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 엽형 Jan 29. 2020

포드 v 페라리 주인공이 마케터?

[색다른 시선 X 뒷Book치는 영화 리뷰] 포드 v 페라리

포드 v 페라리 주인공이 마케터?


-영화 '포드 v 페라리' 리뷰-


 포드 v 페라리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캐롤 쉘비와 켄 마일스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이 판을 만들어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다. ‘리 아이아코카’ 영화가 워낙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 사람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리 아이이코카는 영화 초반부에 회의실에서 빔 프로젝터로 포드의 회장에게 비키니 입은 여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시대가 변했고, 지금 포드에게 필요한 이미지는 ‘승리’라고 말했던 사람이다. 항상 마케팅을 공부하고, 생각하는 필자의 관점에서는 초반부의 켄 마일스와 캐롤 쉘비보다도 이 사람이 더 눈에 들어왔고, 이 사람을 중심으로 영화를 다시 한번 봤다.


 앞서 말했듯이 리 아이아코카는 당시 매출 미국 차 시장에서 조금 주춤했음에도 여전히 괜찮은 매출을 올리고 있던 포드의 이미지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포드 회장이 새로운 방안을 가져오라고 했으나, 완전히 틀을 깨버리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1위의 위치에서, 도전하고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하게 말할 수 있으나, 실제로 내부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야후, 모토로라와 같은 수많은 기업들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며, 당시 포드도 그 발언이 없었더라면, 지금 찾기 어려운 브랜드가 됐을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보다도 더 잘 나가는 기업이 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심지어 이때 제시한 이미지도 당시 포드와는 정 반대의 위치에 있는 이미지. ‘승리’ 당시의 포드는 저가형 대량생산의 브랜드였고, 페라리는 현재와 같이 제일 섹시한 차 중에 하나였다. 이를 지금으로 따져본다면, 삼성전자에서 팀장이 회장한테 갤럭시도 아이폰의 이미지로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이폰은 단순 전자기기에서 명품으로 브랜딩을 성공하여, 소위 팬들 사이에서의 이미지가 다른 스마트폰과 차원이 다른 스마트폰으로 여겨진다. 갤럭시에게도 명품의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하는 것과 그 황당함은 비슷했을 수도 있다. (물론 근거는 매우 다르며, 타당성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리 아이아코카는 그런 황당한 제시를 하고, 타당한 근거를 댔으며, 방법 또한 제시했다.


 그 첫 번째 방법은 페라리를 인수하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덜컥 인수를 제안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포드에게 필요한 것이 레이싱에서 우승하는 것이라는 것. 그 이유를 모두 제시한 후에, 비용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이 나오자마자, 바로 그것을 해결해줄 수 있는 페라리 인수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발표의 정석, 설득의 정석이었다. 당시 승리라는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것이 페라리였고, 페라리는 파산했기 때문에 가능한 해결책이었지만, 당시 그것을 알고 기회를 발견한 것 또한 뛰어난 마케터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이디어와 실행은 다른 법이다. 아이디어상으로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자본은 충분했으며, 페라리와의 이해관계도 일치하는 줄 알았으나, 실패했다. 정신적인 가치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실에서의 아이디어가 실행에 옮겨질 때 어려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 같았다. 특히 많은 초창기 스타트업이 책상 위에서 고심하여 훌륭한 아이디어를 들고 세상에 나오지만,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첫 번째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포드도 르망 24에서는 스타트업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 첫 번째 발걸음부터 실패한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수가 있었다. 물론 이것은 포드가 먼저 말했지만. 애초에 리 아이아코카가 처음 제시한 것도 페라리 인수가 아니라 포드가 레이싱에서 이기는 것이었으니 ‘염두에 두지 않았었을까?’ 생각한다. 최근에 작가한테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프로 작가들은 갑자기 스토리가 떠오르면, 거기서 핵심이 되는 소재들만 꺼내서 그것들로 재 조합을 끊임없이 한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피드백을 거쳐서 최종 스토리가 탄생한다. 그러나 초보 아마추어 작가들을 보면 머릿속에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만을 고집하고, 세부적인 것들만 고치려고 하는데, 이것이 초보 아마추어 작가들에게서 좋은 스토리가 나오지 않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고 들었다. 기획과 마케팅도 같다고 본다. 목적이나 콘셉은 유지되어야 할 것이 맞으나, 방법은 다양하고, 그 방법을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반의 리 아이아코카의 좋은 제안과 포드의 결단력이 합쳐져서 나온 훌륭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후의 리 아이아코카는 교섭가로서의 면모만 등장한다. 특히 너드와 기업 사이를 조율하는 역할이 두드러진다. 이 영화에서는 2명의 너드가 나온다. 약간 너드한 캐롤 쉘비와 매우 너드한 켄 마일스. 아이아코카는 먼저 캐롤 쉘비와 소통을 한다. 의외로 쉽게 소통을 이어가며, 포드와 레이싱 팀 중간자 역할을 잘 해낸다. 물론 켄 마일스와의 직접적인 소통은 없으나, 캐롤이 마일스와 소통하며 어찌어찌 포드부터 마일스까지 소통이 이어진다. 물론 결과가 좋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굳이 너드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주변에서 소통이 어려운 사람과 소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는 웹페이지를 만들며, 싸우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분야가 다른 사람과 협업하는 경우에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마케터는 뛰어난 소통능력이 필요하다. 리 아이아코카는 이를 갖춘 것 같다. 초기의 캐롤 쉘비가 머스탱 발표회에서 연설하는 모습으로 알 수 있었다. 다만 소통의 결과는 조금 아쉬웠다. 신뢰의 포드가 팀원에게 신뢰가 없는 일을 한 것이었다. 


 리 아이아코카는 실제로도 뛰어난 마케터이자, 기업가였다. 머스탱은 당시 아이아코카가 기획한 것으로 경제적이면서도 빠르고 세련된 차. 당시 소비자들이 원하던 차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었다. 이 차의 한 해 목표 판매량은 10만 대였으나, 이를 훌쩍 넘어 4배인 40만 대가 팔렸다. 이 외에도, 르망 24에서 켄 마일스가 2위를 한 지 4년 후 포드의 회장에 취임했으며, 8년 후 1978년에 포드 주니어와의 갈등으로 해고됐으나, 곧 크라이슬러의 회장직을 맡았다. 이 당시 크라이슬러는 17억 달러의 적자였으나, 1984년에 24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고, 람보르기니와 지프를 인수하여 크라이슬러를 미국 자동차 회사 탑 3로 올리기까지 했다. (그 과정에서 15000명의 구조조정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실도 있다.) 마케터나 기업가가 봤을 때 이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물론 이 영화가 자본주의와 레이서로의 열정, 순수함 등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으나, 어떻게 보면 그 열정을 표출할 판을 만든 것도, 그것을 표출할 수 있도록 보수를 준 것도 모두 자본주의의 핵심인 마케터와 기업가였다. 마지막 결과와 부회장으로 나온 리오 비비는 조금 부정적이지만, 자본주의라고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란 것을 오히려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웹툰 분류의 새로운 기준(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