 나는 몸의 회복을 위해 원하는 만큼 쉴 수 있었지만 동시에 들어오는 일도 거절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중증질환자.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니까요! 두번째 수술은 과연 마지막 수술이었을까, 혹시 새로운 종양이 또 생겨버리면 그 때는 '저는 더이상 수술 받지 않고 그냥 죽는 것을 택하겠어요' 라고 말할까. 몸과 마음은 유기체여서일까. 두 번의 갑작스런 수술로 몸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노라니 마음도 속절없이 침전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을 모른 채 침전할 수는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나에게 해주자.

여행을 떠나야겠다.

아프리카로 떠나자. 모로코 사하라 사막으로 가자!

아프니까 아프리카다!


모로코의 사하라 사막. 중증질환자도 아프리카 사막에 갈 수 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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