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폭행을 하지 않는다고 인권이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
전 세대를 아울러 가장 시절이 좋았던 세대는 언제일까?
누군가는 취업이 잘되고 예금이자가 높았던 과거를 말하며 그 시절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절 이루어졌던 수 많은 재판에 대한 재심사건을 보면, 사건의 무리한 마무리를 위해 잔혹하게 무고한 사람을 잡아 투옥시킨 것이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당한 시위에도 군대를 동원하여 수 많은 사람을 사망하게 하였다.
예전엔 검사실에 피의자들이 조사를 받으러 들어갈 때 문 앞에서 신발을 벗고 맨 양말로 들어가며 누구나 검사를 '영감님'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만큼 다가가기 어려움의 의미일 것이다. 검사나 수사관은 피의자의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싶으면 뺨을 때리고, 심지어 고문을 지시 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그 당시가 결코 좋은 시절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혹자는 발전한 사법제도를 말하며,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이 공정하다고 한다. 사실 나는 사법고시의 비교적 끝 세대로서 예전 사법제도를 경험한 적은 없다. 오로지 역사적인 기록으로 알 뿐이다.
지금은 피의자에 대한 강압 수사를 방지하기 위해 '영상녹화제도'를 행하고 있다. 그리고 요식행위 일지 몰라도 피의자 수사의 마지막에는 수사 중에 불만사항이 있는지 절차적으로 꼭 질문하도록 되어있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강화된 절차들로 인해 노골적인 폭력 행사나 강압 수사는 확실히 방지된 것은 맞다. 그들은 자평한다 우리 시대로 인해 인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이게 전부일까. 과연 때리지 않는다고 인권이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지청장 출신의 변호사를 뵌 적이 있다. 60대의 그 변호사님은 '의뢰인'에게도 윽박을 질렀다. 의뢰인은 피의자가 아닌 손님인데, 왜 소리를 지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이게 사람이 묘해. 소리를 질러야 권위에 굴복하거든, 고소인도 피의자와 다를 바 없어. 그래도 수임 다 돼."
정말이었다. 오래전부터 그분을 만나온 그분의 의뢰인들은 그 변호사를 쩔쩔매며 대하면서도 꼭 사건을 맡기고 갔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에게 헤어 나오지 못한 아내와 같은 느낌인 걸까.
2020년을 살면서도 그 변호사님은 여전히 1980년대의 방식을 고집했고, 변할 의지도 없어 보였다. 인권을 보호해야 하는 그 변호사는 온몸으로 인권 신장의 물결을 막아서고 있었다.
내 의뢰인은 상가를 하나 갖고 있었는데, 어떤 회사에게 임대를 주었다.
그 회사는 임대료를 내지 않기 위한 꼼수로 별도의 법인을 만들었고 그 법인과 전대차 계약을 맺었다. 즉, 실질상 같은 회사이지만, X와 Y, 법인을 두 개 만든 것이다. 그러나 임대인은 특별한 의심없이 전대차에 동의를 해주었다.
임차인 x회사와 전차인 Y회사는 무려 반 년동안 임대료 입금 없이 상가를 사용했다. 임대인은 결국 기다리다 새로운 임차인을 받기 위해 해지 통보를 하였는데 그들은 퇴거를 하지 않았다. 퇴거를 하지 않아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결국 법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럴 때에는 임차인과 전차인을 상대로 건물 인도(명도) 소송을 구하면서, 동시에 점유자인 전차인을 상대로 점유이전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한다. 이렇게 두 가지의 절차가 필요한 이유는 전차인이 다시 또 다른 제삼자에게 점유를 이전해 버리면, 임대인은 건물 명도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나중에 집행할 때 완전히 다른 제삼자가 들어와 있으므로 그 사람을 상대로 집행을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 점유 중인 사람이 아무에게도 점유를 이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바로 '점유이전금지가처분'이다.
