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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Aug 02. 2022

오랜만에 화장 한 할머니를 봤다.

글쓰기 좋은 주제 152

 오랜만에 화장 한 할머니를 봤다. 어쩌면 오랜만이 아니라 거의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정말 처음인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모습 절반쯤은 치매로 기억이 온전치 못한 모습이다. 나머지 절반은 작은 몸으로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는 모습, 그리고 힘든 데 폐지 줍는 일 그만하라고 화내는 아빠와 다투는 모습이다.


 할머니를 보면 가난도 습관처럼 몸에 베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빠가 아무리 용돈을 드려도 할머니는 그 돈을 쓰지 못했고, 폐지를 주으러 다니셨다.


 그런 할머니가 화장이라니. 파운데이션 혹은 파우더라는 표현보다 분이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뭔가가 얼굴에 곱게 펴 발려져 있었다. 할머니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는 붉은색 립스틱도 입술 위에 곱게 펴 발려져 있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고운 화장을 했는데도 할머니는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꽁꽁 싸매진 채 차가워 보였다.


 할머니가 입고 있는 저 옷이 적삼이라는 건가? 그전에 그 누구도 입지 않았던 적삼이라 그런지 꽤 빳빳해 보였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새 옷 한 번 사지 않더니, 죽고 나서야 새 옷을 입었다.


 할머니가 저런 빳빳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어울리지 않게 발려진 립스틱도 생경했다.


 셋째 고모는 할머니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셋째 고모는 할머니 살아생전 할머니를 보러 온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저렇게 눈물이 많이 나는 모양이었다.


 나는 아빠의 표정을 살폈다. 아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뭔가 꾹 하고 참는 것 같았다.


 셋째 고모는 할머니를 부여잡고 계속 울었다.

"우리 엄마... 이렇게 고생만 하고 가서 어떡해... 고생만 하다가 가네..."


 할머니는 엄청 멋진 사람이었다. 자신이 공부 못한 게 한이라면서, 대학생들 공부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러더니 의대에 시신 기증을 하고 싶으시다고 살아생전 자식들을     설득하셨다. 결국 사망  의대에 시신을 기증 한다는 기증 서명을 하셨다.


 죽어서도 가치 있을 가라고 좋아하셨다. 난 그게 멋졌다. 근데 셋째 고모 생각은 달랐나 보다. 고생만 한 우리 엄마 죽어서도 고생시키기 싫다나?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이미 서약까지 했던 일을 없던 일로 만들었다.


 할머니는 죽어서도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됐다.


당근을 통해 글쓰기 모임을 모집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일곱 분 정도가 모여서, 글쓰기 좋은 주제 642라는 책에서, 원하는 주제를 골라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번 주 제가 고른 주제는 <당신이 장례식장에서 본 시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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