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틀풋 Aug 01. 2023

암 환자의 모로코 여행 준비 난관들

암 환자라고 거절당한 서러움에 관하여

유방암 0기 환자.

유방암 0기 판정을 받기 전까지는 나는 암에 '0기'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몰랐었다. 초기에 발견한 덕분에 나는 항암 방사선 치료를 하지 않아도 되어 천만다행이었고, 대신 여성호르몬 억제제(타목시펜)를 매일 같은 시간, 5년 동안 복용해야 했다. 5년 동안 별 문제가 없으면 완치로 간주한다고 했다. 


이전에도 여행은 많이 다녔지만 상비약 같은 건 따로 챙겨가지 않았었는데, 환자가 되고 나니 신기하게도 가장 먼저 약부터 챙기게 되었다. 내가 복용하는 여성호르몬 억제제는 24시간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매일 같은 시간에 복용해야 해서 한국에서도 매일 밤 11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자기 전에 복용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해당하는 모로코 시간은 물론 모로코까지 도착하기 전 경유지인 파리와의 시차까지 모두 계산해서 출발하기 전 알람을 줄줄이 맞추었다. 그렇다, 암 환자의 여행은 다소 불편할 뿐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


여기에 더해 사막 한가운데서 잠을 자도 춥지 않도록 침낭을 준비하고 두꺼운 옷들을 여러 벌 챙기는 것쯤이야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다음 단계에서 나는 예상치 못한 소소한 난관에 부딪혔다. 여행자 보험. 평소 여행을 떠나기 전 아무 보험사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곤 했는데 체크해야 하는 항목에 암 진단 여부가 들어있는 것이다. 아니 이런..


예전 같으면 대충 휘리릭 읽고 체크 버튼을 눌러 가입했을 여행자 보험인데 이젠 암 판정을 받은 중증질환자의 신분(?)이라 암 진단 항목에 체크를 해버리니 대부분의 보험사로부터 여행자 보험 가입을 거절당한 것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마 직접 보험사에 방문하면 괜찮았을지도 모르지만 당시 인터넷 보험사 사이트에서는 시스템 상 가입이 불가능했었다. 암 환자인 것도 서러운데 여행자 보험 가입까지 거절당하다니. 제 서러움은 누가 달래줍니까.


여러 보험사 사이트에 들어갔다 거절당하기를 수 차례, 가까스로 한 보험사에서 병원비 보장 등을 제외하는 조건으로 인터넷으로도 가입을 시켜주는 곳을 발견해서 가입을 '이루어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충성하겠습니다(실제로 나는 그 이후로도 그 보험사를 통해서만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 쉬운 여행자 보험 하나 드는데 이렇게 심장이 쫄린 경험을 다 해보다니, 암 환자의 여행 준비는 녹록지 않구나.


하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약간의 좌절, 그로 인한 심리적 위축, 물리적인 소소한 번거로움. 이런 요소들만 극복할 수 있다면 암 환자도 충분히 아프리카에 갈 수 있다. 나 원래 겁 없는 사람이야! 진짜 모로코로 떠난다!


모로코야, 어린왕자야 기다려 내가 간다!


작가의 이전글 암 환자의 모로코 여행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