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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Dec 06. 2021

성격 급한 다혈질 마이크로 매니저와 일하게 됐다_2

퇴사자의 변명

 1편 이야기 : https://brunch.co.kr/@ilovesummer/106


  딱 하루. 누군가는 그 하루 동안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운명을 만나기도 한단다. 하지만 그런 로맨틱한 일은 나에게, 그것도 ‘직장인’인 나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았다. 하루 동안 누군가에게 반하기는커녕, 난 딱 하루 만에 장팀장에게 완전 질려 버렸다.


 그가 ‘박대리’라고 내 이름을 부르면 ‘아... 이번에는 또 뭔데.’ 하는 생각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그가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살짝 기분이 처졌다.


 난 장팀장이 업무를 시키는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업무를 파악할 새도 없이 그가 다다다다다 뱉어내는 말을 주워 담기에도 바빴다. 그가 뭔가 나에게 재촉할까 봐 신경 쓰이고 불안해서 일에 집중하기도 어려웠다.  심지어 영원히 이 팀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장팀장에게 이런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나 하나가 아니었다. 장팀장을 제외한 모든 팀원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어딘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다들 밥 먹을 때도 가급적 장팀장과 다른 테이블에 앉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얼마 뒤부터는 팀원들은 서로를 위해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장팀장과 한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기로 약속했고, 날이 갈수록 (장팀장을 제외한) 우리 팀의 단합력은 높아만 갔다. 장팀장 몰래 우리끼리 회식을 하기도 했고, 서로에게 이런 다짐을 받아내기도 했다.


 “다들 혹시 팀 변경 요청하거나 퇴사할 거면 미리 말하기로 약속해요.”

 “진짜 말없이 갑자기 어디 가버리기 없기. 진짜 약속. 이 상태에서 한 명 빠지면 나머지 다 죽는 거예요.”     


 그렇게 4주 정도 지났을까. 우리 팀에는 ‘성수기’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사업들의 마감이 다가오면서 성과를 내야 했고, 그 성과를 보고서에 담기 위해 허덕여야 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야 하는 시기와도 맞물려 기획 업무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 4주 동안 내가 그에 대해 파악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면, 일단 장팀장은 성격이 무척 급한 사람이었다. 마치 자신이 업무 지시를 내림과 동시에 그 과업이 마무리되길 바라는 사람 같았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김과장님, 이거 보고서 50p까지는 김과장님이 작성해주세요.”


 김과장님이 자리에서 보고서를 작성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 단체 채팅방이 울리기 시작한다.


 ‘과장님, 언제쯤 될 거 같아요?’, ‘그때 얘기했던 건 다 반영하는 거죠?’, ‘중간에 성과 부분은 작성할 수 있는 거 맞아요?’, ‘10p는 개발팀에 조금 확인해달라고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러실 거죠?’


 참고로 김과장은 연차가 꽤 된 사람이기 때문에 저런 시시콜콜한 것을 언급하지 않아도 저 정도는 알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오히려 저런 질문 때문에 진행에 지연이 생길 뿐이었다. 심지어 바로 답변을 하지 않으면, 김과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김과장님, 지금 제가 보낸 카톡 좀 확인해보시겠어요?”


 그럼 김과장이 카톡을 확인하고 답변을 하면 장팀장은 또 질문을 하고, 김과장은 또 답변을 해야 했다. 도무지 혼자 일 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몇 시간쯤 지난 뒤에는, “시간을 얼마를 드렸는데 아직 여기까지 밖에 진행이 안 된 거예요? 막히는 거 있으면 바로바로 말씀하시면서 진행하셔야죠.”라는 개드립을 날렸다.


 이처럼 성격이 급하고 온갖 일에 본인이 다 신경을 써야 한다고 믿는 장팀장은, 안타깝게 기억력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저렇게 계속 확인할 거면 본인이 확인한 내용을 기억이라도 하고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 장팀장은 늘 이런 식이었다. 


 처음 지시를 내릴 때도,

 “김과장님, 10p는 개발팀이랑 얘기할 거죠?”


 몇 시간 뒤, 

“아 근데 김과장님 그거 개발팀이랑 얘기하신다고 했나요?”


 그다음 날은

 “이거 개발팀한테 확인받은 건가요?”


 최종 제출 하기 전날에도,

 “아 맞다, 이거 개발팀이랑 얘기 한 부분 맞나요?”


