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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풋 Aug 07. 2023

수술 5개월 후 모로코에 가는 사람
(1)

마라케시와 어린왕자의 사하라 사막

은혜로우신 보험 업체를 등에 업고 17시간의 비행을 거쳐 무사히 모로코에 도착!


7박 9일의 길지 않은 일정이라 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모로코의 수도 라바트(Rabat)에 도착해 마라케시(Marrakech)로, 대망의 어린왕자를 만날 사막 투어를 위해 사하라 사막이 있는 메르주가(Merzouga)를 향해 장장 13시간을 버스로 이동.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베이스 캠프에서 1박을 한 후 페즈(Fes)에 잠시 들르고 쉐프샤우엔(Chefchaouen)까지 갔다가 수도 라바트로 돌아오는 제법 타이트한 일정이었다.


나는 이 일정을 별 탈 없이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두 번째 수술 후 5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떠나는 여행이다. 아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면역력이 떨어져 병에 걸려 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자체가 몸에 부담으로 작용해 다시 면역력이 떨어지는 뫼비우스 띠의 위에 놓여지게 된다. 충분히 쉬고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하여 면역력을 어떻게든 끌어 올리는 것만이 이 가혹한 뫼비우스의 띠를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일테지만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여행을 와 버렸다. 나에게는 여행이 가장 큰 치료이자 행복일테니. 



<인디 핑크의 도시 마라케시(Marrakech)>

최근 모 예능 프로그램 에도 등장한 모로코의 마라케시. 도시 전체가 인디핑크 색이었던 마라케시는 복잡하고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방송에도 등장했던 제마 엘프나(Jemma el-Fna)광장의 야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복잡했고 호객꾼들로 붐볐다. 내가 아니었으면 아프리카 대륙 같은 곳엔 스스로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H와,  갓(?) 유방암 환자가 된 나의 상황을 감안하여 우리의 이번 여행의 모토는 '즐기되 위험을 무릅쓰거나 무리하지는 말자'였다. 우리는 호객꾼의 접근이 피곤하면 카페에서 쉬어 갔고 위험하지 않도록 일찍 숙소에 들어 저녁 시간을 수다로 보냈다. 



<어린왕자의 사하라 사막>

모로코 여행 일정 중 사막에서의 하룻밤보다 '현실적'으로 더 걱정되었던 것은 사실 마라케시에서 메르주가까지의 버스 이동이었다. 물론 중간에 휴게소에서 밥도 먹고 쉬어간다고는 하지만 태어나서 버스를 13시간 타보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버스 후기를 검색해보니 어떤 버스의 컨디션에 당첨되는지에 따라 극과 극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 같았다. 비교적 쾌적한 신식 버스를 타게 되면 지루해서 그렇지 그럭저럭 탈만 한데, 구식의 흔들림이 많은 버스를 탄 여행자의 후기를 보니 같이 탄 외국인이 심하게 멀미를 해서 버스 안에서 토한 광경을 목격했다며 멀미약과 비닐봉지를 꼭 챙겨가라는 후기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멀미는 물론 평소 장 운동이 매우 활발한 편인데, 버스 안에서 갑자기 그 분(?)이 강림하시게 되면 얼굴을 가리고 쭈뼛쭈뼛 여행객들 사이를 헤치고 운전석으로 걸어가 기사님께 개미만한 목소리로 '아무 풀숲에서 잠깐 세워주세요'라고 말을 해야하나 상상을 하며 혹시 모를 수치스러움에 대한 걱정에 휩싸였다. 


일찌감치 귀 밑에 멀미 방지 패치를 붙이고 비장하게 버스를 기다렸는데 웬걸, 버스는 생각보다 크고 에어컨도 잘 나오는 신식 버스였다. 구불구불한 모로코의 산길과 약간의 오프 로드도 큰 흔들림 없이 잘 통과하는 걸 확인하고 무언가를 먹어도 괜찮을 듯 싶어 마라케시 숙소에서 체크아웃할 때 숙소 주인 아주머니가 싸주신 치즈 샌드위치도 별 탈 없이 잘 먹었다. 그렇지, 몸이 약하게 태어난 것만 제외하면 나는 꽤 운이 좋은 사람이었지. 생각보다 쉽게 긴장을 풀고 자다 깨다 바깥의 풍경을 구경하다 BTS의 엄청난 팬인 H의 이야기도 들으며 13시간을 수월하게 보냈다. 그리고 칠흙같이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메르주가에 도착했다. 중증질환자의 신분으로 기특하게도 사하라 사막의 관문까지 잘 왔구나! 


다음 날, 일몰 시간에 맞춰 우리는 낙타를 타고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베이스 캠프로 출발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낙타를 타고 들어가 우리는 사하라 사막 한 가운데에 던져졌다. 바람에 따라 시시각각 모양이 변하는 모래 언덕 위에서 일몰을 바라보며, 나는 이 곳에 불시착 했을 생텍쥐페리와 지구별에 잠시 여행을 온 어린왕자,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여우와 뱀을 상상했다(그렇다, 나는 변태이다).  아무 소음도 없는 사막의 일몰을 응시하고 있자니 묘하게 차분해져 H와 나는 한동안 말 없이 지는 해를 바라 보았다. 마치 다른 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린왕자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사하라 사막의 일출(좌)과 일몰(우). 안녕 어린왕자야. 지금쯤 어린왕자는 어느 별을 여행하고 있을까.

사하라 사막의 풍경 하나로 한국에서 모로코까지의 17시간, 마라케시에서 사하라까지의 13시간의 육신이 겪은 수고로움은 이미 잊은지 오래였고, 어린왕자를 품은 사하라 사막은 마음 속에 이전보다 더 특별한 장소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린왕자의 별에 사는 장미가 세상에 하나 뿐인 특별한 장미인 것처럼.


밤이 되자 사막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그렇게 많은 별을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우리는 미리 다운 받아 온 별자리 어플을 켜고 별자리를 찾아내고 어린이들처럼 키득대며 사막 투어를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아쉬웠겠냐면서 우리들의 결정을 칭찬했다. 나도 스스로를 칭찬했다. 주저하지 않길 잘했다. 용기 내길 참 잘했다. 


별안간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암 환자가 되고 두 번의 수술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졌던 자신감은 이렇게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다. 




나의 침대에 놓인 좋아하는 것 컬렉션들. 가운데 빨간 모래가 사하라 사막에서 가져온 모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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