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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딸기체리수박 May 18. 2024

얘들아, 썸 탈 때 무슨 장난쳐? by 모태솔로

AS까지 해드립니다.

 첫 번째 만남이 끝나고, 아영이는 지훈 님과 지속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그다음에도 한 번 더 만났다. 이쯤 되면 내 역할은 정말 끝난 것 같았다. 


 아무리 아영이가 모태솔로라고 하더라도 여기까지 왔으면 고지가 멀지 않았으니까. 다시 말하지만, 나도 소개팅 경험이 거의 없어서 소개팅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보통 소개팅에서 세 번 정도 만나면 남자 쪽에서 사귀자는 말을 한다고 들었다. 두 번 정도 만났으니까 이제 정말 다 왔다고 할 수 있겠지? 이제 정말 내가 개입을 할 필요는 없겠지?


 첫 만남을 위해 옷을 같이 골라주고, 첫 만남에 할 만한 대화 주제를 생각해 주고, 이것저것 조언을 했으니. 그렇게 흐뭇하면서도 은근히 섭섭한 애매한 감정이 들 때쯤, 아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현주야, 근데 썸 탈 때는 무슨 장난쳐?’     


 안심하고 있던 나는 그 카톡 하나에 또 웃음이 터졌다. 썸 탈 때 치는 장난들이 정해져 있었나?      


 나 - 썸 탈 때? 왜?

 아영 - 나랑 이 사람이랑 하는 대화가 너무 재미가 없는 것 같아. 재미있게 대화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

 나 - 지금 무슨 얘기하고 있는데? 

    

 내 질문에 아영은 대화를 캡처해서 내게 보내왔다.    

 

 지훈 - 오늘도 출근 중이신가요?

 아영 - 네! 지훈 씨도 출근 중이세요?

 지훈 - 네! 오늘 날씨가 좋네요!

 아영 - 네! 그러게요!

  .....(중략)....

 지훈 - 오늘 점심은 뭐 드세요?

 아영 - 전 오늘 불고기 먹어요! 지훈 씨는요?

 지훈 - 네, 저는 오늘 회사 식당이요!

  .....(중략)....

 지훈 -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아영 - 감사해요! 지훈 씨도요!     


 이 대 화를 보고 챗gpt가 떠오르는 건 나뿐인가?

챗gpt와의 대화

 이게 딱 내가 처음 대화를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챗gpt랑 이야기할 때가 오히려 더 사람이랑 하는 대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영이과 지훈 님이 며칠 동안 나눴던 대화가 거의 이런 패턴이었다. 영어 회화 시간에나 할 법한, 날씨 질문, 식사 질문. 


 나 - 무척 재미가 없어 보이긴 하는데, 너도 재미없어? 

 아영 - 어... 


 위기다. 하긴 저건 누가 봐도 재미가 없는 대화였다. 


 아영 - 대화를 더 재미있게 하고 싶어. 그래서 ‘썸남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 ‘썸 탈 때 지켜야 하는 것들’ 이런 거 검색해 봤는데, 실질적인 조언이 없어. 그래서 주변 언니들한테 물어보고 있고, 너한테도 물어보는 거야.

 나 - 주변 언니들은 뭐래?

 아영 - 안 그래도 어떤 언니가 비법을 전수해 줬거든? 썸 탈 때 하기 좋은 그런 장난들?

 나 - 뭔데?


 그 비법. 나도 궁금했다.      


 그 비법이라 함은, 

 첫 번째, 좋아할 거 같은 술을 사서 선물로 주고, 엄청 어렵게 구한 거라는 말을 한다.

 두 번째, 분명 썸남은 ‘고맙다.’는 인사를 할 텐데, 그럼 ‘다음에 맛있는 거 사주세요.’라고 한다.

 세 번째, 실제로 술을 마셨는데 맛있다고 하면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네 번째, 소원이 뭐냐고 물어보면, 일단은 비밀이라고 한다.     


 어떤 느낌으로 비법을 전수 한 건지는 알겠다 싶었다. 근데 저걸 아영이한테 알려주면 뭐 어떻게 활용하라는 건지... (남자분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저 비법이 유효한 것 같은지...?)     


 나 - 아영아, 저 언니 조언 신경 쓰지 말고. 남자도 결국 여자랑 똑같은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꼭 남자랑 뭘 할 때라고 생각하면서 부담 갖지 말고, 그냥 인간적으로 친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하면 좋을 거 같아.

 아영 - 인간적으로?

 나 - 응, 대화 많이 하고 같이 내기도 하고, 볼링처럼 같이 할 수 있는 게임도 하고. 

 아영 - 아 진짜 그래야겠다.

 나 - 지훈 씨가 너보다 더 내향적인 사람이니까,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제안하고 그래야 할 것 같아.     


 이런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사람이 변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안하는 것보다 제안을 받는 것이 더 익숙한, 질문을 하는 것보다 질문에 대답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더 편한 아영이 같은 사람이 한순간에 적극적으로 변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근데 아영이는 정말로 그렇게 했다.


 지훈 - 연휴에 쉬세요?

 아영 - 네. 지훈 씨도 연휴에 쉬세요?

 지훈 - 네. 연휴에 붙여서 휴가도 냈어요.

 아영 - 아, 정말요? 좋겠다.

 지훈 - 연휴 때 무슨 일정 있으세요?

 아영 - 아뇨, 없어요. 지훈 씨는요?

 지훈 - 없어요.

 아영 - 아, 진짜요?

 지훈 - 네, 일정이 딱히 없어요.

 아영 - 저도요.     


 연휴에 쉰다는 것도, 쉬는 날 따로 일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둘은 누구 하나 먼저 ‘그럼 만나실래요?’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이 답답한 상황에 아영이는 데이트 신청을 했다.     


 ‘지훈 씨, 그럼 우리 만나서 영화 볼래요?’     


 지훈 님과 아영이가 정말 연인 사이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는 일이어도 다 괜찮았다. 이렇게 아영이가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만으로도 엄청 큰 수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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