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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샘 Nov 03. 2019

왜 "82년생" 김지영 씨는 유독 우울할까?

그녀의 비교 대상은 엄마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80년대 생 엄마들이 왜 힘든가요? 50,60년대 생 엄마들이라면 또 몰라.”

개봉 전부터 이미 영화 <조커>를 뛰어넘는 문제작이었던 <82년생 김지영>에게 쏟아지는 주요 혹평 중 하나다. 나는 3년 전에 김지영을 책으로 만났고, 이번에는 개봉 첫날 남편과 함께 김지영을 다시 만났다. 남편과 영화의 러닝 타임보다 더 긴 대화를 하고, 이 영화에 대한 반감들을 찬찬히 살펴본 덕에 ‘82년생 김지영’을 뒤덮고 있는 무기력과 우울을 좀 더 깊게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게, 김지영 ‘육아는 장비 빨’ 이라며 각종 육아 아이템들을 동원해 육아하고, 집안일도 로봇이나 빨래 건조기 같은 새로운 가전들로 점점 대체되고, 장 볼 필요도 없이 인터넷으로 주문만 하면 다음날 즉시 도착하는 시대에 살면서 왜 우울한 걸까?  

‘김지영’을 자처하는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이 육아, 시댁, 일 등등의 문제로 차별받는다 여기고 힘들어하는 것은 비교 대상이 '엄마 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 처지와 비교하는 것은 바로 '내가 그리던 여성상'이다. 80년대 생 여성인 나는 학교에서 '여자도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고 배웠다. 이는 영화에서도 꾸준히 언급된다. 어린 김지영이 언니와 함께 세계지도를 보면서 이 세계를 다 돌아다닐 수 있을 거란 기대, 글을 려하게 쓰는 능력으로 계속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의 소망이 말이다.

내가 여자 중학교에 재학 중인 시절, 교실 뒤편에는 학급 친구들의 장래희망을 적어 붙여 놓는 공간이 있었다. 게시판에 장래희망을 써놓기 전, 나는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조사하는 유인물에 딱 한 친구만이 장래희망을 ‘전업주부’라고 적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그 친구를 불러 놓고 말씀하셨단다.
“주부는 직업이 아니야. 그러니 다른 장래 희망을 적어보는 게 어떻겠니?”
친구는 고민하다가 직업을 결국 ‘교사’로 고쳤다. 그랬다. 우리 세대에게 주부는 직업이 아니라 역할일 뿐이었다. 왜냐하면 여자도 공부하여 어엿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으니까. 학교에서도 우리에게 이런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려주었다.   

물론 정규 교육 과정에서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임신이 가능한 몸이라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 중 여자 몸에 일어나는 구체적인 변화와 고통, 모든 시간과 자원, 체력을 투입해야 하는 육아의 고단함을 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결국 일과 육아 중 양자택일해야 되거나 두 가지 모두를 취하려면 또 다른 여성(친정 엄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의 희생이 필요한 처지에 내몰린 여성들을 둘러싼 사회 구조적인 문제 따위는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또 학교에서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다. 학교에서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더니 막상 사회에서는 '잠재적 엄마'라는 이유만으로도 암묵적으로 여성들을 채용이나 주요직에서 배제한다는 것. 꽤 많은 여자들은 이런 분위기에서 자아실현의 패기보다는 열패감을 더 쉽게 습득한다. 그래서 적은 급여라도 꾸준히 벌 수 있는 걸로 만족하거나 적성은 크게 고려 않고 '여자에게 좋은 직업'을 택하거나 '전업 맘'이 되는 것을 택한다.

전업 맘 중 '육아가 돈 버는 것보다 더 힘들지.'라는 말 뿐인 치하에 기세 등등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남편이 가져다주는 돈으로 논다, 낮에 어린이집에 애들 보내 놓고 브런치 먹고 수다 떤다는 등 사람들의 멸시에 위축되고, 본인 스스로도 자존감을 쉽게 갖지 못한다. 왜나 하면 우리는 분명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여학생들로 취급받았고, 대학 혹은 그 이상의 교육도 받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과 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보다는 직업인으로서 경제활동을 하고, 그 성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거라고 15년 동안 배웠다.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라 가라’는 김지영 아빠의 말엄마는 ‘너 얌전히 살지 말고 나 대, 막 나대!’라고 일갈하는 것처럼 엄마 세대도 딸들이 경제력을 가진 직인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런데 종국엔 자식들 뒤치다꺼리하다가 늙어간 엄마의 삶과 내 삶의 궤도가 다를 바 없는 자신을 마주하면 가슴에 멍이 드는 것이다. 가르침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사회적 인식과 제도는 여전히 결혼한 여자들을 집 안에 주저앉다. 영화 속 김지영이 겪는 고통과 많은 여자들이 육아를 하며 겪는 산후우울증도 결코 이 배경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일러스트 출처: Phan Phan 작가


아이를 키우면서 일도 병행하는 여자는 사정이 좀 더 나을까? 이 영화에 앞서 올여름 개봉한 윤가은 감독의 영화 <우리 집> 에선 초등학생 주인공 ‘하나’의 부모님은 매일 아이 앞에서 서로 윽박지르며 싸운다. 부부의 대사에 귀 기울여보면 하나 엄마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맞벌이를 하지만 가사와 양육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되는 상황이 불만이다.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 딸 하나가 직접 요리 해 상차림을 하면 엄마는 ‘쓸데없는 부엌일’ 하지 말라며 야단치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녀는 가사 노동에 대한 가치를 높게 보지 않는다. 여성인 나조차도 부수적이고 허드렛일로 여겨지는 그 일들이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이 되어 그녀를 옥죄는 것이다.


엄마는 위대하다.’라는 뒷면에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집에서 애나 보며 노는 여자’ 혹은 ‘가사와 육아와 돈벌이까지 해야 하는 엄마’라는 그늘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김지영처럼 우울한 엄마나 <우리집> 하나 엄마처럼 불행하고 싸우는 부부들이 점점 늘어만 갈 것이다.   


영화 <우리집> 에선 사이가 좋지 못한 부모 때문에 끊임없이 상처받는 하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아 육아를 해본 적 없는 여성이다. 많은 김지영 씨와 나는 같은 성별이지만 일상의 모습이나 고민거리 등은 무척 다르다. 그렇지만 그녀의 삶은 나와 아주 근접한 도처에 있는 이야기들이다. 오랜 세월 꾸준히 정을 통한 친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바로 옆에서 매일 밥을 먹고 이야기하는 직장 동료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영락없이 나의 일이 될 수 있던 이야기이다. 김지영이 느끼는 삶의 버거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결국 출산하지 않기로 한 나와 그녀의 삶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


내면 깊은 이야기를 토로하는 이들에게 현재 나의 일상과 영 동떨어진 얘기란 이유만으로 공감이 안 된다 시큰둥하게 반응하거나 ‘너만 힘든 거 아냐, 사는 거 누구나 다 힘들어.’라는 말로 그들의 입을 막는 일은 죽어도 못하겠다. 그건 내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니까 말이다.


그게 누구든 김지영이 바로 나라고 공감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그녀의 감정을 쉽게 폄하하거나 묵살해선 안 된다. 그게 사람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이미지출처

작가이름: Phan Phan

브런치: https://brunch.co.kr/@phanphan

인스타그램:@Phan.p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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