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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Jun 11. 2022

모태솔로의 소개팅 준비를 도와주게 됐다.

사진을 고르는 순간부터, 이미 소개팅은 시작됐다.

아영- "현주야, 이 사진은 어때? 얼마 전에 카페 가서 찍은 사진인데?"


 음...이 사진은 어떻냐고?

 솔직히 말하면 완전 별로다. 너무 사실적이다. 물론 사진의 기능 자체가 우리가 보는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담기 위함이었지만, 이런 사실적인 사진으로는 소개팅이 무산될 수도 있었다.


 난 아영이의 카톡 프로필 사진 수십 장을 빠르게 훑었다. 아영이는 통통한 편이었지만 실제로 보면 꽤 귀엽고 오밀조밀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장점을 부각해도 모자랄 판인데, 프사 대부분 아영이의 단점이 부각되어 있었다.


 '이 사진도 아니야. 이 사진도. 이 사진도 안 돼. 이 사진도...'


 소개팅남에게 보낼 사진을 고르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잔인한 소리 같아도, 소개팅 성사 자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진이었다. 현실이랑 약간은 다르더라도 최대한 예쁘게 나온 사진을 골라서 소개팅남에게 보내야 했다. (그렇다고 또 너무 다르면 이 또한 문제가 된다. 적당하게 현실을 빗겨간 사진이 필요하다.)


 이 순간 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해야 한다. 난 아영이와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왔고, 그래서인지 아영이의 외모를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냉철함을 유지한 채로 사진 두 장을 골랐다. 


나- "아영아, 이거 두 개 어때?"

아영- "이거 두 개? 그래!"


 내가 고른 두 장의 아영이 사진을 본 소개팅남은, 주선자(남자 쪽 주선자는 나의 거래처 동료)에게 소개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나- "아영아, 소개팅 한대. 일단 카톡 프사 다 내려. 우리가 보낸 두 장 빼고 다 내려."

아영- "사진을 내리라고? 왜?"

나- "이게 소개팅 국룰이야."


 사실 난 소개팅 국룰을 파악하고 있을 만큼 충분한 소개팅 경험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진 한 두 장을 보고 마음에 든다고 연락처를 받아간 다음에 나머지 카톡 프사를 보고 갑자기 잠수 타버리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어렵게 소개팅 결심을 한 아영이가 그런 일을 겪어선 안 될 일이었다.


 아영이의 33년 인생. 그 중 이건 두 번째 소개팅이었다.  


 그리고 아영이의 첫 번째 소개팅을 주선한 것도 나였다. 한 5년 전쯤? 당시 나는 주선자의 역할은 서로에게 연락처를 전달하는 것까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영이의 연락처를 소개팅남에게 전달한 후 그 어떤 개입도 하지 않았고, 그 소개팅은 1회성 만남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영- "현주야, 그래도 좋은 경험 했어."

나- "어땠어?"

아영- "그냥, 잘 모르겠어. 너무 떨려가지고 아무것도 기억이 잘 안나."

나- "연락 없어?"

아영- "응..."

나- "그래,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아영이에게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그 말을 하는 나조차도 그 말에 확신할 수 없었다. 28년 동안 나타나지 않은 그 좋은 사람이 도대체 언제나 나타날까? 어쨌든, 막연히 언젠간 아영이가 좋은 사람을 만나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그 뒤로 5년이 흘러버렸다.


 그 사이 나와 아영이는 33살이 되어버렸고, 이로써 아영이는 33년째 모태솔로 생활을 영위하게 되었다. 33년. 이제는 심각했다. 그 전에는 잘만 연애하던 사람들도 서른이 넘으면 사람 만날 곳이 없어서 연애 시작이 어렵다고 아우성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모태솔로인 아영이가 스스로 연애를 시작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내가 아영이의 소개팅을 돕기로 했다. 그것도 무지 적극적으로. 어떻게든 올해는 아영이가 연애를 시작하게 하는 게, 올해 내 미션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사이, 아영이에게 카톡이 왔다.


 아영- "근데 현주야, 남자랑 있을 때 무슨 말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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