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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JIN Feb 28. 2022

소도시에서 일하고 산다는 건 현실이야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눕기까지


소도시에 살고 있다 하면 많은 사람들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떠올릴지 모른다. 

리틀 포레스트를 한국어로 해석해보면 '작은 숲'이라는 뜻이다.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는 '리틀 시티'다. 

따라서 소도시에서 리틀 포레스트를 상상하지 말지어다.


소도시가 어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농촌지역이 아닌 원도심이라고 불리는 '도심'이다. 옛날에는 지나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히며 다녔을 정도로 북적였던 원도심, 현재는 많은 인적자원과 물적 자원들이 신도심으로 넘어가서 사람이 적고 인프라가 적다. 큰 도심만큼 뭐가 많진 않다. 하지만 있을 건 있는 동네에서 나는 살고 있다.

 

로컬, 지역살이에 대한 환상을 품은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려주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 눕기까지 나의 프라이빗한 일상을 공유하고자 한다. 가능한 객관적인 사실만 기록하고 싶으나 지극히 나의 주관이 담긴 글이 될 듯하다. 


<2021년 8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7시, 알람 소리에 정신이 살짝 깬다.

7시 3분, 두 번째 알람 소리에 몸을 움직여본다.

7시 5분, 정신만 깬 상태로 얼마나 더 잘 수 있을까 생각하며 나는 지금 자고 있는 게 아니라 명상을 하고 있는 거라며 합리화를 하다 다시 잠든다.

발작과 함께 순간 '몇 시지?!' 하며 벌떡 깨어나 시계를 본다. 7시 20분. 다행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밍기적 일어나 침대를 정리한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음악을 튼다. 아침에는 너무 시끄럽지 않은, 자다 일어났을 때 그 예민하고 짜증남을 천천히 풀어줄 잔잔한 노래를 듣는다.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고 아침을 준비한다.

 

 요즘 아침을 참 잘 챙겨 먹는다. 아침을 잘 챙겨 먹어야지 회사 가서도 열심히 힘내서 일하니깐! 배고프면 너무 화가 나서 일을 할 수가 없다. 아침은 간단하게 시리얼에 우유 or 두유나 빵에 크림치즈, 시간이 나면 계란 스크램블을 해서 먹는다. 입맛 없는 아침에 먹어도 맛있는 메뉴로 선정. 아침을 먹으면서 출근 준비를 한다. 왜냐하면 밥을 조금이나마 천천히 먹기 위한 나의 조치다.

 


 내 출근시간은 8시. 우리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대게 회사 사람들은 9시에 출근하는데, 나는 빨리 출근하고 빨리 퇴근해서 저녁에는 나를 위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 8시에 출근하여 5시에 퇴근한다.


 나의 집은 회사까지는 걸어서 약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다. 

7시 50분, 집을 나선다. 해가 빨리 떠서 출근길이 아주 밝다. 회사를 갈 때는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요즘은 날이 좋아서 자전거를 자주 탄다. 자전거를 타기 전 음악을 세팅하고 (요즘 즐겨 듣는 노래 : 안녕 by 조이) 페달을 밟는다.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천이 하나 있는데, 그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정말 기분이 째질 듯이 좋다. 아침부터 노래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는 나는 마치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을 연출하며 세상 밝고 귀여운 뮤직비디오의 여주인공이 된다. 파란 하늘, 초록 풀들, 옆에는 졸졸 흐르는 천, 지나가는 고양이들, 길에 사람은 없다. 진짜 최고다. 이게 내가 소도시에 가지고 있던 환상인데, 아침 출근길, 이 순간만큼은 나의 환상이 현실이 되곤 한다. 


 회사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무실이 위치한 2층으로 올라간다. 역시나 아무도 없다. 사무실로 들어가자마자 실내화로 갈아 신고(실내화 실외화 구분하는 사람) 컴퓨터를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오늘도 역시나 화창하다. 자리에 앉아 일을 해볼까 하는데 오늘은 너무 날이 좋아서 나의 발걸음은 옥상으로 향한다. 사무실 건물에 루프탑이 있다. 잠도 깰 겸 오늘은 루프탑에서 일을 시작해본다. 