 안 그래도 질문을 많이 하는데 답변을 기억도 못하는 통에 우리는 같은 파일을 몇 번씩이나 보내고 몇 번 씩이나 답변을 했다. (아니면, 그냥 우리가 못 미더워서 일부러 여러 번을 반복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우리는 늘 초조하게 일을 하면서도 신뢰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장팀장이랑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일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장팀장은 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잘한 일들을 관리하면서, 성격이 급했고, 심지어 확인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여기까지도 고구마를 먹은 것처럼 답답했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심지어 다혈질이라는 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혼자 저렇게 많은 것들을 신경 쓰면서 살다 보면 머리가 터질 것 같이 힘들 때가 있지 않겠는가?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그는 여지없이 팀원들에게 그 분노를 풀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뭐 큰 거 바랍니까!!! 그냥 시키는 거 제대로 하라는 건데!! 그게 어렵습니까?!!!!!!”

 “진짜 다들 왜 이러냐고!!!!”


 그는 그렇게 빈틈없이 사람들을 옥죄어왔다. 하지만 정말 더 큰 문제는 이 와중에 체력까지 좋다는 것이었다. 세네 달 정도 지속되는 성수기 시즌. 그는 새벽 4시쯤에 기상했다. 그 전날 밤 11~2시 정도까지는 우리한테 온갖 질문을 퍼붓고 확인해달라고 하다가 이렇게 일찍 일어나다니!


 그와 동시에 우리 팀 단톡방도 함께 기상했다.

 ‘어젯밤에 김과장님이 보낸 보고서, 이미지 다른 거 쓰면 좋을 거 같은데.’ 

 ‘박대리 그 전시회 디자인 오늘 오전 몇 시까지 받기로 했다고? 다시 확인했어? 확실히 준대?’

 ‘그리고 그 기념품 1번 투표가 제일 많이 나왔던데, 1번으로 확정해서 된 거 맞아요? 업체에 말했어요?’


 우리가 7시쯤 눈을 뜨면 단톡방에 2~30개의 저런 메시지가 쌓여 있었고, 장팀장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지금 당장 확인하라는 건 아니고 9시 전까지만 다들 확인 부탁.’


 장팀장은 출근하는 시간도 업무 시간의 연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저걸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8시쯤에는 회사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팀원들이 출근하자마자 “아침에 말했던 거 어떻게 됐어?”라고 물어볼 것이 뻔했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진행되어 있지 않으면 여지없이 그는 불호령을 시전 했다. 


 그 불호령이 무서워서, 난 어쩔 수 없이 버스에 앉아서 노트북을 펼쳤다. 그나마 버스에 앉아서 출근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장팀장의 요구에 응하는 데에 큰 지장은 없었다. (가끔 멀미가 나서 심각한 두통에 시달렸던 적은 있다.)


 하지만, 대중교통에서 앉을 수 없다거나 운전을 해서 출근하는 직원들은 그런 요구에 즉각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운전을 해야 하는 김과장의 상황은 정말 녹록지 않았다. 김과장은 카톡에 바로 답변을 하지 못할 때가 많았고, 그럴 때면 여지없이 장팀장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과장님, 지금 출근 중이시죠? 잠깐 제가 보낸 파일 확인 가능해요?”

 “아...예...지금 운전 중이라...”

 “네. 지금 파일 확인 가능하세요?”

 “네...”

 “지금 보고 계시죠? 그거 20p에는 예시 이미지 다른 거 쓰는 게 낫지 않나? 어때요?”

 “아, 네 팀장님... 20페이지요?”

 “김과장님. 지금 보고 계신 거 맞아요?”     


 장팀장은 운전 중이라는 김과장에게 계속해서 첨부 파일 얘기를 했고, 김과장은 운전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그날 김과장은 교통사고를 내게 되었다. 앞차를 들이받았고, 김과장의 100% 과실 처리가 되었다. 


 김과장 또한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당분간 통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통원치료를 위해 제시간에 퇴근을 하는 김과장을 볼 때마다 장팀장은 이런 소리를 했다.


 “아, 그러니까 김과장님 그렇게까지 확인 못할 상황이시면 말씀을 하셔야지...미련하게...내가 뭐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지금 안 그래도 다들 바쁜 상황인데...참...이렇게 가시면...”


 김과장은 씁쓸해 보였다. 그리고 결국 몇 달 뒤 퇴사를 선택했다. 꽤 좋은 회사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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