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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Jun 19. 2022

남자랑 둘이 있을 때는 무슨 말을 해야 돼?

모태솔로의 소개팅 준비

아영- "근데 현주야, 남자랑 둘이 있을 때 무슨 말 해야 돼?"


 생각지도 못했던 아영이의 질문. 그 질문은 나를 생각에 잠기게 했다.


 내가 남자랑 둘이 있을 때 무슨 얘기를 했더라? 무척 얘기를 편하게 했던 것 같기는 한데...

 (난 평소 남자든 여자든 내가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과는 무슨 얘기든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 궁금한 것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래서 특별히 저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 "글쎄...? 지금까지 너는 남자랑 둘이 있을 때 무슨 말을 했는데?"

아영- "나 남자랑 딱히 둘이 있어본 적이 거의 없는데? 그때 네가 소개팅 시켜줬을 때 한 번 남자랑 둘만 있었는데 거의 말 못 했어..."


 남자랑 딱히 둘이 있어본 적이 거의 없다는 아영이의 답변에 나는 절로 숙연해졌다.

 맞다... 내 친구 모태솔로였지... 모태솔로도 그냥 모태솔로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니 아영이는 성인이 된 이후에 그 흔한 썸도 한 번 없었고, 연락하고 지내는 남사친도 하나 없었다.


아영- "근데 그럼 소개팅남은 나한테 카톡으로 연락하는 거야? 그럼 뭐 말해야 돼? 벌써 떨려..."


 아영이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태초의 상태에 가까웠다. 소개팅을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이상, 이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난 이미 주선자를 통해 아영이의 연락처를 전달했고, 아영이 말대로 곧 소개팅남이 카톡으로 아영이에게 연락을 해올 터였다.


 떨린다는 아영이를 보고 있자니 내 심장이 더 쿵쾅거렸다.


 나- "일단 카톡 오면 그냥 장소랑 시간 잡고 간단하게 인사하고 더 이상 얘기하지 마. 너 말 많은 편도 아닌데, 괜히 얘기 많이 하면 만나서 겁나 어색할 거 같아."


 아영- "응! 그럼 만나서는 무슨 얘기 하지?"


 나- "음... 그냥 보통 사람들 처음 만나서 하는 얘기들? 대학교에서 전공 뭐였는지, 회사 어떤지, 회사에서 무슨 일 하는지, 아 맞다! 요즘은 mbti 얘기도 많이 하니까, mbti도 좀 물어보면서 그걸로 얘기 한참 또 할 수 있겠다. 아, 코로나 걸렸었는지, 백신 뭐 맞았는지 이런 얘기들도 많이 했으니까 그런 얘기도 좀 하고, 요즘 개봉한 영화들 중에 보고 싶은 것들 있는지, 취미가 뭔지, 어디 사는지, 거기 맛집 뭐 있는지 그런 거 얘기하면 몇 시간은 뚝딱 아닐까?"


 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영이가 나눌만한 대화 주제들을 쏟아냈다. 아영이는 내가 하는 말들을 마치 가이드처럼 여기며 경청했다.


 나- "아영아, 그리고 주선자는 너 연애경험 별로 없는 거 알아. 그래서 소개팅하는 남자도 들었을 거야. 근데 모태솔로라고까지는 얘기 안 했어."

 아영- "왜? 연애경험 유무가 중요한가? 왜 모태솔로인 거 얘기 안 했어?"


 연애경험의 유무가 중요하냐고?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33살쯤 되면, 보통의 사람들은 적어도 몇 번 이상의 연애를 경험한다. 어느 정도 관계를 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이면 1~2년 이상의 장기 연애도 몇 번쯤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 상대방이 지금까지 어떤 연애를 해왔는지도 꽤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수차례 연애경험이 있어도 한 두 달 만나고 헤어진 거라면 도대체 지금까지 왜 그런 연애만 했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생각하게 될 것 같고, 딱 한 명의 상대와 10년 이상의 연애를 했던 사람이라면 그건 부담스러울 것 같다. 이런 여러 케이스들 중에서 내가 가장 기피하게 되는 대상은 모태솔로였다.


 지금까지 호감을 갖게  사람들 중에서 모태솔로였던 사람은  명도 없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모태솔로라는 것은 뭔가 내가 해결할  없는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내가 보기에 아영이에게 여자 친구로서 결함이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아영이가 모태솔로라는 말을 듣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아영이를 편견으로 바라보게 될 확률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굳이 모태솔로인걸 처음부터 얘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서..."

아영- "그럼 연애 얘기 나오면 어떻게 해?"

나- "그냥 연애 안 한지 오래됐다고... 경험이 많진 않다고... 이 정도만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영- "오! 그러는 게 좋겠다! 오키오키!"


 그러는 사이 소개팅남이 카톡으로 아영이에게 인사를 건네 왔다. 여기에다가 뭐라고 답장을 하면 좋을지 귀엽게 동동거리는 아영이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영이는 도대체 왜 모태솔로인 걸까?

매거진의 이전글 모태솔로의 소개팅 준비를 도와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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