 오전에는 대게 컴퓨터로 작업하는 일이 많다. 가만히 앉아서 타닥타닥... 타자를 두들긴다. 음악을 흥얼거리다. 몸을 흔들어보곤 한다. 앞에 앉아있는 동료와 눈이 마주쳐 웃다 다시 일에 집중한다. 그러길 반복하다...


 점심시간이다. 점심은 동료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하고 집에 가서 밥을 먹기도 한다. 오늘 메뉴는 날도 좋으니 회사 동료와 함께 루프탑 런치 파티다. 되게 아메리칸스럽게 차려본 밥상. 각자 집에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가져와서 먹는 점심이다. 매일 이렇게 먹진 않는다는 점. 날이 좋아서 :-) 바깥공기도 쐐며 가끔은 이렇게 분위기도 내본다. 

  

루프탑에서 먹는 점심

 다시 일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프로그램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고, 영상 관련 미팅을 진행한다. 다시 사무실로 와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한 후 정신 차려보면 퇴근시간. 오후 5시. 퇴근을 해본다.


사실 퇴근시간이 되어도 퇴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 일지도.  집에 가서 할 일이 없으면 회사에서 더 일하다 가는 거고, 회사 사람 = 마을 사람이기 때문에 함께 저녁을 먹거나, 저녁에 행사가 있는 경우에는 퇴근이라는 건 없다. 꼭 일과 생활을 구분지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리고 퇴근을 해도 함께 하는 사람은 회사 사람이기도 하여 구분을 지을 수가 없기도 한 상황. 그게 크게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나에겐 더 잘 맞는 환경이기도 하다.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간단히 차려먹는다. 저녁시간은 나의 자유시간. 오늘은 저녁에 달리기 모임이 있어 운동을 하고 집에 들어와서 휴식을 취한다. 내일의 나를 위해. 


 보통 저녁에는 마을 내 다양한 커뮤니티들이 많아서 관심사에 따라 모임을 가는데, 나는 주 2회 저녁에 달리기 모임에 나간다. 함께 달린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지. 본가에 살 때는 동네 친구가 없어서 항상 혼자 강변으로 나가 뛰곤 했다. 근데 여기는 함께 뛸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운동할 맛 난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뛰니 힘든지도 잘 모르겠고, 운동하는데 시간도 빨리 가고 즐겁다 :-) 요즘 내 인생의 낙이라고나 할까? 요가도 하고 있어 달리기와 번갈아 가며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하려고 한다. 요가도 요즘 재미가 붙어서 가는 날이 즐겁다. 그놈의 후굴은 허리가 뽀사질 거 같지만 뽀사지진 않더라 ^^
 운동 후에는 동네 청년들과 놀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카톡으로 수다를 떨거나 넷플릭스를 보거나 이렇게 글을 쓰곤 한다. 스마트폰에 빠져들어 SNS와 유튜브를 넘나들며 온라인 콘텐츠들만 보다 자는 날도 있다. 매일 생산성 있는 일을 하고자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다. 


이렇게 하루 일과가 끝난다. 


 대도시 생활과 크게 다를 건 없다. 사람 사는 게 그게 그거지 하면서도, 소도시라서 즐길 수 있는 것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출퇴근 시간이 거의 없다는 점. 걸어서 10분, 길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이 항상 아까웠던 나는 길이 아닌 내 방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 즉 나를 위한 시간이 늘어난 것에 큰 만족감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느낀다. 이웃들과 내외하지 않고 길에서 인사하고 이웃의 집에 가서 함께 식사를 하고 놀고, 각자의 관심사로 모인 마을 커뮤니티에서 소통하며 지내는 삶. 이건 우리 마을이 특별해서 일 수도 있고 :-)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내가 너무 좋은 쪽으로만 이야기를 한 건 아닐까?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소도시에 대한 더 큰 환상을 심어주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긴 한다. 나는 소도시의 삶에 만족하기 때문에 좋은 말만 나오는 거일 수도 있다. 다음에는 내가 소도시에 살면서 느낀 다소 불편한 이야기들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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