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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Feb 05. 2024

수술 2개월 후 쿠바에 가는 사람(1)

세 번째 종양 제거 수술

2017년 1월, 7월에 이어 2018년 8월. 나는 세 번째 유방 종양 제거술을 받았다. 애초에 별로 풍요롭지도 않은 유방 조직이 또 이렇게 수술로 사라져 갔다. 세상은 참 빈익빈 부익부.


첫 번째 수술 때는 무슨 상황인지도 모른 채 얼레벌레 수술대에 누웠다가 덜컥 암 환자가 되었고, 이후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아 받은 두 번째 수술 때는 암 환자가 된 것도 모자라 내가 살면서 뭘 그렇게 잘못해서 일 년에 두 번씩이나 수술대에 누워야 하는지 서러움이 폭발해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에서 엉엉 울었었다. 다음번 추적 검사 때 또 종양을 제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이번에야 말로 기필코, 기필코!! '이제 수술은 그만 받고 저는 차라리 병을 키워 죽는 쪽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하리라 다짐했으나 막상 또다시 원치 않게 세 번째 수술이 눈앞에 닥치자 나는 꼬리를 내리고 다시 얌전히 수술대 위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일을 세 번 겪었다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양 제거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다. 맘모톰 수술은 전신 마취처럼 의사 선생님이 누워있는 환자에게 마취약을 투약하고 '환자 분, 열 세어 보세요' 한 후 하나, 둘, 셋 쯤에 정신을 잃는 것이 아니다. 부분 마취로 진행되기 때문에 또렷한 맨 정신으로 가슴에 마취 주사를 맞는 감각, 함께 초음파를 보며 '이번엔 여기 이 종양 제거할게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친절한 생중계(?)를 들으며 바늘이 들어가는 감각, 종양들이 빨려 나가는 감각을 모두 느끼게 되는데 이 과정은 정말 고역이다. 가뜩이나 추위를 많이 타는데 탈의한 채로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있자면 몸이 덜덜 떨려오고 수술을 위해 만세 자세를 취하고 있자면 어느새 팔이 저려온다. 몇 년이 지났어도 이 모든 각각의 고통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나는 '경력직 병자'가 아닌가.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의외로 세 번째 수술 때는 대성통곡을 하지도, 삶을 크게 비관하지도 않았다. 다만, 나는 무슨 연유로 일 년 반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새로운 종양들이 이다지도 쑥쑥 생겨나는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족력도 없고 생활 습관이 딱히 나쁘지도 않고. 혹시나 싶어 동일본대지진 당시 유출된 방사능의 영향으로 이렇게 된 건 아닌가 싶어 의사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여쭤보았는데 그런 건 크게 상관없고 그냥 '체질'이라고 하셨다. 체질... 맞지, 나는 어려서부터 매우 훌륭한 숙주였지! 바이러스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만만하고 괜찮은 먹거리. 영광입니다. 예예.




첫 번째 수술 때의 혹독한 응급실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에도 3주 정도 외출을 못한 채 집에서 요양을 했다. 당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많게는 두 번씩 일본 출장을 다니던 시기였는데, 세 번째 수술로 인해 당분간 출장을 갈 수가 없어서 클라이언트 부장님께 사전에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출장 스케줄에 지장을 초래해 죄송하다 말씀을 드렸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아요. 다 사람이 하는 일이잖아요. 푹 쉬고 오세요." 


그동안 세 번의 수술을 겪으며 원치 않게 일을 쉬어야 하는 상황이 스스로도 답답하고 억울해서 울고 싶은 기분으로 연락을 드렸는데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말씀을 들으니 그간 세상 탓, 남 탓이라도 하고 싶었던 뾰족뾰족한 마음이 한순간 사르르 누그러졌다. 그렇지, 우리는 기계가 아니지. 원치 않게 몸이 고장 날 수도 있고, 고쳐놓으면 기계처럼 바로 원상 복구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데 시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지. 아마 클라이언트 부장님은 본인이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갑자기 인생에 예고도 없이 휘몰아친 병마로 마음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내게 이보다 큰 위로의 말은 없었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전화를 끊고 펑펑 울었다.


나는 도 닦는 마음으로 세 번째 수술과 요양을 마치고 남들 같은 일상으로 복귀했다. 괜찮은 척했지만 세 번이 끝이 아니면 그때는 또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마음속 한편에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첫 번째 수술 이후에는 다행히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나오지 않은 것을 위안 삼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에게 더욱 잘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남은 삶에 즐거움과 행복의 빈도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다시 나에게 여행을 선물해 줘야지. 쿠바로, 카리브해로 떠난다! 

자유와 개성과 흥이 넘치는 쿠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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