전차인에 대한 점유이전 금지 가처분 결정이 나왔고, 나는 집행 신청 마감일 3일 전에 집행 신청을 했다. 마지막 날이 휴일이어서 좀 빠듯한 신청이긴 했다. 원칙적으로 결정 후 14일까지 집행 신청을 하면 되기 때문에 법에는 문제없는 신청이긴 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직원을 보내지 않고 직접 집행관 사무실에 갔고(여자 직원이 가게 되면 심통을 부리며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짜증을 냈다.
"아 진짜, 왜 이제 옵니까? 아니 바빠 죽겠는데 왜 이래요?"
예상했던 짜증이긴 했지만, 생각보다 강도가 높았고 역시 내가 직접 오길 다행이다 싶었다.
바빠 죽겠다고 하기엔 집행관이 적어놓은 다음 날 일정에 별 게 없어 보였다. 눈썹을 씰룩이며 한 껏 미간을 찌푸린 집행관은 70년대 자료 화면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헤어스타일과 외모, 차림새였다. 전에 인권신장을 온몸으로 막아서던 그 변호사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조심해요, 집행관들 뒷 돈 바라는 사람 참 많고, 애먹입니다. 수월하게 집행할 수 있다면 그건 행운이에요.'
집행관의 짜증을 듣게 된 순간 법원 시보 시절, 집행 참관에서 집행관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요즘 시대에 어떻게 뒷 돈을 전할 것이며, 그걸 법원 공무원이 받고 그에 따라 집행을 하려 한다는 게 기가 막혀 그 말을 사실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양해 좀 부탁드립니다."
일단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나갔다. 끝내 그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았고 10년 만의 원수를 만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원인을 모를 상대의 지나친 분노에는 보통 그 만의 이유가 있는데, 굳이 그 사람의 분노의 원인까지 보듬어 주고 싶지 않았다. 우린 지금 막 만난 사이이고 분노의 역사가 자리할 수 없기 때문에 분명 억지스러운 분노일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이 집행 날이었고, 나는 의뢰인인 임대인 회사의 직원들과 함께 건물에 올라갔다. 이미 집행관은 도착해서 집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차인 Y회사가 점유하고 있어야 할 상가에 생경한 직원들이 있었다. Y회사의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이 공간에 이상하게도 전차인과는 관계없는 사람들만 있었다.
누구냐고 물으니 자신들은 Y회사의 직원은 아니고, 상가 일부에 세 들어 사는 전혀 다른 회사의 직원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는 전차인 Y회사가 아닌 임차인 X회사가 점유한다고 했다.
"저기 그럼, 어느 회사의 직원이시든지 어쨌든 명함 좀 보여주세요."
그들은 당황한 듯 쭈뼛이며 방으로 들어갔고, 어색하게 가방을 뒤적였다. 외부라면 명함이 없을 수 있지만, 사무실에서 명함이 없는 직원들을 가정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기에 있던 모든 직원들이 명함이 없었다.
가장 많이 쓰는 전략이긴 한데, 일단 Y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점유하고 있다고 발뺌하는 전략이다. 난 이들이 이 전략을 쓰고 있다고 충분히 의심이 들었다. 일단 Y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것만 확인하면 되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들의 발언은 중요치 않았고 사무실을 여기저기 확인했다.
집행관들도 이러한 발뺌 전략을 익히 알고 있다. 난 당연히 그 집행관이 이러한 그들의 변명을 간파하고 조치를 취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집행관은 그들의 말만 듣고 철수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나와 임대인 측 직원들은 당황하여 집행관에게 X회사와 Y회사는 실질적으로 같은 회사라며 이런저런 증거를 제시했다. 그리고 만약 다른회사라고 해도 여기는 분명히 Y회사가 점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집행관은 특유의 이유를 모를 분노를 내질렀다.
"아, 진짜! 이 사람들이 Y회사가 점유하는게 아니래잖아요! 가만히 좀 있어요 좀!"
하필이면 임대인 측 직원들도 모두 덩치가 작은 어린 사람들로 구성되어있었다. 같이 윽박을 지르기에도 당장 그 사람의 울림통이 더 컸다.
