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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Jul 31. 2023

암 환자의 모로코 여행이란

암 환자도 사막 한가운데서 잘 수 있을까?

두 번의 종양 제거 수술과 암 선고 후 결심한 아프리카 여행. 

왜 하필 모로코 사하라 사막이었을까?

이유는 단순했다. 어린왕자와 여우를 만나러 가기 위해서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은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Le Petit Prince)'인데 이 책을 처음 읽었던 초등학생 시절, 어려서 그랬는지 나는 당연히 책의 내용이 실화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사하라 사막에 가면 으레 어린왕자와 여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어린왕자는 사막이 우물을 숨기고 있어 아름답다고 했지만 나에게 사하라 사막은 금빛 머리칼을 가진 신비로운 어린왕자를 숨기고 있기에 비로소 아름다운 곳이었다.

긴 말은 필요 없다. 일단 떠나자!


나는 당시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 H에게 모로코 여행을 제안했다. 탐험형, 모험형 여행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H는 쾌적하고 깔끔한 도시 여행을 즐기는 친구였는데 의외로 흔쾌히 수락을 해주었다. 이렇게 H와 2017년 12월의 모로코 여행 계획을 세우던 도중, 나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다. 모로코 여행의 백미는 바로 사하라 사막투어로, 사막에 있는 베이스캠프까지 낙타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 1박을 하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투어 후기를 보면 사막의 밤은 매우 춥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추위를 유난히 많이 타는 것은 물론,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한 해에 1월과 7월 두 차례의 수술을 겪고 중증질환자로 등록된 암 환자였다. 두 번째 수술이 끝난 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지구 반대편, 그것도 사막에서 1박을 해도 과연 괜찮을까? 이러다 또 건강이 나빠져 세 번째 수술을 하는 건 아닐까? 


다시는 수술대에 눕고 싶지 않았던 나는 H에게 건강 상태를 설명하고 조심스레 이번엔 사막 구경만 하고 사막에서 자는 건 다음에 하는 건 어떤지 양해를 구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겁이 없었는데 사람이 건강이 무너지면 마음도 이렇게 쪼그라드는구나 싶었다. 수술이 아니면 고민 조차 하지 않고 바로 결정했을 사막 투어. 사막 투어를 하지 못하는 건 아쉬웠지만 차가운 수술대 위에 누워 바늘에 수시로 찔리고,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응급실을 들락거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이번엔 또 의사 선생님께서 어떤 무서운 이야기를 하실까 가슴이 콩닥거렸던 시간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H도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무리하지 말자고 나를 이해해 주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 잡았는데 이게 무슨 일, 여행 정보를 검색할수록 사하라 사막 투어의 엄청난 매력에 나는 어느새 저항할 틈 없이 이끌리고 있었다. 모래 언덕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 해가 지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과 은하수, 그중에 어린왕자의 별 B612호도 있겠지?, 운이 좋으면 볼 수도 있다는 사막 여우. 어린왕자를 만나러 사하라 사막에 가겠다면서 사막에서 1박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래, 사막 투어 해보자! 세상에 행복한 암 환자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나는 사막에서 쓸 침낭부터 재빠르게 주문하고 두꺼운 옷과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을 챙겼다. 

일단 가서 생각해!

황무지 길을 버스로 13시간 정도 달리면 사하라 사막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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