여기저기 증거를 찾다 정 중앙에 대표이사 방을 발견했고, 나는 그 방에 들어가 Y회사 이름과, 대표이사 이름이 표시된 명패를 제시했다.
"집행관님, 이거 보세요. Y회사가 점유하고 있는 게 아니면 왜 Y 회사 대표이사 명패가 있어요?"
"... 그 사람은, 그냥 왔나 보죠."
"그냥 온 게 뭡니까. 대표이사라고 명패가 되어있잖아요. 무슨 말입니까?"
"아 몰라요! 이의 신청하든지요!"
집행관의 이 어이없지만 막힘없는 대답이 끝나자, 임대인의 직원들과 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도저히 법으로 대화할 수 없는 막막함.
"집행 불능입니다! 내려갈게요, 사인하세요!"
그는 불필요하게 화가 나있었고, 화가 난 이유를 전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가 자기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는 화를 내면서도 이상하게 쭈뼛댔다. 무언가 할 말이 더 있는 것처럼 우리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는 그를 잡지 않았다. 뒷골이 당기면서 전에 집행관님이 해주셨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요즘 법은 온갖 인권을 보장하는 글자로 무장되어 있다. 그런데 법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건 사람이기에 사람이 법을 알고 법대로 행해야 한다. 그런데 법을 무시하는 사람이 버젓이 나랏돈을 받고 존재하는 한 인권은 보장될 수 없다.
이 집행관은 우리가 자신의 정직함을 기대하고 모든 것을 녹취하려 하지 않았던 다소 순수한(?) 마음을 이용했고, 이렇게 휘뚜루마뚜루 결론을 내도 결국 자신의 신변에 큰일이 없었음을 이미 수 차례 경험했으리라.
2020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과거의 방식으로 사는 사람들은 절차를 지키려는 법의 변화와 사람들의 노력을 유난스럽다고 치부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좀 더 권력을 과시하며 편하게 일할 수 있었던 과거의 영광을, 법의 미비점을 이용한 새로운 꼼수로 끝내 지키려 할 것이다. 예전처럼 때리지 않는 것만도 고맙게 여겨야 한다고 어디에선가 게걸스럽게 말할 것이다.
깨끗한 현대식 빌딩에서 과거의 영광을 고집스럽게 재현하며 퇴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과거 사법절차가 형편없던 시대의 막막함과 2020년을 살고있는 우리의 막막함이 다를 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20년대의 사법절차에서 인권유린은 새로운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들은 때리지 않았다는 명분을 갖고 새로운 방식으로 폭력을 가한다.
보통 사람들이 어떤 수단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을 때 법원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들이 휘두르는 알량한 권력이 누구에게는 한 대 맞는 일보다 더 심한 폭력이 된다는 것을 알 고 있을까? 마지막으로 법의 힘에 기댈 수 없을 때 도대체 어떤 걸 해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벼랑 끝으로 내모는 걸까.
사법기관의 대부분 구성원이 소명의식과 책임감을 다하여 일하고, 인권의 보루로서 99%의 확률로 기능하는 기관이 되었을 때를 내가 눈 감기 전 볼 수 있을까.
전 세계가 연결된 교통 수단으로 인해 한 나라에 퍼진 질병이 속절없이 전 세계로 퍼지고, 미친 듯한 집 값은 청년 실업률과 정 비례한다. 4년제 대학만 나오면 취직이 된다던 시절은 예전이고, 돈만 잘 모아도 예대 마진 10%이상을 챙길 수 있었던 과거는 더 이상 없고, 우리는 모두 동학 개미가 되어 신용을 잡아 단기 주식 차익을 기대 하며 산다. 유튜브와 인스타로 남들의 꾸며진 삶을 실시간 보며 실시간으로 우울해진다.
확실한 건, 지금 이 세대가 참 좋은 시절이라고 할 건 없다는 사실이다.
열심히 일하는 집행관 분들도 많다는 사실. 그래도 덧붙여 본다.